진토닉

2020.05.10

by 스미레

인간은 대부분 과거의 관성으로 살아간다. 자신이 살아온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최소한 앞으로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든다면 그 강줄기를 계속 따라간다. 과거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과 주변의 객관적인 격려가 상호작용을 하며 그 강줄기 속에서 노를 저어갈 힘을 얻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과거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은 도출되는 결과에 따라 인간에게 노를 버리고 자포자기할 정도의 무력감을 주기도 한다. 그런 상태의 인간은 객관적인 격려가 들리지 않는다. 인간은 열심히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간 후 보이는 것이 결국 물의 낭떠러지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무력감 또는 심각한 불안을 느낀다. 그건 선택할 수 없는 반응이다. 실제로 무력할 만 것일 수도 있고 과장되어 받아들여진 현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순간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하나 존재한다. 자신을 폭포로 데려가고 있는 그 큰 물줄기를 돌아보며 과거의 자신이 수천번 반복했던 노 젓는 일을 향해 의미를 부여해 버리는 것이다. 기존의 의미를 갈아치우는 혁신적인 것이어도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눈앞에 있는 폭포, 그러니까 현재와 가까운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과거에 대한 관점을 조정함으로써 이론상 미래를 바꿀 수 있다. 현재는 그 중간 어딘가에 변화의 과정으로써 존재한다.


두 번째 발렌시아 여행에서 돌아온 후 상훈에게 남은 것은 오직 무력감과 이질감뿐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이질감을 해결하려 조급할 필요가 없어졌다. 조급함은 머릿속에 한 가지 이상의 길이라도 보일 때 생기는 것이다. 말하자면 선택지가 있을 때 생기는 것이다. 상훈은 가만히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가만히 있고자 하는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는 그저 스스로 움직이는 것에는 그 어떤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 중인 상태일 뿐이다. 상훈의 삶 전 후로 주체성은 완전히 바닥난 듯 보였다.


“탈선한 롤러코스터의 전원이 사망한 것 같아. 나는 결국 엉뚱한 대응 같은 것조차 하지 못한 꼴이 되고 말았어.”


상훈이 전화기에 대고 말을 했다. 연주에게 남기는 음성메시지였다. 귀국한 날 그렇게 공항을 나가버린 이후로 몇 주째 그의 집을 찾아오지도 전화를 받지도 않고 있다. 그래도 연주는 아마 메시지를 듣고는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완전히 무시해버리기엔 그녀는 너무나도 큰 연민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잘못을 시인하듯 내뱉는 말투에서 상훈이 도움을 구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도 이미 알아채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주는 이번엔 어떤 방식으로든 대답을 들려주지 않는다.

상훈은 그야말로 자포자기한 상태로 몇 주를 보냈다. 연재 원고는 이전에 써놓았던 것들을 대충 짜깁기 해서 새 타이틀에 맞게 편집만 해 메일로 보냈다. 담당자는 최근 원고에 대해 약간은 갸웃거리는 듯한 말투로 전화를 해왔지만 별문제 없이 넘어갔다.

자포자기한 상태로 있는 몇 주 동안 낮시간에는 주로 인터넷 게임을 하고 해가 지면 술을 마셨다. 틈을 내어 친구들도 만났다. 그리곤 같이 술을 마셨다. 현재 상훈에게는 마드리드 게스트하우스 지하 1층의 펍 같은 곳이 여러 개 필요했다. 그는 뭔가를 잊기 위해서 자극적인 것에 몰입당하거나 자신을 마비시키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러나 상훈의 정신에 육체가 붙어있는 한 이 방법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또 육체에 정신이 깃들어 있는 한 이질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편 그림자를 만나는 것이 정말 정답일까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상훈에게는 고역이었다. 그것이 그가 생각해낼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고 끝끝내 실패했음에도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자와의 대화를 떠올리던 어느 날 문득 상훈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낯선 자신’의 존재였다. 그날 비르헨 광장의 계단에는 사실상 두 명이 아닌 세명의 개념적인 존재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아니 있어야 했던 것이 아닐까? 이질감을 자각했던 상훈과 그림자 이외에도 둘의 대화 속에서 잠깐 등장해 모순된 과거와 오만함에 대해 고백했던 ‘낯설음’이라는 존재가 한 명 더 있었다. 낯설음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실제로 그 말을 하는 순간의 자신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낯설음이 나오려 하면 나오려 할수록 케르베로스는 지옥의 금속이 부딪히는 듯한 파열음을 내며 그 개념적인 분리를 필사적으로 막았다. 낯설고 어색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이질감을 잊고 파열음에 맞설 수 있었다.

정리하자면 그 계단에는 비현실적인 현상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상훈과 모종의 이유로 완전히 분리되어 눈앞에 나타난 그림자, 그리고 끝내 분리되지 못한 낯설음이 있었던 것이다. 총체적인 나가 개념적인 존재들을 창조하는 최종 목적이 완전한 분리인지 까지는 모르겠으나 그날과 같은 대화방식을 원활히 진행시키려면 분리라는 방법은 피할 수 없는 듯했다. 그러니까 분리의 목적을 좀 더 알아듣기 쉽게 다른 말로 하자면 마주 보게 되는 일이었다. 그것을 다시 어렵게 말하면 직면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상훈은 이것을 깨달은 순간 이질감의 정지에 대한 힌트를 조금 얻은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안타깝게도 현재로서는 그림자와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낯설음의 존재를 알아챈 순간 그림자에 품었던 흥미가 절반 정도 옮겨갔다. 그래서 상훈은 일단 풀 수 없어 보이는 문제를 잠시 가만히 두기로 했다. 한국에서 스페인까지 부리나케 쫓아갔음에도 찾을 수 없었다면 물리적인 장소의 문제는 아닐 거라는 결론이었다.

대신 낯설었던 자신의 모습에게 집중해보기로 했다. 그림자를 만나기 위해 택했던 방법보다는 상대적으로 육체적, 정신적 자유도가 높았다. 찾는 대상이 그의 내면에 있다는 것이 확실해진 이상 좇을 필요도, 사라질까 불안해할 이유도 없다.

계단의 대화에서 그림자는 눈앞에 일어난 비현실적인 현상에 대한 파악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그라는 인간이 살아가며 경험하고 느끼는 전체적인 메커니즘 같은 것을 설명했었다. 상훈은 어쩌면 그림자의 역할은 거기까지가 전부였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까지가 그림자가 지닌 역할인 것이다. 그러니 그다음은 어느 시간, 어느 장소, 어떤 계기가 될지 모르겠으나 낯설음이 튀어나올 차례인 것이 아닐까?

상훈은 다만 분리해내 앞에 앉히는 방법과 분리되고 나서 벌어질 일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해서는 좀 신경 쓰였다. 아니 두려웠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분리되지도 않은 채 사라져 준다면 아마 이질감도 함께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해보았다. 그러나 그건 왠지 타임머신을 악용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과거를 내 좋을 대로만 조금씩 틀어놓은 다음 미래로 가는 것은 우주적인 민폐인 것이다.

시작이나 과정 속 겪어냄만이 가치 있어지는 때가 있다. 그림자를 만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만남 이후를 고민해보지는 않았었다. 그냥 만나면 해결될 줄 알았다. 그래서 그렇게 무모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림자 외의 존재를 알게 된 후로는 또다시 열리게 될 회의 이후의 방향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낯설음이 내뱉었던 말이 좀 걸렸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상훈은 낯섦이 내뱉었던 말들을 다시 떠올리며 주요 키워드들을 곱씹어보았다.


외면과 오만


하나도 빠짐없이 자신이라는 존재 안에서 삭제시키고 싶은 단어들이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도 저런 것들을 겪으며 살 수 있다지만 한 명의 개인으로써 질문한다면 누구도 유쾌하게 인정하지 못할 것들이었다. 사람들은 두렵다는 이유로 많은 경우 본능적으로 외면을 택한다.


그리고 상훈의 외면과 오만을 더 쉽게 발현시켰던 환경이 있다.


여행


상훈은 그 당시 여행자들만 사라졌던 것도 분명 어떤 연관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여행자들만 사라진건 그림자가 아니라 낯설음과 관계된 일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이 정리되었다고 해서 딱히 뾰족한 수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안에 있다고는 하지만 마음대로 끄집어내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상훈은 일단 그것을 품은 채 일상을 살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점은 유일한 방법이 실패한 상황에서 하나의 다른 단서가 생김으로써 그림자와 만나는 것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이 조금 환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야 상훈에게 여유가 조금 생겼다.



“요즘 좀 별로였죠?”


“왜? 나쁘지 않았는데.”


상훈은 늦은 저녁 집에서 전철로 8 정거장쯤 떨어진 동네에 있는 백화점 10층 라운지 바에 와있다. 군데군데 연한 주황색 간접등이 켜져 있고 천장에는 파란색 메인 조명이 있다. 그리고 블랙과 투명 유리를 조합한 인테리어. 진부한 모던을 표현했나 싶다. 그렇지만 가끔은 진부한 것이 신뢰를 줄 때도 있다.

상훈의 맞은편에는 연재 담당자가 앉아있다. 이 남자는 이제 막 4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나름 업계에서는 잔뼈가 굵은 사람인데, 남자의 말을 빌리자면 ‘형언할 수 없는’ 사정으로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아내와 아이가 필리핀으로 이민을 가버린 나머지 사실상 자신은 결혼생활에 손만 담가본 나이 많은 노총각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상훈은 이런 지극히 사적인 걸 들어도 되나 싶어 처음에는 입을 무겁게 하고 다녔으나(심지어 연주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얼마 안가 이 남자가 스스로 그 사실을 문란한 사생활에 힘을 싣는데 이용하고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부터는 이 남자의 입에서 일 외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싶을 때마다 고막의 스위치를 끄고 흘려듣고 있다.

이 남자가 소속된 출판사는 현재 상훈이 유일하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아무튼 이 담당자와는 주기적으로 갖는 비공식적인 미팅이 있다. 보통은 진행 중인 일에 대한 오프 더 레코드적인 이야기를 하지만 가끔은 담당자 혼자 시시콜콜한 여자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가 있다. 상훈은 별로 공감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스스로 해결 못하고 쌓아둔 감정들을 가진 사람들끼리 만나서 생기는 이야기들이다. 서로 생물학적으로 의존하는 과정에서 유치하게 얽히고 설켜버린 상황들을 한 트럭씩 쏟아낸다. 어떻게 대답해주어야 하는지 아직도 적응이 안되고 있다. 초반에는 신중히 들어주었지만 지금은 적당한 안주거리로 생각하고 대충 삼켜 넘긴다.

그러나 가끔씩 흥미롭고 창의적인 이야기가 나올 때면 기억해놓기도 한다. 남녀관계를 주제로 한 가십거리라면 사족을 못쓰는 연주에게 들려주면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렇다 저렇다 해도 이 담당자가 상훈과 그의 글을 마음에 들어 하기 때문에 계속 그 잡지에 연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말은 프리랜서지만 아직 좀 덜 독립된 것이다.


“그걸 두 글자로 줄여서 별로라고 하는 거잖아요.”


“까칠하네. 그렇지, 사실 막 좋진 않았어. 하지만 중요한 건 독자의 반응인걸. 어느 정도 팬층이 생긴 작가의 좋은 점은 그거야. 너의 의도나 기분과는 별개로 마음대로 좋아해 버리는 사람들이 있잖아. 넌 읽히길 바라지만 그들 대부분은 소장이 목적이야. 너의 글을 가짐으로써 너란 사람과 좀 더 친밀해지고 싶어 하는 거란 말이야. 그럼 어쩌겠어? 잡지를 사야겠지. 네 이상과는 어긋날 수 있어도 우리에겐 좋잖아?. 그렇지만 우리에게 좋은 게 결국 너한테도 좋은 거야.”


“당신의 글이 액세서리처럼 쓰인다고, 저 말고 다른 작가들 한테도 그렇게 말해요? 아닐 거 같은데. 그나저나 제가 팬이 있어요?”


“나 참, 본인 외엔 전혀 관심이 없구만. 만나는 사람도 있다면서. 상대가 꽤나 피곤해하겠네. 그럼 왜 네가 계속 우리 잡지에 글을 쓸 수 있는 거 같은데?. 너의 글을 실어보기로 한 것은 1차적으로 내 개인적인 입김으로 추진한 게 맞아. 하지만 그게 아무리 세도 겨우 한낱 입김이야. 독자들의 취향은 뿌리 깊게 박힌 나무 같은 거라고. 아무리 불어도 웬만해서는 끄떡도 안 하는 거 몰라?”


“하긴, 위대한 작가들은 독자들의 삶을 뿌리째 흔들기도 했죠.”


“위대한 작가? 너무 자만은 하지 마.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거니까.”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죠.”


“방심하고 자만했다가는 나보다 독자들이 더 먼저 알아채. 그 팬층이 얇을수록 더 민감하지. 넌 아직 그들의 눈을 가릴 만큼 충분히 교활하지는 못해. 하긴, 그렇게 남들한테 관심이 없으니 자만을 할 대상도 틈도 없으려나.”


담당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술잔을 들어 더블로 담겨있는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켰다. 담당자는 이 비공식적인 미팅에서 줄곧 버번위스키만 마셨다. 그 외의 술을 입에 댄 것은 본 적이 없다. 버번위스키 더블과 생수 200ml. 기본적으로는 딱 그렇게만 마시고 일어난다. 짐작컨대 이 사람은 나가는 자리마다 주종을 정해놓을지도 모른다.


“남들한테 관심 없는 사람이 더 자만하기 쉬울걸요?. 주변을 살피고 남들과 교류하는 사람들 중에서 타인을 내리깔며 자만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소수에 불과해요.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열등감을 가지고 자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지 못한 환경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하고만 만나거든요. 심지어 상대의 환경에 대한 판단도 편협한 사고에서 나오고요. 그게 아니라면 스스로의 노력 또는 운, 타고난 자원을 바탕으로 어떤 지위에 오르거나 큰 성취를 하고 난 직후의 사람들도 보통 그런 늪에 잘 빠지곤 하죠.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교류를 통해 위로나 교훈, 안정감을 얻고 신뢰와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을 걸요. 자만 따위로 그런 소중한 관계를 해치긴 싫을 거예요.”


상훈의 귀에서 또다시 챙하는 파열음이 들렸다.


“뭐야 너, 생각보다 세상이나 인간 같은 거에 대해 긍정적이네? 좀 놀랐는걸.”


담당자는 웨이터를 불러 같은 것을 한잔 더 달라고 말했다. 이 남자는 대화에 흥미가 생기면 술을 더 시키고 상체를 앞으로 숙여 두 팔꿈치를 무릎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상대에게서 줄곧 눈을 떼지 않는다. 이 사실은 담당자가 평소에는 남들과 대화할 때 거의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제가 무슨 악당인 줄 알었어요?”


“악당? 한 번쯤은 그렇게 생각 안 해봤어? 뭔가 히어로보다는 악당을 좋아할 것 같은 분위기였거든. 정확히는 ‘만들어진’ 악당 같은 거 말이야. 너에게서 느꼈다기보다 네가 쓴 글을 볼 때마다 느꼈지. 물론 염세적이기만 했다면 너의 글을 선택하진 않았겠지만 말이야. 그런 건 너무 우중충하고 진부하잖아. 재미가 있을 리 없어. 하지만 네 글은 염세적인 안경을 쓰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 분명히 너만의 눈빛이 살아있는 느낌이야. 세상이 우리에게 무슨 안경을 씌우는지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의 눈빛이 더 중요하지 않겠어?. 세상을 꽃밭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있지. 하지만 그들도 안에는 시커먼 눈을 가지고 있을 수 있어. 근데 말이야,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 보통 사람들은 관계를 통해 그런 좋은 것들을 얻어가면서 산다는 거 말이야.”


“확신은 무슨. 개인적으로 품는 작은 바람일 뿐이에요. 왜 세계평화 같은 거 있잖아요. 그냥 그런 거예요.”


상훈은 자신의 진토닉이 담긴 잔을 들고 빙빙 돌리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담당자의 주종을 가지고 왈가왈부했지만 그야말로 완전히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상대를 만나 술을 마실 땐 항상 진토닉만 마신다. 상훈은 양복을 즐겨 입지 않지만 진토닉을 일종의 양복 같은 것으로 사용하고 있다. 진부한 것이 신뢰를 줄 때도 있는 것이다. 오늘은 오랑우탄도 함께 취해 잠이 들었는지 잠잠하다.


담당자는 결국 그 오프 더 레코드적인 대화의 끝에 저번호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초등학생의 거짓말을 눈치챈 부모의 쓴소리 같았다.


‘어쨌든, 다음부터 그런 원고는 받고 싶지 않아. 적어도 너에게는. 독자가 중요하다고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건 담당자로써의 내가 한 말이야. 너라는 작가를 좋아하는 40대 남자 독자의 입장으로써 말 한자면 그런 글은 또다시 읽고 싶지 않을 거야. 싫어진다는 게 아니야. 뭐랄까, 걱정을 하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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