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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Aug 15. 2024

암에 걸려 좋은 점 7 - 불쌍해질 용기

본인이 암환자라는 걸 알리는 행위 '암밍아웃'.

내가 암환자가 되기 전까지는 암밍아웃이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솔직히는 '아픈 게 흠도 아닌데, 병이 있다는 걸 알리는 게 뭐가 그리 대단하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때까지 까맣게 몰랐다. 암밍아웃에는 불쌍해질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그리고 난 그런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지금까지 열심히 쌓아 온 내 모든 것들이 '근데 걔 암 걸렸대.', '그러면 뭐 해, 암환자라는데 불쌍하지.'라는 말로 마무리 지어지는 것을 견딜 용기가 아직 내겐 없다.


암밍아웃을 하지 못한 이유에는 동물적인 두려움도 있었다.

나에게 허점이 있다는 것을 타인에게 알린다는 것 자체로 내가 취약한 개체가 되는 것 같은 위기감이 엄습했다.


암 선고를 받은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가까운 가족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내가 암환자라는 걸 모른다.

골똘히 생각해 봐도 결국 나의 취약함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사람들은 가족 말고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암밍아웃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내 상황을 모르는 지인들과의 식사자리는 참 불편했다.

숯불 구이를 먹는 모임에서는 속이 불편하다는 핑계로 된장찌개와 밥만 먹어야 했고(숯불 구이는 1급 발암물질을 생성한다), 파스타, 피자를 먹는 자리에서는 샐러드 하나만 더 시키자고 말한 뒤 부족한 샐러드로 배를 채워야 했다(높은 혈당은 재발 위험을 높인다). 디저트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카페를 가면 테이블 위의 맛있는 빵들을 바라보며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만나서 식사 한번 하자는 말에 식단 걱정이 먼저 들어 스트레스를 받기 일쑤였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인들과의 만남이 줄어들게 되었다.


초반엔 이런 변화가 걱정스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마음 놓고 약해 보여도, 불쌍해 보여도 되는 사람들 곁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사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던가.


이젠 불쌍해질 용기 조차 낼 필요가 없는 사람들과의 삶이 더 가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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