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방암 병기는 1기이다.
첫 조직검사에서 0기(다른 조직을 침범하지 않은 암)로 추측했지만, 수술 후 떼어낸 조직을 살펴보니 암이 다른 조직을 침범한 것으로 확인되어 1기로 확정되었다.
유방암 1기의 5년 생존율은 95%.
유방암은 상대적으로 다른 암에 비해 생존율이 높아 '착한 암'이라고 불린다.
처음 유방암을 진단받고 '유방암은 착한 암 이래.'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암이 암이지, 착한 암이 어딨어!'라며 화가 나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른 암에 비해 높은 생존율을 보인다는 것, 치료법이 잘 정립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내가 죽음을 가깝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이렇다.
처음 혹의 모양이 안 좋아 보인다고 조직검사를 해보자고 하신 유방외과 선생님은 조직검사 하는 사람 100명 중에 5명 정도가 암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수술 후에 병기가 올라갈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해주실 때에도 수술하는 사람 100명 중 5명 정도만 병기가 바뀐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어려운 일을 내가 모두 해냈다. 하하.
그러니 5%의 사망률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암 진단 전에도 나는 종종 '내가 얼마 살지 못한다면 가장 아쉬운 게 뭘까?'라는 질문에 이런저런 답을 해보았었다.
가족들을 더 자주 보지 못한 것, 돈을 펑펑 써보지 못한 것, 세계여행을 구석구석 다녀보지 못한 것 기타 등등.
그런데 막상 내 삶의 유한함이 피부에 확 와닿으니 그 순간 머리에 번쩍인 말은 답안지에 없는 항목이었다.
'나 내년 벚꽃 못 봐?'
올봄에 본 벚꽃이 내가 본 마지막 벚꽃일 수도 있다니, 당황스러웠다.
내가 이 세상에서 없어져도 벚꽃은 또 사랑스럽게 피어오를 것이다.
이런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알았을 리 없지만) 내가 다닌 병원의 방사선 치료실 천장에는 프로젝터가 설치되어 있었고, 치료받는 동안 벚나무 아래에 누워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벚꽃나무 가지가 흔들리는 영상을 틀어주었다.
한 달간 평일 매일 방사선 치료실에 누워 가슴을 드러낸 채 천장을 바라보면서 돌아오는 봄에는 꼭 벚나무 아래에 누워 진짜 벚꽃을 즐기겠다고 다짐했다.
내 마지막 아쉬움이 '내년 벚꽃을 못 본다는 것'이라면, 앞으로 살아갈 날에는 내가 사랑하는 자연의 순간순간을 대단히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야 한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봄꽃의 축제를, 뜨거운 여름의 녹음을, 알록달록 화려한 단풍을, 온통 눈으로 덮인 하얀 세상을 마주한 당신은 축하받아 마땅하다.
+ 치료를 끝낸 봄, 벚나무 아래 누워 찍은 사진.
살면서 축하할 일이 많아진다는 것은 또 하나의 행복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