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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Jul 18. 2024

암에 걸려 좋은 점 2 - 함께 무너져줄 사람, 엄마

암 선고를 받고 내가 암환자가 되었다는 걸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꽤 필요했다. 술담배 아예 안 하고, 탄산음료는 입에도 안 대고, 최소 주 3회씩은 운동을 하던 나인데 어째서 암환자가 되어버렸을까.


수술을 앞둔 어느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만 엄청난 폭탄을 품은 채, 세상은 참 평화롭게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너져버린 날이었다.

암 선고 이후 혹여나 더 걱정시킬까봐 가족들에게 속마음은 터놓지 않은 나였는데, 그날은 터진 둑처럼 속마음을 쏟아내버렸다.

나 빼곤 다들 잘 먹고 잘 살아가고 있다고,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불평으로 쏟아내는 내 말을 잠자코 듣던 엄마가 답했다.


"아무야...엄마, 아빠는 요즘 웃지도 않아...웃을 수가 없어. 엄마, 아빠의 이런 마음이 너에게 전해지지 못했다면 우리에게도 처음인 일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거라고 생각해줘."


쿵, 가슴이 무너져내린다는 말이 이거였구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였다. "엄마, 미안해."


1남 2녀 중 둘째. 언니 하나, 남동생 하나 있다고 말하면 "아들 낳으려고 너 낳으셨구나?"라는 수식어가 늘 붙던 나였다. 첫째는 첫째라서, 막내는 막내라서 라는 말처럼 나를 지켜줄만한 말은 없었다.


그래서 매순간 최고의 자식이 되고 싶었다. 고맙다는 말을 듣는 자식이 되고 싶었다. 학교 1등인 자식, 대기업에 취직한 자식, 생활비 주는 자식. 자랑스러울만한 자식이 되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살아왔다. 나는 내가 미안할 만한 일은 하지 않을 거라 자신했다.


그렇게 콧대높던 나인데, 이젠 그저 미안함만 품은 자식이었다. 그저 안쓰러운 자식일 뿐이었다.

그동안 열심히도 가꾸었던 우리의 모습을 내가 다 망쳐버린 것 같았다. 이렇게 암은 한순간에 나에게서 '100점짜리 자식(적어도 내 기준으로는)'이라는 타이틀을 앗아갔다.


그리고 암은 나에게 더 값지고 멋스러운 타이틀을 달아주었다. '내 세상이 무너졌을 때, 함께 무너져 줄 부모가 있는 자식'. 내가 엎어진 순간 옆에서 응원하고 버텨주는 게 사랑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누군가가 함께 주저앉아 나만큼 아파하고 울어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부모만이 할 수 있는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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