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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Jul 21. 2024

암에 걸려 좋은 점 3 - 힘들 시간이 기대돼, 여보

암에 걸리면 안 좋은 점이 정말 많다.


이따금 찾아오는 수술 후 통증에 익숙해지고,

먹고 싶은 것을 참는 건 일상이 되고,

늦은 시간까지 놀고 싶지만 일찍 자야하고,

아무리 귀찮아도 운동은 가야하고,

수많은 부작용을 일으키는 약을 매일 먹어야 하며,

어디가 조금만 아파도 불안에 떨어야 한다.


그런데 난 암에 걸리면 좋은 점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 마음을 먹게 한 건 방사선 치료를 앞두고 맞은 내 생일에 남편이 건넨 편지 속 한줄이었다.

'앞으로 계속 함께하고 행복하고 힘들 시간이 기대돼.'


언제 읽어도 목이 메는, 눈물 버튼이 되어버린 문장이다.


암 진단을 받고 가장 처음 든 생각은 남편에게 너무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이 사람이 무슨 죄로 30대 중반에 암환자의 배우자가 되어야 할까.

혹시 그가 나와 결혼한 선택이 최선이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이땐 정말 자존감이 바닥이 되어 나와 헤어진 과거의 연인이 내가 암이라는 소식을 듣는다면 '휴, 폭탄 피했네.'라며 안도할 것 같았다)

이렇게 나는 나의 투병생활을 함께 하게 된 남편에게 정말 면목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힘들 시간이 기대돼.'라는 말은 남편이 이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어떤 자세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알게 해주는 말이었다.

한껏 쭈굴해져있던 나의 나약함이, 우리의 강함을 의심했던 나의 바보스러움이 부끄러워 눈물이 쏟아졌다. 남편의 품에 안겨 울며 이렇게 되뇌었다. '이렇게도 강한 사람과 함께라니, 나는 두려울 것이 없다.'


그리고 우린 스스로 놀랄 정도로 의연하고 멋지게 투병생활을 해오고 있다.

암진단 전보다 후의 내 모습과 우리의 모습이 더 마음에 든다고 우리는 말한다.

암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잘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우리의 힘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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