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암을 '내가 어쩔 수 없었던 하나의 사고'로 받아들였고, 덕분에 지난 날의 나를 부정하지 않고 잘 처리해내야 하는 일 하나쯤이 생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고라고 받아들이고 나니 너무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전부인 내 남편도 아니고, 평생 맘고생하며 산 우리 엄마도 아니고, 이제야 마음 편히 산다는 우리 아빠도 아니고, 아이를 키우며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 언니도 아니고, 사회에서 자리잡으려 한창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내 동생도 아니고, 지금까지 쉼없이 열심히 달려오신 시부모님도 아니고, 나라서 다행이다.
그렇다. 누군가 암에 걸려야 했다면 나였어야 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저 감사하다는 마음과 함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표'해서 암에 걸렸다는 귀여운 사명감도 들었다.
그 덕에 암과의 싸움을 더욱 기껍게 시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게 왜 암에 걸려 좋은 점이냐고?
나는 평생 스스로를 상당히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나라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가슴에서 뜨겁게 올라오는, 진심어린 '다행'이라는 단어가 내가 제법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덤으로 내가 '나라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자 남편이 울먹이며 한 말이 있다.
"난 너만 아니면 돼. 그 누구 중에도 너만 아니면 돼."
내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어 더없이 감사했다.
암은 나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끼게 하고, 내가 어쩌면 생각보다 더 좋은 사람일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