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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Jul 17. 2024

암에 걸려 좋은 점 1 - 어라? 내가 나를 사랑하네?

"유방암입니다."

이 말을 내뱉은 건 유방외과 선생님이었지만, 내 멱살을 잡고 있는 건 신인 것 같았다.

나를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끌어내리려 내 멱살을 잡고 있는 신.


그 즈음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행복감을 느끼던 때였다. 이제야 온전히 삶을 사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하필 지금이지? 화가 났다.

마치 내가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기를 기다렸다는 듯, 반갑지 않은 청구서처럼 유방암 진단서가 도착했다.


암은 내가 화를 가라앉히길 기다려주지 않았다. 정신없이 긴박하게 치료 일정이 밀려왔다. 암환자가 되는 순간 내 몸은 더이상 내것이 아닌, 의료 시스템에 등록된 관리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한쪽 가슴을 아예 잃을 수도 있습니다.

림프절 제거로 손이 퉁퉁 부을 수 있습니다.

방사선 치료로 피부가 그을러질 수 있습니다.

항암치료로 머리카락과 눈썹이 모두 빠질 수 있습니다.


무엇하나 확실한 게 없었다. 내 몸인데도 앞으로 어떻게 변해버릴 지 알 수가 없었다.

늘 빈약해서 존재 의미도 없다고 느꼈던 이 작은 가슴이, 특별할 것도 없는 내 손이, 여러 번의 염색으로 푸석해진 머리카락이 너무 너무 아까웠다. 너무 아까워 바닥에 앉아 거울을 들고 엉엉 울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어라? 내가 나를 이렇게 아까워하네?

와! 내가 나를 이렇게 사랑했다니!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걸 깨달은 순간보다 더 충격적인, 내가 나를 이만큼이나 사랑한다는 걸 깨달은 짜릿한 순간이었다.


보잘 것 없는 자신을 매일 마주하느라 삶이란 것에 싫증이 나본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짜릿한 감정.

나는 이 감정을 느껴봤다는 것만으로도 암이 충분히 제값을 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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