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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kyo designer Nov 15. 2020

2.독학으로 미대 입시준비하기  

Courtesy Victoria and Warren Miro “Concrete Cabin II,” by Peter Doig, from 1992.


나는 워킹홀리데이 기간에 아르바이트와 미대 입시를 병행하며 준비했다.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에세이이기 때문에 개인 차가 있을 수 있다.


나는 한국에서 미술을 공부한 적이 없다. 흔한 미대 실기시험을 위한 입시미술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다.

나는 무언가를 창작해내는 것에는 소질이 없다고 당시에는 생각했고, 내가 흥미가 있던 분야는 큐레이팅, 미술비평, 미술사 쪽이었기 때문에 독학으로 입시준비가 가능했던 것일 수도 있다.


우선 나는 오픈캠퍼스에서 학교별 정보를 수집했다. 학과는 대부분 예술학이나 예술문화학과 같은 이름으로, 나는 비실기 학과를 목표로 했었다. 당시에는 1차 서류전형 2차 일본어 소논문 시험과 마지막 최종 면접이 있었기 때문에 작문 공부를 위주로 하였다. 특히나 예술과 관련된 지문이 나오기에 과거 시험자료를 읽고 분석하고를 주로 했던 것 같다. 또 많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도쿄도내의 여러 미술관 박물관 전시를 보러 다니기도 하였다. 전시를 보고 나름의 감상을 기록해 두는 것이 나중의 나를 위한 피가 되고 살이 된다. 나는 이 사실을 조금 늦게 깨달았지만, 이제라도 기록을 꾸준히 해보려고 한다.


당시에는 너무나 절박해서 유학생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오픈캠퍼스에도 갔었지만, 유학생이 거의 없는 학과라 같은 한국인 선배 유학생을 만날 수 없었다. 특히나 외국인 유학생 전형 시험은 일본인 대상 시험과 조금 다른 면이 있었기에 물어볼 수도 없었다. 마치 혼자서 깜깜한 터널을 줄곧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지금은 오픈 캠퍼스에 외국인 유학생 전형 전용 상담부스를 만들거나 나도 거기서 수험생들에게 상담을 해주기도 해서 지금은 그나마 나아진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잘 이용하면 뜻밖의 정보를 얻을 수도!


될 수 있는  한 정보와 자료를 수집해서 자기와 맞는 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나는 꼭 한 번은 학교에 직접 가보았다. 그럼 그 학교의 분위기라던지 건축물들을 보고 어떤 장소에서 공부를 하게 될지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리고 중요한 통학거리 계산이라던가, 어느 역에서 내려서 얼마나 걸리는지, 버스를 타는지, 전철을 타는지 이러한 요소들도 꼼꼼하게 가면서 익힌다. 그렇다면 수험 날에 좀 더 수월하게 학교에 여유를 갖고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입시 관련 정보는 물론 학교 식당이랑 주변 음식점, 카페 여부 같은 것도 확인했다. 왜냐하면,, 밥이 맛있어야 학교 다닐 맛이 나니까! 


가장 어려웠던 것은 역시 당연하게도 일본어이다. 미대이기 때문에 일본어보다 미술을 중시한다고 해도 역시 일본어가 되지 않으면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 수험 당시 일본어 사전을 나눠준 학교도 있었지만, 나눠주지 않을 가능성도 매우 높기 때문에 만일의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또한 면접의 경우는 상대방이 나의 일본어를 듣고 이해할 수 있게 또박또박 정확하게 말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면접의 경우에는 혼자서 준비하기에 한계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주변인의 도움을 받았다. 소논문의 경우는 한국 교환학생으로 친하게 지냈던 일본인 친구에게 첨삭을 부탁해서 공부했고, 면접의 경우 셰어하우스에 같이 사는 일본인과, 유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차근차근히 준비했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한국어를 쓰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래도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소논문을 망했다고 하더라도 면접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면접 스타일은 학교에 따라서 확연히 분위기가 달랐다. 면접은 가능한 떨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는지, 미술에 대한 관심사가 어느 정도 인지, 그리고 왜? 이 학과, 이 학교에서 공부하려고 하는지 기본적인 질문부터 심층적인 질문까지 교수의 특색에따라서 질문이 어느정도 나뉜다. 긴장을 풀어주려고 가벼운 질문을 하려는 교수도 있었고, 역으로 꼬치꼬치 얼마나 알고 있는지 캐묻는 교수도 있었다. 또 좋아하는 작가나 미술관에 대해서는 꼭 한 번씩 물어볼 수도 있으니 답변을 잘 준비해두자. 


제1지망이었던 학교는 소논문은 그럭저럭 썼지만, 면접에서 꼬치꼬치 캐묻는 교수의 질문에 긴장하고 대답을 하지 못해서, 나는 면접 후에 떨어졌다고 상심했던 게 생각난다. 반면에 제2 지망이었던 학교는 소논문의 주제를 완전히 다르게 이해하고 전혀 다른 내용으로 작문을 썼지만, 면접에서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그리고 나는 일본 대학 면접은 정장을 입어야 된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청바지 스웨터 차림으로 면접에 임했다.! 면접장에 들어가니 다른 수험생들이 모두 정장이라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더욱더 대답을 성실하게 하고자 했던 것 같다.


결과는 두 군데 모두 합격을 받았다. 왜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나의 시험을 망했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왜 미술을 공부하려고 하는 지를 확실히 이해하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 자신감만으로도 절반은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합격 발표가 나던 날은 두 학교 모두 크리스마스 아침이었다.  나는 그 날 아침이 태어나서 제일 달콤한 아침이었던 것 같다.

1년의 워홀이 끝나고 다시 이전 학교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그리고 내가 바라고 바라던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과 기대감.

그렇게 나는 1 지망이었던 학교를 선택하고 한국으로 잠시 돌아가 이전에 휴학을 내었던 대학에는 퇴학 절차를 밟았다. 퇴학절차를 밟고 돌아오는 길은 후련함과 짜릿함, 그리고 뭔가 시원섭섭한 느낌이었다. 


사실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 전에 어느 정도 유학비자로 바꿀 계획을 대충 세우고 떠났다. 그래서 한국에 있을 때, 자료수집을 하던 중 일본 미대 입시 준비 전문으로 하는 한 사설 학원에 상담을 받으러 간 적이 딱 한 번 있다. 그 날은 가장 치욕스러운 날이었다.

일부러 약속을 잡고 찾아간 학원 원장님께서는 나에게 초면에 나같이 내성적이고 목소리도 작은 사람은 절대 입시에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을 퍼부었고, 포기하는 편이 빠를 거라고 하셨다. 나는 어쩌면 이 말에 오기를 느끼고 더 도전하려고 했던 것일 수도 있다. 무례한 원장님의 말을 뒤로하고 결국 혼자서 해냈다. 


남들보다 조금 느리지만, 천천히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경험은 지금도 나에게 값진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때이든 늦은 도전이라 없다. 결국 나는 나와 대여섯 살 어린 친구들과 함께 1학년에 입학했다. 


이 곳에 와서 또 한 가지 바뀐 점은 나이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입학했을 당시에 나는 우리 학년 중에서도 내가 제일 나이가 많을 거라는 생각에 알게 모르게 위축되기도 했었지만, 동기 친구들은 나를 그냥 친구로 받아주었다. 나이도 일절 묻지 않았다. 그게 제일 신기했다. 내가 나서서 나이를 말해도 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나는 오히려 이런 환경이 새롭고 오히려 자극이 되었다.

그동안 왜 그토록 나이에 신경을 쓰고 살았는지, 부질없이 느껴졌다. 


지금도 앞으로도 뭐든 도전하려 한다. 도전하기에 늦은 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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