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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kyo designer Nov 17. 2020

3. 워킹홀리데이 비자에서 유학비자로  

Toshinobu ONOSATO オノサト・トシノブ 「 二つの丸 黒と赤 」 1958年 油彩、キャンバス 16.2x23.2cm


그렇게 나는 워킹홀리데이 비자에서 유학 비자로 바꾸게 되었다.

비자를 변경하는 절차는 오히려 워킹홀리데이 때  보다  금방 끝났다.

제일 큰 변화는 나를 보증해 주는 소속기관이 생겼다는 점이다.

워킹홀리데이로 왔을 때는 내가 나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하도록 요구된다.

생활에 필요한 핸드폰 개통, 은행 계좌 개설이라던가, 집을 계약하는 데도 있어서 나는 이방인이기에 언제나 이방인이 아닌 보증인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이방인의 생활이 그리 나쁘지 만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채 3개월도 가지 못한다.

그렇게나 자유를 갈망하던 나는 생각 이상으로 끊임없이 소속감을 갈구하는 인간이었고, 조금이라도 비어있는 시간들을 견디지 못해 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바쁘게 지냈다. 그러나 어김없이 깊은 밤이면 슬며시 외로움은 이방인의 창문을 두드리며 안부인사를 한다.


나는 특히나 걱정인형 못지않게 걱정이 태산이었던 사람이었기에, 지금 이 순간을 마음 놓고 즐기면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언제나 무의식 중에 갖고 있었던 듯했다. 워킹홀리데이라는 비자 특성상 단 1년 간 체류할 수 있기에 워홀 후의 삶도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일본에 있는 동안 꽤 많은 워홀러들을 보았다. 그들은 각자 전혀 다른 삶의 방향의 찰나에서 다들 저마다의 이유로 워홀을 선택한다.


1년의 유예기간이 끝나고 또 다른 나라로 워홀을 떠나는 사람도 있었고 나와 같이 워홀 비자를 취직 비자나 유학비자로 바꾸려는 사람도 있었고, 다시 리턴하는 사람도 있었다. 혹은 리턴했지만 다시 돌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워홀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지만, 오히려 워홀이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는 자신 만이 알고 있다.


나의 경우에는 휴학을 하고 떠나온 워홀이지만, 워홀 이후의 복학하는 삶으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시절의 나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나에게 가장 못할 짓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곳에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찾는 것이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물러날 곳이 없었다. 벼랑 끝에 내몰렸기 때문에 나는 도전해서 잃을 것이 없었다.


해보고 아님 말지.
할까, 말까 일 때는 해보고 후회하는 게 더 낫다.


당시 내 방에는 이런 메모들만 주르륵 붙여 두었던 것이 생각난다.

이제부터 워킹홀리데이에 도전하려는 사람들과 도전했던 사람들 그리고

청춘의 한 페이지에서 잠깐이라도 스쳤던 인연들을 생각해보면 도전하는 모든 이들을 응원하고 싶다.


유학비자로 바꾸고 나니 나는 더 이상 구약쇼에 가서 눈더미 같은 주민세 용지를 들고 나의 수입이 없음을 발 동동 구르며 증명하지 않아도 되고, 부동산 심사를 외국인이라서 통과하지 못하는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를 증명함에 있어서 나의 소속이라는 것은 거의 제2의 신분증과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나를 증명하는 일은 해외살이에 있어서 가장 지치고 지루한 긴 싸움이다.

어느 사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오히려 한국에서 나를 증명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음을 나날이 느낀다. (해외 거주자라면 알만한 휴대폰 본인인증의 늪이다..)

당연하게도 한국에서는 내가 존재하지 않으니, 그곳에서도 나는 이방인이 될 수 있다.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조금 울적해진다.


한 가지 유학비자로 바꾸고 나서 안 좋은 점은 자격 외 활동 허가서를 얻어야 아르바이트를 하는 데 아르바이트 시간이 주 28시간을 넘어서는 안된다. 유학비자이기 때문에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다 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가난한 유학생활이 시작한다.

워킹홀리데이 때는 주 40시간 정도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야칭도 값싼 셰어하우스에서 지냈기 때문에 큰 지출은 별로 없었지만, 유학생활이라는 것은 가장 큰 지출이 집세 이전에 학비가 된다. 학비뿐만 아니라 학교가 멀다면 이사를 고려해야 한다.


나는 셰어하우스에서 워킹홀리데이 기간 동안 알게 된 한국인 유학생 친구를 만나 대학 입학 후 1년 간은 그 친구와 룸 셰어를 했다.

집은 그 친구의 집이었기 때문에 친구의 학교가 가까운 곳이었다. 반대로 나는 편도 1시간 30분 이상 걸리는 거리였다.


통학할 때 나는 10분 걸어서 역에 도착 → 전철을 4번 갈아타고 1시간 10분 소요 → 역에서 학교까지 자전거로 20분  통학. 육로의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듯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전차가 지연되면 이제 지각이다.

이 루트로 1년 간 생활하니 살이 찔 틈이 없었다. 마치 철인 3종 경기와도 같이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집에 가는 것이 나에게 가장 큰 숙제였다. 가장 바쁜 1학년 때 통학으로 시간을 버리는 것이 너무 아까워서 그다음 해부터는 학교가 가까운 곳으로一人暮らし(자취) 생활을 하게 된다. 그 결과 옳은 선택이었고, 미대는 언제나 짐이 많기 때문에 전철을 타고 자전거를 타는 루트는 4년간 하기에는 너무나 벅찼다.


그러나 유학비자를 받고, 원하던 학교에 합격해서 학생증을 얻게 되니 도내 미술관 박물관의 상설전시가 무료였던 점은 정말 좋았다.

더 많이 이용해야 하는데, 막상 대학생 때에는 과제에 치여 전시를 보러 갈 시간이 도무지 나지 않는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이는 비단 미대뿐만 아니라 도쿄 내 대학교의 캠퍼스 멤버에 들어있는 학교라면 문화시설을 매우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캠퍼스 멤버십에 학교가 있는지 체크를 해두는 것도 좋은 방법 일 수도 있다.

단, 기획전은 할인되지 않는다.  


학생일 때가 좋았지

라고 하는 어른 들의 말을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졸업해보니 정말 와 닿는 말이다. 학생일 때가 좋지 라는 말은 뭔가 이제 꼰대 같기도 한 말이지만,

나는 진심으로 학생을 더 많이 하고 싶다.

더 많이 배우고 싶다. 더 많이 경험하고 보고 듣고 느끼고 싶다.

순수하게 무언가로부터 습득하고 그것을 즐기고 싶다.

졸업하고 나서야 그때 더 뭔가를 해볼걸,, 이라는 생각이 최근에 많이 든다. 나는 유학 시절 동안 나름 많이 경험해봤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세상에는 경험할 것이 넘쳐흐른다.

나는 지금의 나도 좋지만 더 많이 세상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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