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 같은 존재

by 이유




노트북으로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소리 하나가 들렸다. 일상적이진 않지만 분명 들어본 적 있는 소리. 불길한 예감과 함께 소리의 출처를 찾았다. 역시나 함께 사는 고양이였다. 한쯤 감긴 눈을 하고 힘없는 자세를 한 고양이를 얼른 케이지에 넣고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의사 선생님은 걱정스러우면서 익숙한 얼굴로 말했다. "방광염이 재발한 것 같아요." 여러 검사를 마친 고양이는 이번에도 며칠간 입원을 하게 되었다. 입원기간은 피오줌이 그만 나오고 수치가 정상화될 때까지라는 말을 듣고 집에 돌아왔다. 켜져 있는 노트북 화면에는 쓰다만 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다시 자리에 앉아 작업을 시작하려 했지만, 가슴 깊숙이 자리 잡은 묵직한 무언가 때문에 집중이 전혀 되지 않았다. 결국 노트북을 덮고 신발을 신은 뒤 잠시 걷기 위해 밖을 나섰다.




평일 오후였는데도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거리에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보다 산책하는 반려견, 나무 사이를 오가는 새, 꽃 위에 앉은 벌 같은 것들이 눈에 걸렸다. 하나같이 평소에는 그냥 흘러갔을 풍경들이었다. 반려묘의 아픔은 시간의 문제일까 나의 문제일까. 나름의 답을 찾으려 고민하다가도 어느 쪽이든 속상하긴 매한가지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꽤 길게 걸은 후에야 집에 다시 들어갈 수 있었다.




반복의 힘을 절실히 느꼈던 순간들이 있었다. 재능이 없다고 느껴도 시간과 노력을 반복하니 성적이 올랐던 일, 성향상 맞지 않던 회사 동료와 반복해서 만나고 일하다 보니 괜찮은 사이가 되었던 일, 서툴었던 연애 경험들이 반복되다 보니 나름의 어른스러운 연애도 해봤던 일 등등. 하지만 쉽사리 적응되지 않는 반복 또한 존재했다. 빈자리를 반복해서 보는 일은 아직 내게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최대한 비슷한 하루를 보내고자 했다. 시간이 되면 밥을 챙겨 먹고 물에 불린 설거지를 했다. 새로 올라온 유튜브 영상도 보고 따뜻한 물로 샤워도 했다. 곧 돌아올 존재를 위해, 평소와 같은 생활과 공간을 느끼게 해 주려고. 이런 행동들은 잠시라도 나를 속이기 위함이기도 했다.




저녁을 먹고 밖에서 달리기를 했던 것은 큰 도움이 되었다.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니 잠도 잘 잘 것만 같았고, 흐르는 땀과 두 다리의 떨림은 일정 부분의 죗값을 받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죄책감이 조금은 덜어지기도 했다. 고양이도 분주하게 달리는 마음으로 원래의 자리에 돌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그런 생각을 하면 아득하다가도 각자가 서로 노력하고 있다는 마음에 안심이 되기도 했다.




길었던 하루가 마무리되어 가고 잠에 들 시간이 되었다. 이 시간이 되면 루틴처럼 하던 일들이 있다. 고양이의 화장실을 치워주고 습식 사료를 까서 그릇에 담아주었다. 이어서 물그릇을 씻고 새 물을 담은 뒤 자동급식기 안에 있는 사료의 양을 살폈다. 돌이켜보니 하루의 마무리까지 함께 하던 존재였던 것이다.




양치를 마치고 나온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루틴을 지키기로 했다. 습식 사료 주는 일을 제외하고 괜히 고양이 화장실의 모래를 삽으로 뒤적였다. 누구도 마시지 않을 물을 갈고 자동급식기에 쌓인 사료를 오래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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