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 혹은 평균보다 항상 키가 작은 축에 속하며 살아왔다. 종종 마음은 넓고 크지 않냐, 하늘에서 재면 제일 크다 같은 위로 반 농담 반 이야기를 들어도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에게 많이 분노하고 좌절했던 것 같다. 졸업하기 전까지는 학교가 마치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이런 아픈 마음들은 사실 외부의 시선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저 사람에게 나는 어떻게 보일까?',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오해하고 있진 않을까?' 같은 의문들이 나를 위축되게 만들고 소심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더 조심해서 행동하고 한 박자 늦게 대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이런 의구심이 진짜 무서운 점은 따로 있었다. 외부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타인의 날카로운 눈초리는 어느새 내면의 검열을 만들었다. 수시로 스스로를 자책하고 몰아붙이게 된 것이다. 원래도 그런 성격인데, 더 불안하고 신경 쓰는 유형의 인간으로 나는 변해 있었다.
친구들과 사진을 찍을 때면 전신사진보다는 상체만 나오게 찍는다거나,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사진을 찍으면 잘 안 보이는 자리를 찾아 뒤꿈치를 슬쩍 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우스꽝스러운 일이기 짝이 없지만 당시의 나에겐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처럼 시간이 지나니 그런 것들에 많이 무뎌졌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관심이 없으며, 피해의식 같은 말과 행동을 하는 건 대부분 나 자신에게서 시작됨을 알게 된 것이다. 결함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따지고 보면 나도 결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인정하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동경했다.
그런 결론에 다다르고 며칠 뒤 나는 평소처럼 길을 걷고 있었는데, 땅에 떨어진 만 원 한 장을 자연스레 주운 일이 있었다. 잠깐, 자연스레? 돌이켜 보니 나는 주변 사람들보다 땅에 떨어진 무언가를 발견하거나 줍는 일이 흔했다. 어떨 때는 동전이나 지폐일 때도 있었고, 또 어떨 때는 카드나 지갑, 민증 같은 것일 때도 있었다.
그날도 자주 있는 일처럼 여기고 지나갔을 법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묘한 기분을 느꼈다. 지금껏 나는 내 작은 키 때문에 이런 것도 잘 발견하는구나 하고선 한숨을 쉬곤 했다. 하지만 그제야 알았다. 그런 것과 무관하게 내 고개가 대체로 아래로 향해 있었다는 것을.
그런 자신이 한심하다가도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엄청난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스스로 만든 감옥 같은 생각에 빠져 왜 그리도 땅을 보며 걷는 날이 많았을까.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이 행동 덕분에 나는 남들이 잘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었고, 그로 인한 좋은 경험(?)을 하게 되어 기억에 남는 하루를 만들기도 한 것이다.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100% 맞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이제 대충은 그 의도를 알 것도 같다. 결국 필연적으로 지나야만 했던 시간과 사건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많이 있을 것이다. 막상 지나는 시기의 나는 또 괴로워하겠지만, 분명 나를 이루는 소중한 경험이 되어 어떤 식으로든 더 나은 나를 만들어주리란 낙관이 생겼다.
나이가 드는 일은 나를 더 알게 되고 이해하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사랑이 대체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고 하면, 나를 더 사랑하게 되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남아 있는 삶 동안 최대한 나와 불화하지 않고 지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