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만으로도 앞자리가 3인 나이가 되었다. 매일같이 잘 챙겨 먹으라던 부모님의 잔소리를 이해할 것도 같다. 예전처럼 밤을 새지도 못하겠고 소화력도 확실히 떨어졌음을 체감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이런 건가. 노화를 몸으로 느끼는 일이 생각보다 두렵다.
그렇게 한 달 가까이를 우울감과 함께 보냈다. 그 사이 밖은 봄이 찾아왔다. 다행히 한껏 따뜻해진 바람과 햇살을 덕분에 산책을 나가는 날이 잦았다. 벚꽃과 봄꽃들을 눈에 담고 그 앞에서 웃으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니 잠시 우울감도 가셨다. 해마다 돌아오는 계절인데 늘 새삼스럽다는 게 신기했다.
사진도 자주 찍게 되었다. 곧 떨어질 꽃잎들임을 알기에 부지런히 휴대폰이나 카메라로 풍경을 담았다.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고 있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봄인데 왜 익숙한 기분이 들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 계절에 언젠가의 내가 묻어있기 때문이었다.
잊힌 것도 많지만, 몇몇 봄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내게 남아있다. 그중 가장 깊게 기억에 남아 있는 건 21살의 나였다. 정확히는 입대를 앞둔 초봄의 나.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군휴학을 했다. 다른 친구들보다 긴 방학을 보내고 있던 나는 입대를 하는 달인 4월이 가까워오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집에만 있으니 더 불안해지는 것 같아 억지로라도 약속을 만들어 놀러 나가기 일쑤였다. 다행히 서로 입대날이 비슷해서 매번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내게 그래도 봄인데 꽃구경도 할 겸 여행을 다녀오자고 했다. 목적지는 경주였다. 우리는 내일 지구가 멸망할 것 같은 기분을 안고 출발했지만, 도착해서는 그런 생각을 까맣게 잊고 놀기 바빴다. 빌린 자전거에 힘차게 발을 구르며 바람을 만끽했고, 어렵사리 검색해 찾아간 맛집도 성공적이었다. 사진도 참 많이 남겼다. 사진 속 우리는 입대를 앞둔 사람들 치곤 활짝 웃고 있었다.
입대 일주일 정도 남았을 무렵에는 가족과 벚꽃축제도 다녀왔다. 서로 사랑하지만 대화가 많은 가족은 아니었는데, 우리는 용기 내어 한 마디라도 더 하려 했고 사진을 찍을 때면 억지로라도 웃었다. 아버지는 내가 조금 구겨진 표정을 하고 있으면 별로 웃기지 않은 농담을 던졌고, 식당에서 어머니는 말없이 앞에 놓인 반찬을 내쪽으로 밀었다.
그런 추억들이 처음 만나는 올해의 봄이지만 저 나무에 담겨 있었다. 겹겹이 쌓인 나는 비와 바람에도 꽤 끈질기게 떨어지지 않았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지만 또 같은 것처럼, 올해의 나도 함께 겹쳐진 계절을 미래의 내가 마주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괜히 미소가 지어졌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 나이를 먹는 일이 마냥 두렵게 느껴지진 않는다. 두려워하던 새학기를 넘기고 다음 학년으로 넘어갔듯이, 수십 번의 탈락을 딛고 회사에 들어갔듯이, 많은 다툼과 갈등을 지나 더 단단한 관계가 되었듯이 나는 또 낯선 나와 잘 지내고 나에게 적응할 것이다.
벌써 떨어지는 꽃잎에 아쉬움이 들기도 하지만, 새로운 여름에 대한 기대가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