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와의 낡지 않은 대화

by 이유




오랜만에 친구가 내려왔다. 여전히 지방에 있는 나와는 달리, 친구는 대학교와 취업 때문에 수도권으로 올라갔다. 예전만큼 자주 보진 못하지만 그래서 볼 때마다 더 반가운 마음이 든다. 사진과 영상 찍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이 먼 거리를 내려오며 카메라까지 챙겼다는 건, 이곳에서 남기고 싶은 게 있었다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멀리서 온 친구를 위해 그의 집 앞에서 8시까지 만나기로 했다. 심하게는 아니지만 잔잔하게 지각을 하던 친구는 여전히 8시 10분쯤에야 나타났다. 그 사실이 괘씸하다가도, 손에 들린 카메라로 열심히 구도를 잡아가며 만남의 순간을 담으려는 모습을 보니 참 여전하다며 괜한 안도감을 느꼈다.




우리는 카페로 자리를 옮겨 못다 한 얘기들을 나눴다. 자주 통화를 하는 사이지만 대화는 끊기지 않았다. 타이밍이 맞지 않거나 만나서 하고 싶던 말들이 있는 법이니까. 사실 친구와 나는 다른 부분이 많다. MBTI부터 평소에 하는 말이나 행동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서로 생각이나 고민이 많다는 점, 그런 소수의 공통점들이 우리의 관계를 지금까지 이어지게 한 것 같기도 하다.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늘 그랬듯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여느 생각이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 우리도 이제 제법 알고 있다. 이 고민이 해결된다 하더라도 또 다른 고민이 자리를 차지하게 될 사람이란 걸. 누군가에게 말하고 누군가가 들어준다는 사실만으로 그 존재는 특별하며 제 할 일을 다한 것이라고.




시킨 음료가 바닥을 보이고 조각 케이크가 몇몇 부스러기로 남았을 즈음, 우리는 자주 가던 산책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특정할 만한 추억이 담긴 장소였다. 그 말은 다 떨어져 가던 대화의 소재에 다시금 불씨를 지피게 됨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역시나 우리는 추억에 잠겨 말을 이어갔고, 내려앉은 어둠과 아래로 보이는 야경은 지금의 상황을 더 극적으로 기억하도록 만들어주는 듯했다.




친구는 주위를 둘러보며 사람들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카메라를 들었다. 본격적인 우리만의 놀이가 시작된 것이다. 어떤 관객도 없었지만 우리는 각자의 역할에 금세 몰입했다. 친구는 영화감독처럼, 나는 배우처럼 자연스럽게 친구는 가로등을 조명 삼아 적당한 장소를 물색했고, 나는 어떤 모습과 말을 담을지 고민했다.




이걸로 돈을 벌거나 유명세를 얻는다거나 하는 건 없다. 주위에 보여주며 자랑하지도, 엄청나게 멋진 사진이나 영상이 남겨질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주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이렇게 효율과 계산 없이 행동했던 게 언제였더라. 경쟁 속에서, AI와 기술의 발전 속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달고 살던 지난날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던 시간이었다.




택시를 타고 집에 오는 길에 눈을 감고 하나의 생각에 잠겼다. 만나면 하루가 아쉬워 다음날의 새벽을 당겨 쓰던 10대를 지나, 술 없이는 만남도 없던 20대를 지나, 이런 30대가 되었다. 술 없이 하루가 지나기 전 귀가하는 내가 택시에 타고 있었다.




남은 30대와 40대, 그리고 그 이후의 나는 어떻게 될까. 우리는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변화는 늘 두려움을 동반하지만, 변화를 통해 만나게 될 새로운 나와 변하지 않고 지킬 나의 일부가 기대된다는 결론에 다다랐을 때 택시는 집 앞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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