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우엉은 쩌리가 아니라고요.

by 채움


#1.

냄새는 기억보다 집요하다. 나를 환장하게 만드는 그 냄새. 코끝을 스치는 순간 미간이 찌푸려지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것은 아이의 실리콘 식판에 밴 지독한 들기름 냄새이다.


나물을 좋아하는 아이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시금치와 콩나물에 듬뿍 뿌렸던 고소함이, 어느새 악취로 변해 식판의 모서리에 들러붙었다. 세정제로 박박 문지르고, 끓는 물에 팔팔 삶아봐도 소용이 없다. 한때는 정성이자 사랑이었을 그 향기가, 이제는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숙제거리가 되어 나를 매일같이 시험에 들게 한다.


식판에 달라붙은 들기름의 번들거림과 특유의 냄새는 마치 내가 여기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씻어내도 가시지 않는 그 미끄덩거리는 감각은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반지하 냄새를 떠올리게 한다. 나에게 이 냄새는 지랄 맞게도 내가 속한 좌표가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각인시키기 때문이다.


12월 연말, 세상이 크리스마스에 흠뻑 취해 한 해의 성취를 다독일 때, 나는 새벽 배송으로 도착할 홍합 껍데기를 확인하며 식판의 악취와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검색창에는 연말 모임 장소 대신 #홍합 이유식 요리, #홍합 보관법, #실리콘 식기 냄새 없애기, #도자기 식판 같은 단어들이 줄을 이었다.


나는 정말 잘 살고 있는 걸까.

나 하나 없어져도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

연고도 없는 타지에서 아이와 단둘이 남겨진 방은 거대한 수조 같았다. 그 안에서 나의 시간은 뜨거운 솥 위에 올려져 있었다. 남편은 지금 내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중이라 말하지만, 끈질기게 따라붙는 생활의 냄새와 사투를 벌이는 이 반복적인 노동이 정말 숭고한 것인지는 의문이 든다.


꽤 넉넉한 크기라 자부했던 나의 그릇은 육아의 열기 속에서 서서히 졸여지고 있었다. 사소한 투정에 날을 세우고, 작은 실수조차 품지 못하는 옹졸한 인간이 되어버린 것 같다. 형체도 없이 녹아내려 검게 타버린 찌꺼기만 남는 건 아닐까 하는 공포는, 코끝에 맴도는 들기름 냄새만큼이나 역하고 집요했다.


조만간 식판을 정리해야 될 것 같다..



#2.

그렇게 냄새 하나가 내 삶을 완전히 잠식해 버린 지 2주쯤 지났을까.


마루 바닥에 몸이 달라붙어 일어날 기력조차 없던 어느 날, 육아 전선에 막 뛰어든 동료 교사의 연락을 받으며 나는 비로소 눈을 떴다. 2주 넘게 냄새에 절여져 땅굴을 파던 나를 끄집어낸 것은, 다름 아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였다.


도와달라며 울먹이는 그녀의 목소리는 수조에 갇힌 내게 날아온 절박한 구조 신호 같은 것이었다. 연고 없는 타지에서 아이와 단둘이 남겨진 고립감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나조차 가누지 못해 땅굴 속에 처박혀 있던 멘탈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주말을 빌려 부리나케 달려간 그곳에는 태어난 지 고작 50일이 된 아이와, 두려움과 안도감이 뒤섞인 초보 항해사의 눈이 있었다. 낯설고 거대한 파도 앞에 초보 항해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것은 거울 속에 비친 나의 얼굴이기도 했다. 아이의 작은 숨소리 하나에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던 우리의 지난날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저녁을 먹던 중,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마른세수를 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짧은 시간 동안 전해줄 수 있는 가장 귀한 말을 고르고 또 골랐다. 어떤 대답이 그녀의 무너지는 마음을 붙들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였다.


"에이, 선생님이 엄마잖아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선생님이 엄마인데, 아이는 바르고 따뜻하게 잘 클 거예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펑펑 우는 그녀를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육아는 우리를 열정과 무기력 사이에서 끊임없이 자맥질하게 만든다. 잘하고 있는지 매 순간 스스로를 의심하게 하고, 아이가 삶의 중심이 되는 사이 내 존재는 자꾸만 뒤안길로 밀려나게 된다. 맘카페의 수많은 조언 사이를 헤매는 동안, '나'라는 존재는 흐릿해지고, '엄마'라는 좌표만 덩그러니 남은 것 같았다.


그렇게 서로의 막막함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턱 끝까지 차오른 수조의 물이 조금은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날 나는 그녀를 위로함과 동시에 나 자신을 보고 있었다. "선생님은 잘할 거예요" 그 말은, 어쩌면 그녀의 어깨 너머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응원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독한 들기름 냄새 속에서 스스로를 '쩌리'라 몰아세우던 나에게 가장 전하고 싶었던, 간절한 고백이었다.



#3.

다음날, 냉장고를 정리하며 엄마가 보내주신 우엉조림을 꺼냈다.

묵은지를 넣은 김밥을 최애로 치는 나에게, 김밥 속 우엉은 늘 눈에 띄지 않는 조연이었다. 계란 지단처럼 선명한 존재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참치처럼 화려한 감칠맛이 맴도는 것도 아니다. 강렬한 맛들에 밀려 내 식탁에서 늘 뒷전이던 우엉은 있으나 마나 한 구색용 재료이자 외면받는 '쩌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날따라'가 늘 우리의 발목을 붙잡지 않던가. 그날따라 유독 투박한 우엉조림이 눈에 밟혔다.

화려한 색깔들에 가려져 있었지만, 씹을수록 배어 나오는 담백하고 고소한 그 맛이 자꾸 입안에 맴돌아 침이 고였다.

주방 조리대 앞에 서서 그 우엉을 주인공 삼아 김밥을 말았다. 보조 재료는 담백한 계란 지단과 샛노란 단무지뿐. 거무튀튀하고 노르스름한 것들이 뒤섞여 김밥 속을 꽉 채운다.


김밥을 단단히 말아 쥐며 나의 1년을 반추했다.

떠오르는 키워드는 "육아"가 전부였다.

육아라는 낯선 음식 속에서 나를 삭히고 뭉개며 보낸 시간들이 떠올라 자연스레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선택한 이 시간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지지 않기를. 삶의 깊은 맛을 내기 위해 달여지는 과정이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우엉은 흙 속에서 누구보다 끈기 있게 자신을 키워낸 단단한 식재료다.

김밥의 옆구리가 터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묵직한 녀석, 아린 맛을 빼기 위해 뜨거운 불 위에서 쪼그라드는 수고를 기꺼이 견디며 제 맛을 내는 녀석이다.

나 역시 이 우엉처럼, 매일의 소란 속에서 조금씩 졸여지며 고요한 심지가 되어가는 중이다. 내 자리를 묵묵히 채우는 이 시간들이 나의 삶을, 또 우리 가족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정직하고 깊은 맛이 되리라 믿는다.


올해의 끝자락, 나는 지워지지 않는 들기름 냄새 대신, 내 안에서 배어 나오는 우엉의 달큼한 향기를 맡아본다. 우엉은 쩌리가 아니다. 나 또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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