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침부터 집 안에는 달큼한 고기 냄새가 진동을 했다.
연이틀 교문 지도를 위해 이른 아침부터 핫팩을 쥐고 사라지던 남편은, 주말이 되자 비로소 침대와 한 몸이 되어버렸다. 깨워야 할까 고민하다가, 남편의 고요를 지켜주기로 마음먹고, 부엌으로 향했다. 아이 아침을 서둘러 먹이고, 우리 부부의 아침 식사를 위해 남은 돼지갈비를 꺼내 김밥을 말 준비를 시작했다.
노릇하게 구운 갈비와 샛노란 단무지, 그것들을 포근하게 감싸는 상추와 방풍나물. 사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완성된 쌈의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쌈장 한 숟가락을 더 얹기로 했다.
시판 쌈장에 우렁 쌈장과 참기름을 섞은, 일명 '사짜'의 맛이다. 짭짤하고 매콤하며, 혀끝을 잡아채는 감칠맛이 더해져야만 비로소 '어른의 식사'가 완성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재료들을 한데 모아 꾹꾹 눌러 김밥을 말았다. 한입 가득 입안에 넣었을 때, 돼지갈비의 달짝지근함에서 시작해 방풍나물의 씁쓰레함으로 끝나는 그 풍성한 맛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주방 한쪽에서 김밥을 말며 나는 이 자극적이고도 선명한 맛이, 요새 내가 탐닉하는 에세이집의 문장들과 묘하게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삶의 비린내와 소금기를 '지독히도 정직하게' 담아낸 어른들의 문장 말이다.
나는 요즘 시간만 나면 그렇게 에세이집을 찾는다.
이번에도 김밥을 다 말고 남편을 깨우기 전까지, 나에게 허락된 그 찰나의 시간을 쓰기 위해 주방 한쪽에서 읽다 만 에세이집을 꺼내 들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일어줘(읽어줘)! 일어줘(읽어줘)!" 하며 자기가 고른 <아기 돼지 삼 형제>를 석기시대 둔기처럼 들이미는 아이 때문이다. 잠옷 바짓가랑이를 생명줄이라도 되는 양 움켜쥐고 늘어지는 통에, 나는 주방 한복판에서 주유소 인형처럼 펄럭이는 신세가 되었다. 아이의 끈질긴 구애와 나의 지독한 독서욕 사이에서 벌어지는 육탄전에 승자는 없다. 쪼개고 쪼개서 읽는 것이 한두 쪽. 하지만 그 부스러기 같은 한쪽이 요즈음은 그렇게 귀할 수가 없다.
본디 인간은 가진 자원이 한정적일수록 더 절박해지는 법이다. 나에게는 그것이 '조각난 시간'이었다. 10분도 채 되지 않는 찰나이지만, 그렇기에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오기가 문장 하나하나를 더 깊게 파고들게 만들었다.
쌈장을 듬뿍 넣은 갈비 김밥 한 점을 입안에서 오래도록 음미하듯, 나는 타인의 문장을, 그 속에 담긴 그들의 삶을 씹고 또 씹어본다.
하지만 아쉽게도 세상은 이 진한 문장에만 머물러 있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결국은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다시 '순한 맛'의 세계로 강제 소환당하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읽어주는 동화책은 자극 없이 순하디 순한 맛이다. "착한 행동을 하면 복을 받는단다." 라며 달달한 사탕을 한 움큼 녹여 먹는 듯한 목소리를 연기하다 보면, 어느새 내 안에는 지독한 허기가 차오른다. '착한 행동 하면 좋긴 한데, 살다 보니 운칠기삼도 무시 못 하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때도 있다. 내가 살아본 세상은 서글프게도 그렇게 예쁘기만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요새는 나도 모르게 '진한 맛'을 찾나 보다. "사실 인생은 때때로 구질구질하고, 나도 가끔은 도망치고 싶어."라고 고백하는 타인의 솔직한 목소리. 날것을 뛰어넘어 날이 선 문장을 만날 때, 아이와의 낭독 시간 틈새로 벌어진 나의 갈증은 비로소 해소된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나누던 교환일기의 쏠쏠한 재미는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타인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데서 오는 묘한 카타르시스, 그리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위로와 동질감을 찾아가는 과정들까지. 그들의 삶을 꾹꾹 눌러 담은 문장들을 한 점 한 점 삼키다 보면, 그것들을 다 소화해 낼 즈음엔 입에서 단내가 폴폴 난다. 누군가의 치열했던 어제와, 구질구질한 고백들을 내 것으로 소화시키는 과정은, 김밥을 만들 때처럼 적잖은 에너지가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그 단내는 내가 여전히 타인의 삶에 뜨겁게 공감할 수 있다는 가장 선명한 증거가 되어주기도 한다. 문장 사이사이에 숨겨둔 감정에 반응하면서 나는 생의 한복판에 있음을 실감한다. 이렇게 생생한 고백을 엿보는 행위는, 윗목으로 밀려나 있던 '나'라는 존재를 다시 삶의 중심으로 끌어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어쩌면 우리가 수필을 읽는 것은, 김밥 속에 쌈장을 듬뿍 넣는 심정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밍숭맹숭한 일상 속에 짠내 가득한 진실을 한 움큼 얹어,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각난 시간 사이로 타인의 삶을 씹으며, 입 안 가득 고이는 단내를 즐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