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뜨끈한 닭개장 한 그릇을 비우며 하루를 시작했다. 방학이 오기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애쓴 남편과 나를 위한, 일종의 보상 같은 요리였다.
커다란 냄비에 닭을 푹 삶아냈다. 뜨거운 김을 참으며 잘 익은 닭고기를 결대로 찢고, 다진 마늘과 생강즙, 미림 등을 넣어 잡내를 잡았다. 이 수고로움은, 지난 학기 우리의 고단함을 찬찬히 다독이는 과정과도 닮아 있었다.
몸을 보하는 음식을 준비하는 것과 더불어 한 일(지금도 하고 있는-)은 ‘물건 버리기’였다. 그동안 바쁘다고 차일피일 미루고 돌보지 못한 우리의 일상을 되찾고 싶다는 마음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채우기 위해서는 비움의 시간 또한 필요하다. 나는 비로소 묵혀두었던 물건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교단에 서던 시절부터 품고 온 짐이 한가득이었다. 혹시 필요할까 봐, 추억이 깃든 물건이니까. 갖가지 연유로 버리지 못한 것들이 결혼과 육아를 거치며 배로 불어났다.
아이와 함께 부대끼며 살다 보니 자잘한 물건들이 자꾸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이유불문, 현재 쓰지 않는 것들은 무조건 비워내기로 했다. 빨래를 개며 슬쩍, 택배 박스를 정리하며 슬쩍. 그렇게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내다 버렸다.
수명이 다한 고래 장난감, 차를 닦기 위해 모아두었던 수건들, 그러다 주방 서랍 한쪽에서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영양제를 발견했다. 몸이 부서질 것 같던 어느 새벽, 광고 문구에 홀려 주문했던 그것들은, 결국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한 채 먼지만 뽀얗게 뒤집어쓰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미련 없이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렸다. 툭, 하고 떨어지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마음의 부채감도 조금은 덜어지는 기분이다.
더 덜어내야 한다.
덜어내고, 걷어내다 보면 비로소 ‘진짜’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작업은 마치 가스불 위에서 끓어오르던 닭개장의 붉은 고추기름을 걷어내는 것과 같다. 몇 번이고 반복되는 이 지루한 공정을 거쳐야 닭개장은 깔끔하고 깊은 제 맛을 드러낸다.
유효기간이 지난 영양제나, 언제 한번 보자는 기약 없는 메시지 같은 불필요한 기름기를 걷어내다 보면, 국물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짐을 덜고 관계의 소음을 줄일수록, 역설적이게도 어떤 것을 채워 넣어야 하는지, 누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가 명확해진다. 아이가 건네는 뜬금없는 웃음 한 조각이나, 남편의 실없는 농담 뒤에 가려진 응원의 메시지나, 그리고 폭풍 같은 하루 속에서 간신히 확보하고 있는 나만의 10분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이건 어쩌면 해일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선택한 생존본능인지도 모른다. 비워진 자리에 고이는 고요가 무엇보다 달콤하다. 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 나는 오늘도 국자를 들고 기름기를 걷어낸다. 내 삶의 불순물을 걸러내기 위해서는 때로는 단호함도 필요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