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우리에게 김치찌개 속 라면 사리가 절실한 이유

아, 이 맛 아임니꺼.

by 채움


#1.

돌아온 한 주는 김치찌개와의 공생(共生)으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주 2회 김치찌개를 끓여 먹고, 다음 날 아침, 남은 국물에 라면 사리를 투하해 다시 2회의 식사를 해결했다. 일주일 동안 총 네 번의 조우.

이쯤 되면 내 혈관에 김치 국물과 라면 수프가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뻔한 식탁 속에서 나는 fun 한 행복을 찾는다.


좋아서 끓여 먹은 까닭도 있지만, 대개는 육아와 업무로 정신이 없어 '대충 있는 것'으로 끼니를 때우려다 보니 생긴 결과였다.

그래도 똑같은 찌개를 연달아 아침상으로 내놓는 것이 못내 미안해, 남편과 나는 각자의 아침을 책임지는 셰프가 되어 변주를 즐겼다. 하루는 남편이 좋아하는 생돼지고기를 듬뿍 넣어 묵직하게, 또 하루는 내가 좋아하는 스팸과 참치를 조합해 경쾌하게.

그리고 그 모든 변주의 끝, 대미를 장식하게 된 라면 사리. 고된 일상 속에서 이토록 간편하게, 확실한 행복을 보장받는 방법이 또 있을까.


보글거리는 국물 속에 라면 사리를 던진다. 면발이 익으며 뿜어내는 전분은 국물을 녹진하게 만들고, 면발은 다시 그 국물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면을 양껏 들어 올려 입 안에 넣는 순간, 살찌는 걱정보다 도파민이 선사하는 쾌락이 앞선다. 그리고 이렇게 내 맘대로 사리를 넣어 먹을 때마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어릴 적 엄마는 김치찌개에 라면 사리를 넣어 먹는 것을 금기시하셨다. 짜디짠 국물에 칼로리 폭탄인 면 조합이 아이들의 건강에 좋을 리 없다는 판단이셨을 것이다. 하지만 자극적인 맛이 어디 가겠나. 어쩌다 한 번 찌개에 들어간 라면을 먹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젓가락이 춤을 췄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내 손으로 그 금기를 깨뜨리며 묘한 승리감을 맛보는 중이다. 성공한 어른이 별 건가. 남 눈치 안 보고 msg 팍팍 때려 넣은 찌개에 라면 사리 넉넉히 넣어 먹는 내가 진정 성공한 어른이지.


'아는 맛'은 무섭다. 그러나 그 익숙한 자극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원리는 생각보다 정직하다.

이제껏 경험해 본 삶의 데이터를 돌려보건대, 우리가 아는 맛을 찾는 것은 그만큼 일상이 고단하다는 시그널로 보인다. 뇌는 새로운 정보를 처리할 때,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한다. 반면 이미 검증된 익숙한 자극에는 최소한의 에너지만으로도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결국 '아는 맛'을 더 자극적인 형태로 갈구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현재 나의 에너지가 바닥났으며, 삶의 무게가 그만큼 무겁다는 정직한 방증일 터다. (이러니 저러니 썼지만, 사실은 힘들어서 도파민 터지는 자극적인 음식이 간절하다는 고백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일상은 이미 충분히 자극적이고 불확실하다. 지금 당장 나의 삶을 봐도, 변수 가득한 육아 전쟁터에서 새로운 자극을 처리하느라 에너지는 이미 고갈 상태이다. 예상치 못한 피로가 모래성처럼 쌓인 날들의 연속이다. 그럴 때 내가 아는 그 맛이 변함없이 나를 기다린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강렬한 안도감과 위안을 준다. 이는 지친 날들에 내가 나에게 허락하는 가장 익숙하고 따뜻한 '홈 스윗 홈(Home Sweet Home)'이다.




#2.


새로운 맛집을 찾아 지도를 뒤지고,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국적인 음식에 도전하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된 날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뜻밖에도 너무나 익숙해서 지루하기까지 한 '아는 맛'이다. 익숙한 자극을 만났을 때 우리는 진정한 휴식 모드에 들어간다.


결국 아는 맛을 찾는다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를 넘어, 지친 영혼을 가장 안전한 안식처로 귀환시키는 일이다.


아이가 커갈수록 '산 넘어 산'을 겪으며, 나는 매일 아침 또 어떤 예측 불허한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긴장한다. 하지만 김치찌개 위에 무심히 던져 넣은 라면 사리 조합이라면, 그날만큼은 기꺼이 '홈 스윗 홈'이 가능하다. (물론 거기에 밥까지 비벼 먹으면 금상첨화겠지만, 양심이라는 것이 있으니 자제하기로 한다.)


지극히 평범한, 아는 맛 한 그릇이 속속들이 위로를 건네는 요즘이다.

당신에게도 마음을 편히 누일 수 있는 '홈 스윗 홈' 같은 맛이 있는지.

고단했을 당신을 구원해 줄 라면 사리 같은 존재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한 아침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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