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집은 아침, 저녁으로 기름냄새가 폴폴 풍긴다. 이유는 다름 아닌 '밥전' 때문인데, 아이가 먹다 남은 이유식으로 밥전을 만들어 본 것이 시작이었다.
김밥에 계란물을 입혀 구워 먹는 것은 해봤지만, 밥전은 생소한 시도였다. 먹다 남은 재료를 밥과 비벼 기름에 지진다는 것이 영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밥전은 이유식의 틈을 타 자연스럽게 우리 식탁에 자리 잡았다.
아이가 잘 먹으니 사실 그것만으로도 프리패스감 아닌가.
진밥조차 죽에 가까워 연신 도리도리 고개를 젓던 아이는 너비아니나 전은 잘 먹었다. 그래서 밥도 전으로 만들어 준 것인데 잭팟이 터지고야 만 것이다.
어떤 형태든 아이가 잘 먹고 건강하게 자라주면 그걸로 족한 일이다.
밥전을 한입 베어 물고 싱긋 웃는 아이를 보며 어느 엄마가 그 음식을 마다할 수 있을까.
게다가 밥전은 '생존형 식사'로 제격이었다.
밥을 차리다가 아이가 울면 불부터 끄게 된다.
아이가 잠든 틈을 노려 한 끼 해보겠다는 다짐을 해도 그 시간쯤엔 이미 목 늘어난 티셔츠에 만신창이 몸뚱이가 기다리고 있다.
계획한 메뉴는 자주 틀어지고, 장을 봐도 재료는 자꾸 시든다.
한때는 정성껏 차린 밥상이 나를 지탱하는 방식이었는데, 요즘은 매 끼니가 전투다. 어딘가 늘 수월치 않다.
그런 날들 속에 밥전은 이렇게 속삭인다.
'뭐. 수 틀리면 빠꾸 하는 거지. 모로 가도 밥만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밥전은 작지만 분명한 위로가 된다.
무엇보다 프라이팬에서 밥전이 지글거리는 소리는 제주도의 비 오는 날을 떠올리게 한다.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던 첫날, 비가 많이 왔었다.
카페 창가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마셨던 커피와 한숨 돌리며 남편과 웃었던 기억이 자꾸 밥전 위로 겹쳐진다.
육아가 조금 몸에 익은 탓일까.
나는 요즘 틈만 나면 제주도 정보를 검색한다.
돌 지난 아이와 제주도에 갈 수 있는지,
만약 간다면 어떤 준비물을 챙겨야 하는지,
아이와 함께 머무를 수 있는 숙소는 어디가 좋은지.
돌이 갓 지난 아이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설렘보다 고단함에 가깝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지만, 넘실대는 제주도의 푸른 바다가 자꾸 나를 부추긴다.
간단히, 그리고 간신히 먹는 아침 식사.
비루한 음식이 때로는 가장 큰 위로가 된다.
기름에 눌은 밥의 고소함이 오늘 하루를 버티게 하고, 지글거리는 프라이팬 소리 덕분에 잠깐이나마 숨통이 트인다.
김치볶음밥, 토스트, 밥전까지.
어쩌면 요새 내가 만들어 먹는 음식들이 엄마가 되어 처음 맞이하는 내 방식의 '위로식' 인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아이를 먹이는 일이 곧 나를 지탱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시행착오를 겪었지만(지금도 겪고 있지만), 그 과정 속에서 나 역시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한 끼를 해내고 나면 조금은 덜 외롭고 더 견딜 수 있지 않을까.
수 틀리면 빠꾸, 빠꾸해도 괜찮다. 나를 위해서.
밥을 먹는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시기니까 말이다.
눌은 밥전에 오이장아찌를 얹어 먹으며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다독인다.
그리고 언젠가 아이가 크면 밥전을 해줘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비가 오는 날 창가에 앉아서 같이 밥전을 해 먹어야지.
아무도 몰랐던 그 조용한 전투 속에서 받았던 밥상의 위로를 아이에게도 들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