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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멀지 않은 마음들

by 채움



#1.

아침 식탁에 앉아 토스트를 굽고, 엄마가 만들어주시던 커피에 헤이즐넛 시럽을 추가한다.

아이는 밥을 먹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조용한 주방, 느긋하게 시작하는 하루.


아이 방에 어울릴 만한 소품을 찾던 중 핸드폰 화면이 반짝이고, 익숙한 이름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선생님, 잘 지내시죠?"

"교양 수업 듣다가 선생님 생각이 나서요"

"선생님 덕분에 꽤 괜찮은 20살이 된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졸업한 제자들이 보내온 메시지. 그리고 스승의 날.

잊고 있던 그날이다.


우리 집 냉장고에 붙은 커다란 은행 달력에는 남편의 야근, 학교 행사, 아이 병원 일정, 살림살이 챙길 날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공구 진행 날짜는 기가 막히게 기억하면서도 달력 속 날짜 감각은 놓치고 있는 요즘, 어느새 5월도 벌써 중반을 지나고 있었다.


메시지를 보내온 아이들은 다양했다.

이제 막 고등학교 꼬리표를 뗀 아이들도 있었고, 고등학교에 올라가 분투 중인 아이들도 있었다.

개중에는 원하는 대학에 간 아이도 있었지만,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아이들의 짧은 문장 사이사이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리듬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 불안과 기대 사이에서 조금씩 속도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

그것을 알게 되자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커피를 홀짝이며 토스트를 베어 물었다.

한쪽이 살짝 탔지만, 어쩐지 그 바삭함마저도 좋다.

아이들이 그렇게 조금씩 자라나는 동안, 나도 자라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예전 같았으면, '아니, 벌써 나를 잊었단 말이야?'싶어 서운했을 것들이 이제는 고맙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아이들의 새로운 시작을 기쁘게 바라보는 내가 있으니까.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보니 문득 '보리밟기'라는 말이 떠오른다.

옛말처럼 들리지만, 보리밟기란 겨울철 웃자란 싹의 성장을 잠시 늦추고, 얼어붙은 땅 위로 솟아오른 보리 뿌리를 다시 땅과 밀착시켜 주는 작업이다. 이러한 과정은 보리의 성장을 도와 더 깊고 단단하게 자라게 해 준다.

지금은 교단에서 잠시 벗어나 있지만, 어쩌면 나 역시 그런 시간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2.

아침마다 교실 앞문을 활짝 열고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던 나. 일찍 학교에 온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하루를 시작하던 나는 더 이상 없다.

아침마다 아이 밥을 챙기고, 기저귀와 놀잇감 사이를 오가며 아이의 알 수 없는 옹알이에 맞장구를 치는 내가 있을 뿐이다.


나는 여전히 학교가 그립다.


수업 중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며 묻고 답하던 시간,

무심코 던진 질문에 눈을 반짝이며 대답하던 아이들. 그리고 그새 성장했다고 다 같이 박수를 치며 환호하던 순간들.

말하지 않아도 통했던 우리의 콤비 플레이와 슬램덩크 저리 가던 하이파이브.

아이들과 함께 고민하며 하루를 만들었던 그 시간이, 그날의 교실이 여전히 내 마음 한구석에 살아 있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질 즈음, 그 말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아이들의 메시지는 단순한 인사를 넘어 "여전히 괜찮다"라고, "그 자리에 있어도 된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언젠가 다시 교실로 돌아갈 날이 오겠지.

그때까지는 오늘처럼 토스트를 굽고, 커피를 내리며 내 방식대로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고 있는 것처럼, 나도 지금 내 자리를 지키며 조금씩 자라고 있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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