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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여름을 비비는 맛

by 채움



오이소박이, 열무국수, 수박냉면, 쫄면.. 쫄면?!

이틀에 한 번 꼴로 쫄면이 당기기 시작하면 아, 우리 집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구나 싶다.






#1.

쫄면 특유의 쫄깃한 면발이 소화가 되지 않을 때가 있어 어릴 적에는 비빔국수를 더 즐겨 먹었다.

그런데 나이를 한두 해 먹다 보니 입맛이 변한 걸까.

아니면 쫄면 러버인 남편과 붙어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나도 쫄면에 발을 들인 걸까.


쫄면은 속재료에 따라 맛과 결이 천차만별이라 은근히 손이 많이 간다. 그래서인지 여유로운 주말, 아침 겸 점심으로 먹는 밥상에 제격이다.


우리는 주말 이틀 내내 돌아가며 늦잠을 잔다.

토요일은 평일 내내 학교 일과 아이들 틈에서 달려온 남편이, 일요일은 일주일을 마무리하며 다가올 한 주를 준비하는 내가.

늦잠을 자는 순서를 따로 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를 함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를 배려하며 만들어진 우리만의 루틴이었다.




#2.

늦잠을 자던 남편이 일어나 아이와 놀아주는 틈을 타서 나는 빠르게 쫄면 만들기에 돌입했다.

여름에 어울리는 새콤하고 감칠맛 나는 쫄면을 만들기 위해 꺼내든 비장의 치트키는 바로 콩나물.

콩나물을 삶은 물을 양념장과 면을 삶는 데 사용하면, 소고기 다시마나 코인 육수와는 또 다른 시원하고 개운한 맛이 난다.

입안에 착 감기는 느낌. 아마 "본투비 감칠맛!"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닐까.


양념장과 면이 완성되면, 손질해 둔 채소와 함께 버무린다. 아삭한 콩나물과 시원한 오이, 매콤한 김치, 깔끔함을 더해주는 상추나 깻잎을 넣고 쓱쓱 비벼주면 집 나갔던 입맛도 돌아오는 여름철 쫄면 완성이다.

날이 더 더워지면 여기에 새콤한 자두를 얇게 썰어 넣는다. 여름이 깊어질수록 입맛도 과감해지는 법이니까 말이다.


이틀 전, 남편이 퇴근 후 만들어준 쫄면과 오늘 만든 쫄면을 비교해 본다. 결과는 오늘의 요리 압승!


남편은 한입 먹더니 시판 쫄면으로 이런 맛이 날 수 있냐며 눈이 휘둥그레진다.

살면서 먹어본 쫄면 중 제일 맛있다며,

심지어 계란의 익기까지 완벽하다고,

팔아도 되겠다고 호들갑을 떤다.


이미 내년치 체력까지 다 쓴 육아로 지쳐있는 나를 보며 어떻게든 텐션을 끌어올리려는 그의 발악(?)이겠지만, 알면서도 듣는 칭찬 한 마디에 다시금 기운이 오른다.

발끝에서 동동거리던 에너지가 다시 한번 펌프질 해댄다.




#3.

아이의 낮잠 시간, 침대에 누워 각자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말고 남편이 불쑥 말했다.

"그래도 지나고 보면, 나는 이 시간이 그리울 것 같아."


익숙한 밥 냄새로 하루를 여는 시간들이 있다.

따뜻한 음식 냄새가 부엌을 채우던 아침,

민소매 차림으로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꼬마 악동,

그리고 현타와 행복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는 우리 두 사람.

그 작은 여름 풍경 안에서 우리는 매일, 서로의 하루를 나누고 있다.


쫄면에 콩나물이 빠지면 그 맛이 완성되지 않듯,

우리의 여름에도 너와 내가 빠지면 안 되는 조각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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