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래야 하니까”
삶에서 가장 가슴 뛰는 일을 찾는 것,
그것이 당신이
이 세상에 온 이유이자 목적입니다.
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 <다릴 앙카>
어릴 적 나는 종종 문학소녀라고 불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글을 잘 썼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달리 책을 많이 읽는다거나 글 쓰는 걸 즐기는 취미를 가진 건 아니었다. 그건 어정쩡하게 타고난 재능 같은 것이랄까, 혹은 틈만 나면 해오던 ‘생각하기’라는 취미가 빛을 발한 것일까, 별다른 노력 없이 주어진 능력 덕분이었다.
사실 지금에 와서 그것을 능력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부끄러운 면이 없잖아 있지만, 어쨌든 당시의 내가 쓴 글은 학교 선생님들의 이목을 끌기에는 충분한 듯했다. 그래서 나는 자주 선생님들의 추천으로 각종 글짓기 대회에 나갔고, 몇 번의 상을 받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 점을 별로 자랑스럽게도, 또 대수롭게도 여기지 않았다. 애매한 실력 탓이랄까, 또는 빠르게 써야 하는 작업이 어려운 나의 느림보적 성격 때문이랄까,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고 제출한 원고들은 나에게, 한 두 번의 우수상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장려상을 가져다줄 뿐이었다. 그런 수상이력이, 전반적으로 모든 것을 평탄하게 잘 해내어 모범생이라 불리던 당시의 나에게 그다지 큰 메리트를 주지는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한 외부현실은 당연하게 내면화되어 버린다. ‘문학소녀’라는 말이 내포한 ‘글 쓰는 것에 재능이 있는 나’라는 자아상은 나의 무의식에 콕 박혀 빛이 든 자리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학창 시절과는 달리 소극적이기만 했던 대학생활 중에도, 부정적 생각이 가득했던 회사생활 중에도 나의 깊은 저면에서는 언제나 이런 말이 나지막하게 들려오곤 했다.
글을 좀 써볼까?
“회계학과를 가면 취직도 잘 되고, 돈도 잘 번대” 한 친구로부터 우연히 듣게 된 말로 인해 회계학이나 경영학이라는 대학 학과를 선택하고, 경리부에 입사해 일을 이어가는 중에도 나는 한 줄기 희망을 붙잡아 두고, 종종 상상에 잠기곤 했다. 까만 뿔테 안경을 쓰고, 책상에 앉아 고뇌에 잠겨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는 나의 모습을 말이다. 그러면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곳의 나는 지금보다는 더 행복할까?
아무리 끼워 맞춰봐도 도저히 맞지 않았던 회사생활을 그만두지 못해 지지부진하게 끌고 오던 나날에 지쳐 그건 아주 다행스러운 선택이었던 걸까, 욕먹을 각오를 하고 과감하게 퇴사의지를 밝힌 날이 있었다. 그리고 나의 갑작스러운 퇴사 통보에 당황한 기색이 가득한 회사 사람들에게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 글을 쓸까 해요” 그 후 나는 하루종일 씻지도 않은 초췌한 모습으로 글 쓰는 작업에 매달리곤 했다. 무엇을 써야 할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아는 바가 전혀 없었지만 그건 그냥 그래야만 하는 일 같았다.
그 뒤 인터넷 플랫폼을 알았다. 당장 시작할 수 있다기에, 누구든 작가가 된다기에 나도 그렇게 될 줄 알고 뛰어든 세상이었다. 그런데 그건 허무맹랑하리만치 순박한 생각이었던 건지, 이럴 줄 알았으면 시작도 하지 말걸, 플랫폼에 글을 올리면서 내가 내내 했던 일은, 기대를 덜어 내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면 가슴에서는 절망이 등장해 나풀나풀 춤을 추었다. 아, 독자...!! 재미없는 글이나 써대는 사람을 작가라 칭하는 독자는 없는 것이 현실이었으니...!!
왜 사람들은 ‘좋아요’에 이렇게 집착하는 걸까? 그런 의문을 품기 시작할 때면 그건 자신의 일이 되어있을 것이다. 나의 글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나의 글을 ‘좋아요’ 해준 뒤, 구독버튼까지 야무지게 눌러줘야, 작가도 창작의지가 활활 타올라 끊임없이 다음 글을 내놓는 법이지, 그래, 그게 이 자본주의가 돌아가는 원리이고, 나도 자본주의 시장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내 글에는 도무지 구독 버튼이 눌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부분 내 글보다는 내 근황에 관심 있을 가족과 친구와 이웃이 내 구독자의 전부였다. 그 현실을 마주했을 때에 내 안에서는 단 한 문장의 진실이 떠오를 뿐이었다. ‘난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이런 내가 문학소녀였다고?’ 퍽 자부심을 가졌던 그 옛날 나의 재능이 알량하고도 허망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내가 가져왔던 ‘잘 쓰는‘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나에게 방만을 알려줄 뿐 도움이 되지 않는 이 말은 이제는 지니고 있을 필요가 없는 한낱 먼지 같은 말일 뿐이었던 것이다.
초등학교를 막 졸업 한 나는 어서 중 1의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레면서도 무료한 날을 보내던 중, 우연히 아버지의 장비함에서 글루건이라는 물건을 발견했다. 아버지의 장비함에는 헤르미온느의 보따리처럼 없는 것이 없었는데, 그 장비함을 열어볼 때마다 재미가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때 발견한 글루건이 꽤나 신기했던 나는 그것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두고두고 꺼내어 써먹었다. 때로는 특별히 쓰일 곳이 없어도 그것을 괜히 꺼내어 글루를 돌돌 말며 가지고 놀기도 했다.
‘저걸 그려야겠어’ 그건 영감이었을까, 어느 날 나는 아주 갑작스러운 충동에 휩싸였다. 주방에 진열되어 있던 쟁반을 보며 퍼뜩 그런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쟁반 가운데에는 빨간 단풍잎이 흩날리고 하늘에서는 새가 날고 있는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한 외국 느낌의 오두막 집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건 뭔가 몽실몽실하고 장난기 가득한 욕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리만치 멋져 보였다.
그보다 더 어린 시절, 우리 집 벽 한쪽에는 고고한 학이 그려진 내 키만 한 액자가 붙어있었는데, 그 액자는 어렴풋하고도 강렬하게 내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어머니가 취미생활로 짜낸 털실 작품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쯤, 그 액자는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고, 오로지 형형색색 털실이 가득 담긴 커다란 비닐 봉지만이 오랫동안 장롱 깊숙이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다.
털실 한 봉지와 글루건, 그리고 커다란 도화지 _ 재료는 그것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그리고 문짝 두 개는 붙여놓은 것 같은 커다란 거울이 붙어있던 거실의 벽 한쪽 아래, 글루건을 꽂아 둘 콘셉트가 있는 곳이 나라는 예술인의 화실이 되어주었다. 쟁반에 그려진 멋진 그림을 도화지에 더 멋지게 옮기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완성된 작품이 빛을 발하고 있었으나 내 손은 도무지 속도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의 불평 없이 그 일을 해냈다. 비슷한 색의 털실을 고르고, 글루건으로 하나하나 붙이는 데에 온 존재를 집중시켜 하나하나 해내는 그 일이, 하나부터 열까지 고되었지만 내내 행복한 마음으로 임했던 것이다.
2주인가, 3주인가. 어렴풋 짐작하기로 그 털실아트 한 작품이 완성되기에 그 정도의 시간이 꼬박 필요했던 것 같다. 그리고 완성된 작품은 내가 어른이 되어 집을 나가 살 때까지 오랫동안 거실의 한쪽 벽을 전부 차지하며 붙어있었다. 어머니는 어린 딸이 만들어낸 작품이 꽤나 자랑스러웠는지, 유리 액자를 손수 사서 걸어놓으셨는데, 오고 가는 손님들에게는 상기된 얼굴로 꼭 이 말을 남기셨다. “그거 울 딸이 한 거잖아”
이건 ‘영감을 실행하는 재미’를 맛본 때에 대한 내 기억의 단편이다. 그때의 나는 누군가의 인정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고, 잘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하고 싶었고, 그냥 단순히 그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그래서 그건 나에게 온전한 몰입의 시간을 선물로 주었고, 가슴이 충만하게 차오르는 행운을 주었다. 작품을 완성하고 난 뒤 어머니의 인정과 자랑은 그저 덤으로 주어진 것일 뿐이었다.
만약 내가 글을 계속 써야 하는 이유를 하나만 가져야 한다면, 나는 이와 같은 맥락의 이유만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건 단지 나를 위한 작업이라고, 사람들에게 작가로 인정받지 못할지언정 나 자신을 속일 필요는 없다고, 하고 싶으면 그냥 하고 싶은 만큼 충분히 하면 되는 거라고, 이 이야기는 그냥 그렇게 시작된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