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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양 Mar 29. 2024

와, 7년 만에 노래장을 다 가보네요.


  대학 생활의 꽃은 또 동아리 생활 아니겠어요?  재입학 늦깍이 대학생인 저도 꽃을 놓칠 수 없죠. 그래서 저는 호기롭게 등산 동아리에 들었어요.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사귀게 되면 공유할 게 더 많아지니 일상에 더 활기가 돋잖아요. 그걸 기대하고 말이죠.


  동아리 가입 후, 월요일 저녁 일곱 시에 첫 동아리 모임이 있었어요. 강의는 진즉에 끝났지만 그 모임에 가기 위해 저는 2시간 동안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죠. 그런데 다행히도 같은 학과의 한 친구가 교양 수업도 한두 개쯤 겹치는 데다 동아리도 같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어, 그 친구와 함께 지루하지 않은 기다림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우리 둘은 모임 시간에 맞춰 만남 장소에 갔고, 도착해 보니 마침 문 앞에서는 눈에 익은 친구가 보이는 거예요. 그 친구는 신입생 환영회 때 멀리서나마 얼굴을 익혔던 친구였죠. “어, 반가워요. 오늘 동아리 모임 오셨어요?” 제각각의 동기로 동아리를 선택했겠지만 우연인 듯 운명인 듯 같은 곳에서 또 얼굴을 보게 된 서로가 더욱 반가웠어요.


  같은 학과에 같은 동아리, 비록 아직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이 정도면 괜스레 내적 친밀도가 상당히 올라가 있지 않겠어요? 하지만 외적으로는 여전히 어색하기만 한 우리는 자리에 앉아 수줍은 인사를 나눴죠. 그러다 한 친구가 자기소개를 하던 중 말했어요. “전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요” 그리고 마침 모임 장소 가게 앞에는 오랫동안 자리를 잡아온 듯 잔뜩 때가 탄 00 노래방이라고 적힌 노란 풍선이 보였어요. “아, 저거 보니까 노래방 가고 싶어요!“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저는 정말로 음악과는 상관이 없는 아이였죠. 그런데 그건 저희 삼 남매 모두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요. 재능이랄 것 자체를 일체 물려받지 못했으니까요. 같은 집에 이십 년을 같이 살다 보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다 알게 되잖아요. 그들이 갖춘 실력쯤은 말이죠. 그중에서도 저는 가장 뛰어난 삼치였어요. 삼치는 박치, 음치, 몸치를 일컫는 말이죠. 그래서 저는 음악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심지어 듣는 것도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죠. 그런데 굳이 누군가 “너 춤출래, 노래할래?”라와 같은, 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난감할 법한 미션을 던져 준다면, 저는 “전 춤을 출게요”하고 말하죠. 실제로 제가 직장에 갓 입사한 한 달짜리 신입이었을 때, 저는 첫 회식에서 춤을 췄었더랬죠. 힘을 숨겨 온 사람처럼 춤을 잘 춰서 그랬던 게 절대로 아니고요, 그건 노래가사에 맞춘 아주 정직하고도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짓 같은 거였어요. 같이 들어온 동기 신입들은 모두 노래를 부르는 가운데, 저 혼자 비장하게 삐걱거리는 춤을 선보였을 때, 상사들의 대놓고 웃을 수도, 그렇다고 잘한다 칭찬할 수도 없는 미묘했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네요. 그러니 지금 제 말이 얼마나 진심인지 알겠죠?



  그래서 저는 따로 노래방을 찾는 취미 따위는 없어요. 노래를 부르고 싶을 때는 가끔 핸드폰 보면서 따라 부르면 되지, 노래방에 돈을 내면서까지 부를 일이 뭐가 있겠어요. 그래도 학창 시절에는 간간이 노래방을 찾는 편이었는데요, 그때 제가 살던 곳은 워낙 시골인지라 따로 즐길 문화거리가 노래방 밖에는 없었던 곳이었죠. 또 함께 간 친구들은 저의 삼치 실력을 뽐내도 상관없을 만큼 오랫동안 봐온 친한 친구들이었으니, 사실 노래에 초점을 맞췄다기보다는 스스럼이 없으니 냅다 소리나 질러대면서 노래방을 휘저으며 노는 게 목적이었던 거죠.


  그런데 회식이나 처음 보는 사람들과 노래방을 간다? 아휴, 그건 제 입장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에요. 그래도 어째요. 직장인 일 때는 별 수 있나요. 회식 자리를 쉽게 빠질 수도 없는 노릇이니, 혹시 노래를 불러야 할 상황이 오면 같이 불러줄 동료 한 명을 구해 최대한 미루다가 눈치를 쓱 보고 사람들 집중력이 흐트러졌을 때나 한곡씩 뽑아보곤 하는 하이에나와 같은 행동을 취하며 근근이 연명했죠.



노래방 가실래요?

  


  동아리 모임을 갖고 난 뒤 저희 셋은 자연스레 급격히 친해졌어요. 그 주에는 마침 저희 세 친구 모두 겹치는 강의가 하나 있었어요. 저희는 강의를 마치고 집에 가기 전에 잠깐 모여 수다를 떨게 되었는데, 그때 스무 살 친구의 패기 있는 제안이 들어온 거예요. “노래방 가실래요?” 어렴풋 예상은 했지만 예상이 틀리길 바라는 마음에 제 눈앞이 잠깐 새하얘지고 말았어요. 하지만 또 한편으로 전 내심 궁금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이제 갓 친해지기 시작한 친구들과 오랜만에 노래방을 찾으면 어떤 느낌일까?’ 또 저에게 마이크를 쥐어주지만 않는다면야 친구들의 노래를 들으며 노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한마디 말이 약속이 되었고, 대망의 약속 시간이  되었을 때 정말로 노래방이라는 곳에 저는 다시 발을 들이게 된 거예요. 회식 때 가본 게 마지막이었으니 한 7년만 쯤은 되었을 거예요.


  우리가 찾은 곳은 학교 근처에 있는 코인 노래방이었는데, 와 요즘 노래방 저렴하더라고요. 그리고 코인 노래방이라고 옛날처럼 공간이 비좁지도 않고 여섯 명은 거뜬히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또 기계 앞에서 카드결제가 가능했고, 스물네 곡을 부르는 데 6천 원이면 가능했어요. 한 시간에 무조건 만원은 깔고 가던 저때의 노래방과는 달리 딱 떨어지게 계산된 깔끔한 계산 방식이라는 점이 매우 마음에 들었죠.


  그리고... 노래가 시작되었어요. 그런데 웬걸? 저에게도 결국은 마이크가 넘어오고 말았던 거예요. 저의 삼치 실력을 뽐낼 때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요. “와 친구들... 저 진짜… 저에 대해 다 보여준 거예요” 이하… 저의 노래 실력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게요. 한 친구는 제 노래를 듣고는 말했을 뿐이에요. “언니… 그동안 힘드셨겠어요.“


  두 친구는 저와 달리 노래를 정말 잘 부르더라고요. 또 노래를 좋아한다던 친구는… 음색이 굉장히 멋졌어요. 만약 저도 그렇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사람들에게 노래를 좋아하고 있다고 저를 소개하게 될 것만 같은 음색이었죠. 하지만 저는 그러지 못하니까 마음 접고 저를 열심히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 중이죠. 하하. 발라드다 힙합이다 듀엣곡을 부르는 가운데 간간이 트로트 한 번씩 질러주고,, 세련된 요즘 노래와 달리 서사가 있는 가사가 강세였던 옛날노래를 번갈아 부르며 세대차이를 느끼는 동시에 세대통합을 경험하고 온 것 같은 시간이었어요.


  스물네 곡의 노래를 번갈아 부르면서 오랜만에 잡은 마이크가 낯설고, 조금 벅차긴 했지만 다녀온 뒤 후회보다는 기쁨이 남았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7년 간격짜리 노래방에 대한 추억이 새로이 쓰였잖아요. 가족, 또래 친구들, 직장동료와 그리고 직장 상사가 전부였던 저의 노래방 추억에, 웬일인지 풋풋한 친구들도 함께 하게 되었잖아요. 그건 제 인생의 한편을 채워 넣기에 꽤나 값진 순간이었죠. 잘 부르든 못 부르든 뭐가 중요하겠어요. 함께 한 순간이 가치매김 하기 싫을 정도로 값졌는걸요.


내 맘처럼 노래방 불빛은 현란하기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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