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나이로 통일하는 법이 제정된 후부터 줄곧 올해 내 나이 서른다섯이라고 외치던 나의 새내기 시절이 어느덧 반개월이 훌쩍 넘어가고 있다. 나는 그동안 마음 맞는 대학 친구들도 여럿 사귀었겠다, 강의를 듣거나 과제를 제출하는 일들이 매우 적성에 맞는 듯하여 만족스러운 대학생활을 즐기던 참이었다. 그런데 얼마 다니지도 않은 것 같은데 종강이란 것이 내 앞으로 훌쩍 다가와서, 종강을 반기던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못내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방학과 동시에 근로를 시작하였지만 과감히 때려치운 후 심적으로 매우 여유로운 방학 생활을 즐기는 중이다.
그동안 대학생활 중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건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행동을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쌓아왔던 게 아닌가 싶다. 솔직히 직장을 다니면서 일을 계속하게 되면 그 일이 그 일 같이 반복되어 금방 무료해지기 마련인데, 대학생활을 다시 해보니 대학 과정을 따라가는 과정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매우 활기차고 보람 있었다.
그러는 동안 한편으로 나는 나에 대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두 번째 해보는 거니까 좀 더 여유롭게 잘할 수 있지 않겠어?' 하지만 그건 만만이 콩떡 같은 생각이었던 것이다. 내가 대학을 다녔던 시절과는 또 다른 세대를 맞이한 만큼, 대학 생활도 그에 맞춰 새로운 체제의 길을 반영하여 변화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나름 대학생활을 하면서 좌절도 해보고, 기쁨도 느껴보고, 이것저것 새로운 정보를 통해서 느낀 바가 있어서 그것을 나름대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번 학기에 나는 인강 하나를 들었는데, 결론적으로는 매우 후회를 하고 있다. 다만 경험치를 쌓았다는 면에서 위안을 삼을 뿐이다. 그래서 친구들한테는 누누이 말을 하고 다닌다. "너네는 인강 절대 듣지 마셈"
내가 다니는 학교는 인강을 들으려면 ocu :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사이트에 들어가서 들으면 되는데, 일단 한 과목당 등록금 외 30,000원의 금액을 따로 사이트에 내야 한다. 그리고 심리, 스포츠, 영화 등 흥미를 유발하는 것처럼 보이는 여러 가지 과목이 있는데, 오로지 강의명만 보고 수강 신청을 하면 나같이 큰 코를 다칠 수가 있다(난 P형 인간인지라... ㅋㅋㅋㅋㅋ 수업계획서 필수로 정독할 것!).
나의 충격은 중간고사 이후에 시작되었다. 사실 내가 선택한 강의명은 매우 흥미롭게 보였다. 그런데 막상 인강을 들여다보니 재미 따위랄 게 전혀 없었다. 교수님이 피피티만 열심히 읽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금방 흥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내용은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았는데, 그에 반해 시험은 매우 어려웠다(물론 아주 개인적인 의견이다). 그래서 나만 이렇게 어려웠나 궁금해서 이것저것 정보를 찾아보니, '족보'라는 것이 존재했었다(ㄷㄷㄷㄷ). 그리고 내가 들었던 인강은 중간고사 문제가 족보에서 100% 내는 강의로 유명한 것이었으니....(그래서 학생들이 많이 몰렸던 거다, 난 단순히 재밌는 강의인줄 알고... 아직도 왜 이렇게 순진한 것이냐) 학생들은 알고 그 강의를 선택했던 것이다.
또 인강은 학기가 시작되면 학생들끼리 모여 오픈채팅 방을 여는데, 부지런히 알아봐서 거기에 들어가면(꽤 치열하다고 한다) 시험 전에 족보를 뿌리거나 서로 질의응답을 해봄으로써 시험에 도움이 되는 정보가 오간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 귀한 정보를 이번에 선배님과 대화를 하는 기회가 생겨서 알게 되었다. 그렇다. 난... 방학이 다 되어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결국 제 점수는요.
B
사실 전체 점수가 50점대라서 F일 줄 알았더니, 그래도 다행히 B를 받았다. 헤헤. 기쁘다. 그런데 왜 눈에서 물이 차오르지....
이번에 나는 스무 살 시절에 한 번도 가지 않았던 MT를 다녀왔다. 그 시절의 나는 너무 용기도 없었고, 사람 만나는 것도 두려워서 대부분의 대외활동을 피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게 덜해도 될 나이가 되지 않았나? 그래서 과감히 MT라는 것을 가보았다.
그리고 짐을 최대한 간단하게 싼다고 쌌는데도 백팩 하나가 두툼해질 정도로 나왔는데, 막상 다녀온 후 느낀 점은 짐 따위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가져간 거의 대부분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필요했던 건 단지 치약 칫솔 세트와 비누뿐...
나는 잠옷과 겉옷, 또 세면도구도 샴푸, 바디워시, 세안제 등 많이 챙긴 데다 헤어드라이기도 가져갈까 말까 고민을 했었으나, 챙기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가서 경험해 보니 하나라도 덜 챙기길 잘했던 것이다. 일정 자체가 펜션을 잡고 술 먹고 노는 것뿐인 데다, 일박쯤은 대충 얼굴만 씻고 아무렇게나 하고 있다 와도 무관했기 때문이다. 화장실도 부족했던 터라 샤워하는 건 사치였고, 편한 잠옷으로 환복 후 양치라도 한 게 다행일 정도였다. 그리고 옷도 편하게 입고 갔다면, 솔직히 하루쯤이야 옷 갈아입을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놀러 갈 때는 가볍게 떠나는 것이 최고였던 것이다.
처음 오티를 했을 때부터 학교에서는 챗지피티에 대해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챗지피티에만 너무 의존하지 않는 이상 그것을 잘 활용하라는 내용의 강의였다. 나는 그 강의를 매우 인상 깊게 들었는데, 대학생활을 해보니 정말로 그랬다. 나는 한 학기 동안 챗지피티를 아주 유용하게 잘 사용했다.
영어 강의 중 교수님이 원하는 몇 마디 영어 문장이 들어간 드라마 대본을 써야 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처음에 그 과제를 받아 들었을 때는 정말 막막했다. 그 문장들을 조합한 아이디어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챗지피티에 물었는데, 웬걸 챗지피티가 매우 훌륭한 초안 아이디어를 제안해 줬다. 그 후 나는 그것에 살을 붙이거나 발라 내가 원하는 드라마를 작성해 낼 수 있었다. 사실 옛날 같았으면 너무 막막해서 날을 새면서 머리를 굴려야 할 과제였을 테지만, 챗지피티의 도움을 받으니 그게 그렇게 수월할 수가 없었다. 물론 간혹 챗지피티의 정보를 그대로 긁은 과제를 내면 잘 알아보시는 교수님들이 계시기 때문에, 점수를 잘 받고 싶으면, 자신의 아이디어를 얹어 개성 있고 완성도 있는 과제로 조정을 해주는 작업이 필요하긴 하지만 초안을 손쉽게 얻은 것만으로도 매우 감사한 일이 아닌가.
이처럼 지금은 매우 편리하게 과제할 수 있는 도구 사용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정보력이 아니라 도덕성 문제를 잘 조절할 수 있는 인간상이 되는 것이 주요 관건이 아닌가 싶다.
간혹 이런 고민을 고민 상담란 같은데 올리는 학생들이 있다. “제가 대학을 늦게 가게 되었는데, 저 같은 학생 있을까요? 친구나 사귈 수 있을까요? “
반년의 대학생활 결과 그런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요즘은 나이불문하고 대학을 다시 선택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늦은 나이의 대학 선택 이슈는 매우 흔한 사례가 되어버린 것이다. 때문에 학교를 다니다 보면 교수님도, 학생도 누구 하나 생소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다.
다만 간혹 직장에 오래 다니신 분들이 의아해하시며 이런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오, 공부 잘 돼요? 저는 그때 머리가 안 돌아갔었던 것 같아요 “
또 대학에 여러 사연을 가진 다양한 나이대의 친구들도 많이 모이는데, 혹시라도 기회가 생겨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 반갑고 신기하고 대견스러워 한다. 결론적으로 나이란 나이일 뿐, 인생을 살아가는데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다만 나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만이 자신을 가둘 뿐이다. 앞으로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은 더욱 쓸모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조별 과제를 하면서 자연스레 한 학기 강의 내내 짝꿍으로 앉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싱그럽고 예쁜 스무 살 친구였다. 그런데 하루는 그 친구가 무언가를 열심히 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단번에 그게 뭐냐고 물었다. 그 일로 인해 알게 된 것이 바로 ‘에브리타임’라는 어플이었다. 이건 대학생들의 필수 어플이라고 한다.
나중에 물어보니, 비교적 최근에(한 5년 전쯤?) 대학을 졸업한 내 동생도 에타를 알고 있었다. 왜 미리 말 안 해줬지요? 내가 열심히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나는 이런 어플이 있는지조차 몰랐는데, 나로서는 이것이 매우 신기방기하게 느껴졌다. “너 언제 대학생 필수 어플로 자리매김한 거니?”
여기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질문하는 것들도 구경하고, 시간표도 작성하거나 나누고, 내가 모르는 것이 있을 때는 질문을 올리기도 하고 동아리나 대외활동이 뭐가 있는지 찾아보기도 한다. 즉, 에타는 대학생활의 각종 정보를 얻고, 교류하는 장이었던 것이다.
에타를 알게 된 후, 나는 수시로 들어가 구경을 하고 있다. 별거하지는 않고 그냥 들어가서 이것저것 읽어보는 것이다. 그러면 대학생들 관심사가 뭔지도 알게 되고, 나도 정보도 얻게 되어 좋다. 또 사림들 생각 보는 게 재밌으니까. 무튼 그렇다ㅋㅋㅋㅋ
예전의 나는 생각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다고. 그런데 요즘의 나는 행동한다.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과는 애초에 사귀질 않도록.
모든 인간관계가 좋을 수 없고, 또 설령 좋더라도 한철 시절 인연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예전처럼 관계에 무게를 두지 않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건, 나는 여전히 부정적 감정을 다루기 어려워하고, 그것이 관계와 연관이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나는 필요할 때조차 쌈닭이 되지 못한다...ㅠㅠ).
대학생활 중에도 여러 활동 중 다양한 스타일의 사람을 만나기 마련이고, 이거 이거 영 쉽지가 않다. 끌리는 친구, 편한 친구, 어려운 친구, 무서운 친구 등등... 옛날의 내가 찐따였다면 지금의 나는 선택적 쫄보이다. 이 성격이라는 것이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인다고 무조건 굳건해지지는 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이번에 나의 이런 모습을 다시 한번 마주했다.
그나마 예전보다 나아진 건 예전처럼 무조건 참으면서 좋은 사람을 연기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은 피하면서 적정한 거리를 일부러 유지한다. 그래야 내가 유리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루 일과를 끝마치고 누워있으면 종종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 잘하고 있는 걸까?’
나는 참 ‘잘’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인정욕구가 강한 편인 것 같다. 내 바람은 내가 사람들에게 바르게 사는 사람으로 비추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질문이 내 안에서 당연하게 자주 떠오르곤 한다.
내가 의미하는 ‘잘’이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항상 남들의 시선 안에 머물러 있다. 남들과 비슷한 속도, 제격, 또는 더 빠르게. 때문에 그에 맞춰 나는 종중 현타를 맞이한다. 새로 배움을 시작한 나 자신의 행로가 옳은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역시 일을 해야 맞는 걸까?’
목적성, 나는 나만의 키를 다시 쥐어야 한다. “이건 내 인생,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른 나만의 삶이 있고, 그건 남들의 관심이나 인정이 뒤따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또 남들에 비해 속도가 뒤처질 수도 있고 우회해야 할 수도 있다. 내게 중요한 건, 내가 원하는 걸 내가 알고 용기 있게 나아가는 것이다.”
대학생활을 할수록 느끼는 거지만 목적성을 명확하게 가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자주 되새겨 내 마음을 다잡는다. 내 인생이 나를 위한다는 것을 매 순간 되새기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