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면 될 일
활기 넘치는 기쁨의 상태에 있을 때, 당신에 관한 모든 것과 평화를 이룬다. 삶이 기쁨으로 충만하면 후회, 불안, 두려움, 노여움, 혹은 부족함을 느낄 수 없다. 기쁨의 상태에서, 당신은 채워지고, 완전하며 생명, 지혜 그리고 창조성이 당신 존재의 내면으로부터 거대한 강처럼 흐른다. 기쁨의 상태에 있을 때, 위대함의 절정과 가장 심오한 느낌의 영감을 받을 것이다.
람타 화이트 북
아, 엄마!
엄마는 진짜 언니가 얼마나 가식적인지,
언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니까.
간혹 고향에 들러 세 모녀가 모일 때면, 동생은 항상 어머니 앞에서 볼멘소리로 투덜거리곤 했다. 동생이 말하는 언니의 가식적인 모습이란, 어머니 앞에서는 ‘부지런한 딸’이었으나 자신 앞에서는 ‘게으른 언니’의 모습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생의 그런 성화에도 어머니는 결코 그 말을 믿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시절 내내 나는 집안일을 상당히 잘했다. 청소며 설거지, 요리하기 같은 일들을 말이다. 우연히 해본 설거지에 매우 기뻐하셨던 어머니의 표정을 더 보고 싶어서 그 뒤로 계속 집안일을 즐기듯 하게 되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나는 꽤 본격적으로 집안일을 했다. 그것은 돈을 벌기 위하여 하루 종일 나가서 고생하는 어머니를 위하여 딸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는 판단 하에 내가 내린 선택이었다. 그동안 한 번도 나는 ‘내가 이걸 왜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나는 그저 퇴근 후 집에 온 어머니의 기뻐하는 얼굴을 보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어머니가 해주는 그 한마디가 내게는 큰 보상이 되었다. “와, 주방 진짜 개운하다. 우리 딸은 누굴 닮아서 이렇게 개운하게 잘할까?”
대학을 가면서부터는 집을 떠나와 대부분의 시간 동안 동생과 살았다. 동생과 살 동안 우리는 싸움이 잦았다. 서로 생활 패턴이나 성격 등이 너무나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중 자주 싸움의 불씨가 되는 것이 바로 집안일이었는데, 나는 자주 동생에게 “이건 네가 좀 하지?” 하고 떠밀곤 하는 영락없는 언니의 모습이 되었다.
물론 어머니를 기쁘게 하는 것이 어린 나의 일차적 목표였지만, 내가 집안일을 해냄으로써 어머니를 기쁘게 했던 것은, 그것이 내가 좋아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에는 그런 것들이 참 쉬웠다. 좋아하는 걸 즐겁게 해내는 일 같은 거 말이다. 엄마랑 색칠놀이를 재밌게 한다던가, 친구들이랑 하루 종일 술래잡기 놀이를 한다던가, 가족을 위하여 요리를 해본다던가, 부모님 앞에서 신나게 춤을 춰보인다던가,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 일 같은 거…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것들을 그냥 즐기지 못하게 되었다. 단지 좋아하는 것을 하기에 앞서 너무 많은 생각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사람은 간혹 아둔해서 좋아하는 일이나 잘하는 일에 너무 무거운 무게를 추가하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잘해야 한다던지, 좋아하는 일이 돈이 되어야 한다던지, 좋아하면 남들보다 뛰어나야 한다던지.
사실 좋아하는 일은 잘하는 일이 되기 쉽다. 왜냐하면 좋아하는 것 자체가 이미 그것을 익숙하게 해낼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령 아무리 좋아해도 잘하지 못할 수도 있다. 천부적 소질이란 또 다른 영역일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꼭 같아지리란 법은 없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그것들은 전혀 상관이 없는 영역이 아닌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면, 사실 그것만으로도 기쁜 일은 아닌가? 거기에는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해”라는 메시지가 내포되어 있으니 말이다.
1년 정도 나는 수영을 다니면서 2시간 반짜리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 2시간 반동안 나는 샐러드 가게에 나가서 채소를 다듬고, 소스를 채우고, 빵을 빚고, 고기를 진공포장하고, 설거지를 하고, 주문을 받고, 상을 닦고, 바닥을 쓸고, 용기를 채워 넣는 등의 일들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그 일들을 혼자 했다. 짧은 시간도 시간이었지만 그 일들을 하면서 나는 재미를 느꼈다. 그동안 잃어버린 것 같은 '흥미'라는 것이 새롭게 내 안에서 싹을 틔웠다. 일에 재미가 생기니 자연스레 자신감이 따라왔다. 또 자신감은 뿌듯함을, 뿌듯함은 능숙함을... 선순환이 연속적으로 파도를 탔다. 그 옛날 온 집안을 윤이 나게 쓸고 닦고 정리한 후 뿌듯하게 바라보던 내가 다시 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직장을 다니며 하루종일 사무실에 앉아서 자판을 두드리는 일은 내게 그다지 큰 흥미를 주지 못했다. 물론 누가 흥미로 직장을 다니겠냐마는, 흥미 이 외의 경제적 문제라거나, 명예, 자부심, 뿌듯함 등 그 일을 내가 해야만 하는 이유 하나가 명백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일과 나의 생존을 연관시켰다. 나는 내가 살기 위해서는 응당 참아가며 직장생활을 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내 믿음은 그 이상의 생각으로 뛰어넘어가지 못하고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게 탄생한 불행을 가슴 가득 품고 나는 줄곧 이렇게 생각하곤 했다. ‘원래 다들 그렇게 살잖아’
원래 그렇게 사는 삶이라고?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원래 그렇게 사는 삶이란 건 단지 내가 그렇게 규정했기 때문에 살아야 하는 삶의 방식일 뿐이었다. 어쨌든 설거지 하나로도 돈을 벌 수 있었고, 즐겁게 해낼 수도 있었다. 그렇게 내 안에서 다시 규정하면 될 일이었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을 다시 규정하면,
삶의 각본은 얼마든지 다시 쓸 수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