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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Jun 08. 2020

너의 의미

두 번째 이야기 : 우주 이야기

우주! 우주~ 우주야~


우주는 내게 보내주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우주는 세상에 태어나 1년을 알차게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다 떠난 고양이다.

이 아이가 아니었다면, 집안에 은하수, 별이, 달이를 들이지 않았을 테고, 그러면 내 시골생활도 조금은, 아니 아주 많이 달라졌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 만남은 우연일까?

어쩌다 보니 길냥이 나비가 우리 집 마당에 새끼를 낳고, 그 새끼가 또 새끼를 낳아 아버지, 어머니, 이모, 삼촌, 조카 등 3대가 모여 사는 모양을 이루었는데, 덩달아 내 삶의 균형이 깨지고 바뀌어버렸다. 생채기도 냈고 깨달음도 준 이 인연들은 내게 무엇일까 지금도 생각하곤 한다. 

우주는 위험한 순간일 때도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내 품으로 더 파고들었다. 우주가 나에게 보낸 신뢰는 무한했다.


비가 내리는 어느 봄날 저녁, 마당에 있는 강아지 복순이가 유난스레 짖어대길래 혹시 뱀이 나타났나 싶어 나가 보았더니, 장작더미 아래에 나비가 앉아 있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새끼를 내려놓고 열심히 핥아주고 있었다. 몸도 못 가누고 눈도 못 뜬 너무 어린 새끼를 본 건 처음이라 나도 어찌할지 몰랐는데, 조금 있더니 나비가 새끼를 놔두고 다시 어디론가 사라졌고, 얼마 후 다른 새끼를 입에 물고 다시 나타났다. 그렇게 옮겨놓은 새끼가 모두 네 마리이다.


하필 왜 이런 궂은 날씨에 새끼를 옮기는지 알 수 없지만, 새끼들을 이렇게 젖은 마당에 놔둬야 하는지 걱정이 되었다. 나비가 나를 신뢰하는 건 알겠지만 함부로 새끼를 만질 수는 없어서 나비에게 맡기고 그날 밤을 보냈다. 나비는 이때가 내가 본 것만 세 번째 출산이었고 매번 한두 달 된 새끼를 입에 물로 내 집 마당에 정착하곤 했다. 나비의 새끼 돌보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그나마 덜 걱정하고 보낸 다음날, 나비는 또다시 새끼 네 마리를 차례로 물로 다시 마당으로 들어섰다. 아마 어젯밤에 복순이 때문에 다시 옮겨놓은 거 같았다.


문제는 나비의 태도였다. 전에는 새끼를 데리고 오면 어딘가 꽁꽁 숨겨 놓고 혼자서 밥만 먹고 사라지다가 갑자기 훌쩍 커버린 새끼들과 뒷산과 앞마당, 텃밭을 어지러이 돌아다니곤 했는데, 이번에는 새끼를 내려놓고 내 다리를 비비고 부비고 또 부벼댔다.

'혹시 나한테 돌봐달라는 건가?'

나비는 분명 예전과 행동하는 게 달랐다. 새끼를 데려놓은 곳도 전처럼 남이 못 보는 그런 곳이 아니라 집 뒤편 깨진 시멘트 바닥이었고, 울어대는 새끼들을 옆에 놓고 다리를 쭉 뻗어 기진맥진한 듯 누워있었다. 내가 새끼들 가까이 다가가 앉아도 전혀 거부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한 건 새끼들의 크기였다. 같은 시기에 낳은 애들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로 발육 상태 차이가 너무 컸던 것이다. 제일 큰 아이는 젖을 안 먹어도 될 만큼 쌩쌩하니 몸집이 컸고, 제일 작은 아이는 어제 본 그대로 마치 갓 태어난 새끼처럼 작고 여렸다. 쥐 죽은 듯이 엎드려 있다가 어미가 나타나면 눈도 못 뜬 채 앙이 앙하며 젖을 찾아 어미 몸을 타고 올랐다. 귀도 다 생겨나지 않은 것처럼 작았다.


문제는 그보다 다른 것에 있었다. 나비가 두 번째로 낳은 새끼들은 이제 어엿한 몸집으로 자라 잘 살아가고 있는데, 그중 하나(이 녀석의 이름은 여름이다. 나비가 이때 낳은 네 마리 이름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고 지었던 거다.)인 여름이가 자꾸 새끼들을 물고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여름이는 워낙 경계심이 강해 1미터 이내로 다가오는 일이 결코 없었다. 나비가 새끼들을 데리고 내 앞에 온 걸 보고, 여름이는 어쩔 줄 몰라하며 불안하게 계속 울어댔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틈이 생겼다 싶으면 새끼들을 하나 물로 쏜살같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웃긴 건 또 그다음부터다. 그걸 본 나비는 코맹맹 소리로 이힝이잉힝 거리며 여름이 뒤를 쫓아 기어이 다시 새끼를 데리고 오는 거였다. 아마 어제 빗속에서 다시 새끼를 데리고 간 게 여름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렇게 몇 번을 여름이와 나비의 실랑이를 지켜보다 제일 걱정되는 우주 때문에 밖에 그냥 놔두면 안 되겠다 싶었다. 나비와 새끼를 1층에 서재로 꾸며놓은 방으로 들여놓았는데, 여름이가 어찌나 서럽게 울어대는지 어쩔 수 없이 여름이도 함께 방 안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 서재가 나비, 여름, 은하수, 별이, 달이 그리고 우주 여섯 마리의 집이 되어버린 것이다. 



여기의 새끼들은 우주 다음다음에 태어난 동생들인데, 회색 아이가 꼭 우주의 환생 같았다.



대체 우주는 누구 애기일까?


나비의 새끼들은 모두 건강하지 못했다. 일단 나비가 계속 컥컥거리고 눈과 코에 딱지가 자주 앉았다. 무엇보다 새끼 젖을 오래 먹이지 못했다. 젖을 물리다 1-2분 만에 새끼를 놓고 혼자 쉬기를 반복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아마 젖꼭지가 아파서였지 않을까 싶다. 생후 한 달만 되면 이빨이 나서 어미젖을 꽉 무는 경우가 많다.


새끼들의 건강 상태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건강해 보이는 은하수만 조금 괜찮고, 나머지 둘은 콧물과 눈곱이 마를 새가 없고, 어미처럼 컥컥 거리는 기침소리가 잦아들지 않았다. 우주는 자는 건지 쓰러진 건지 알 수 없는 자세로 늘 엎드려 있고, 나비가 젖을 물리러 올 때만 연약한 다리를 버둥거리며 움직이는 게 고작이었다. 사실 네 마리 모두 아직은 젖을 찾을 때라 나비 품을 파고드는데 그중에 제일 약한 막내 우주는 당연히 형들에게 젖 쟁탈전에서 밀리니 더 걱정이었다.


다행히 은하수와 별이는 사료를 물에 불려 주면 아작아작 씹어먹기에 그렇게 하고, 달이는 혼자서는 먹지 않기에 무릎에 앉혀놓고 입 안에 넣어주니 쩝쩝거리며 받아먹었다. 그렇게 해서 나비 젖은 모두 우주만 먹을 수 있게 했더니 나비도 우주도 조금씩 건강해지는 것 같았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한 가지!

여름이의 행동이었다. 분명 나비 새끼들인 거 같은데 여름이도 젖을 먹이고 있었다. 특히 우주에게 젖을 먹이고 핥아주는 모습을 보면, 어미라고밖에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어쩌면 우주가 여름이 새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우주가 저렇게 작은 게 조금 이해될 거 같다. 즉 우주는 여름이가 낳았다. 나비가 먼저 새끼를 낳았고, 얼마 안 있어 여름이가 새끼를 낳았기 때문에 같이 새끼를 돌보게 되자 모성애가 생긴 그 시기에 돌본 새끼들을 모두 자기 새끼라고 생각하고 돌보고 있는 것이다.


어찌 됐든 이 녀석들과의  동거는 나를 무척 바쁘게 했다. 아침이면 따로따로 밥 챙겨주고 약 넣어주고, 화장실 청소해주고 여름이와 나비를 교대로 밖으로 내보낸다. (길냥이들이라 안에 갇혀 있는 게 답답할 거 같기도 했고, 나름의 육아 휴식을 주는 개념이었다.) 저녁에 오면 다시 밥을 주고 약 주고, 잘 노는지 건강한지 확인하고 화장실 청소하고 놀아준다. 친구들과의 약속은 생각하지도 못한다. 별이랑 달이가 번갈아가며 컥컥거리고 안 먹고 해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우주는 아주 더디게 자랐다. 언제 기어 다니기를 멈추고 걷기를 할까 매일매일 지켜보았다. 일어나 몇 발짝 걷고 쉬고 뒤뚱뒤뚱거리다 은하수가 툭 치고 도망가면 툭 넘어지고 그러면서도 다른 형제들 노는 게 재미있는지 느린 걸음으로 뒤뚱뒤뚱 쫓아다닌다. 우주는 흰색 바탕에 회색 무늬가 두루 섞였는데, 색 배합이 어찌나 은은하던지 폭신폭신한 담요를 생각나게 했다. 우주가 처음으로 화장실 문턱을 올랐을 때(어린아이가 문지방을 넘는 것처럼) 와...하고 소리를 질렀다. 너무 기특하고 신기하고 대견하고 깜찍해서 정말 품 안에 꼭 껴안아주고 싶게 만들었다. 우주는 정말... 정말... 너무너무 귀여웠다.






소통을 위한 책 소개


24시간 고양이 육아 대백과[김효진 지음/청림LIFE]

고양이 집사이며 수의사인 작가가 세상의 모든 고양이와 집사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용한 육아 지식을 정리한 책. 보통 어려움이 처하면 인터넷을 검색하게 되는데, 그보다는 책을 보고, 중요한 부분만이라도 체크해놓고 그때그때 대처하는 것이 좋을 거 같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 경험해봐야 내 것이 되지만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유용한 책이 될 거 같다.


[목차소개]

나도 집사가 될 수 있을까

어떤 고양이가 나랑 어울릴까

고양이를 위해 무엇을 준비할까

사료나 처방식 등을 건강하게 잘 먹이는 방법

영양제, 보조제, 물 먹이는 방법

고양이가 겪는 다양한 식이 문제 살펴보기

깨끗하고 아름답게 외모 가꾸기

고양이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웰빙 라이프

병원을 무서워하는 고양이 안정시키기

병원에서 받아야 할 검사의 종류

집에서 할 수 있는 간호법

고양이 질병 증상별 진료실

각종 전염성 질환

갑자기 다쳤을 때 응급처치

고양이 마음과 생각을 이해하는 법

함께 살기 위한 기본 교육

우리 고양이, 문제 행동 고치기

노령묘 돌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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