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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Jun 17. 2020

안녕하기를 바라는 마음

세 번째 이야기 : 우주 이야기 2

당신, 잘 계십니까?

사랑한다는 표현의 또 다른 말, 잘 지내고 계십니까?라는 인사.

우리는 하루에 얼마나 상대의 안부를 궁금해하며 묻고 있을까. 


그리고 자신에게도.

잘 지내고 있니? 잘 지냈어?라고.


어쩌면 우리는  사랑하는 존재가 내 곁에 없다는 걸 알게 될 때 비로소 잘 지내지 못했다는 걸 확인하고 그제야 부랴부랴 챙기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상대의 안녕을 기원하게 되는 건 아닐까. 매일이 언제나 지속될 것처럼 살아가는 거니까. 


난 우주를 두 번 잃어버렸고, 두 번을 다시 찾왔다. 그러나 세 번째는 그렇지 못했다.




은하수와 별이 사이에서 잠이 든 우주의 모습. 몸도 못 가누는 우주가 외롭지 않게 두 남매가 함께하고 있어 좋다. 은하수는 장난기가 가득하고 별이는 소심하고 애교가 많다.



아이들을 마당으로 내보내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어린 새끼들이 스스로 세상을 헤쳐나가기까지의 과정이 녹녹지 않을 거 같아서였는데, 혹시나 다칠까 봐 잘못될까 봐 걱정이 앞섰다. 맘 같아선 옆에 두고 집안에서 함께 살고 싶어서 한두 번 달이랑 방안에 들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원래 살던 냥이 둘(또또와 샛별)의 경계도 심하고, 우주와 달이는 겁에 질린 채 구석에서 나오질 않아 하는 수 없이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야 했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그때 우주를 집안으로 들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곤 한다....

사실 아무리 안전을 보장한다 해도 여섯 마리가 방 안에서 사는 건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길들여지지 않은 여름이와 자유를 좋아하는 나비, 그들을 따르는 네 마리 새끼 고양이, 그리고 마당에서 나비의 또 다른 새끼인 봄이와 가을, 겨울이까지 모두가 함께 행복하려면 좀 더 넓은 세상에서 사계절을 느끼고, 자연을 누비고 누리며 살아가는 게 맞는 거 같았다. 서로를 의지하면서 나무에 오르고, 낮잠을 즐기고 쫓고 쫓기는 장난을 치면서 신 나게 살아가는 것, 그게 고양이다운 삶일 수 있겠다 싶었다.






아이들을 내보내기로 한 날은 토요일로 정했다. 문을 열어 놓고 밖으로 나간 아이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충분히 지켜볼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였다. 아이들이 있던 1층 방은 원래 창고로 쓰던 것을 방으로 개조해 보일러를 깔고 서재로 쓰던 곳이라 문을 열면 바로 마당으로 이어져 있었다. 자기들끼리 불안하면 다시 집안으로 들어올 테고, 그렇게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다가 바깥세상에 익숙해지면 그때가 완전한 독립이 이루어지는 날이 될 것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발육상태가 좋은 은하수는 역시나 후다닥 뛰어나갔다. 겁 많은 별이, 달이, 우주는 문 밖 복순이의 짖는 소리에 여러 번 방 안으로 쫓겨 들어오기 일쑤였다. 그래도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라 1미터 전진하다 후퇴하고 2미터 전진하다 후퇴하고 5미터 전진하다 후퇴하더니 강아지 반대편으로 몰려가 자기들끼리 장난도 치고 풀밭에 몸을 비비고 킁킁거리고 결국 산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실 애들보다 내가 더 예민해져서 애들이 혹시나 다칠까 봐 그 녀석들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조금만 멀리 가도 이름을 불러대며 못 가게 막기도 하고 달려가 얼른 안고 방 안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불안한 세상에 맞서야 하는 건 어쩌면 그 녀석들보다 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와 그 아이들은 미지의 세계에 한 발을 내디뎠다.


  방 안에서 걸음마를 시작한 우주
드디어 바깥세상에 발을 내디딘 우주





어미들의 모성애가 지켜낸 우주의 귀환


아이들이 모두 바깥세상에 적응했다고 생각했지만 매일 아침마다 모두 마당에 있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녀석들은 자기들끼리 돌돌돌 감싸 안고 자고 있었는데 밤새 어디서 뛰어놀고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아침에 나가면 두세 녀석은 자고 있고, 몇몇 녀석은 이름을 부르면 어디선가 뛰어오곤 했다. 그래도 한 달 반 정도 좁은 장소에서 먹고 자고 놀아서인지 내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우주가 보이지 않았다. 달이, 은하수, 별이는 한 곳에 모여 있는데 우주만 보이지 않았다.  어젯밤엔 비가 내렸고 땅은 질다. 어린 우주가 비가 내리자 산속을 헤매다 집을 못 찾은 건 아닐까, 부러진 나뭇가지에 걸린 건 아닐까, 몸이 약해서 힘이 빠져 어디선가 구조를 기다리는 건 아닐까, 혹시 줄 풀린 개에게 쫓겨 어디 숨어 있는 건 아닐까 등 별별 생각들이 떠올랐다.


"우주야~ 우주야~!"

이른 아침부터 동네가 우주 이름으로 울려 퍼졌다. 그래도 우주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우주를 찾아 나서야 할지도 모르겠고, 풀들은 자라 있으니 그 작은 아이를 잘 찾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나비, 네 애기 찾아와야지!"

"여름, 얼렁 우주 찾아와!"


난 나비와 여름이를 다그쳤다. 고양이들끼리는 뭔가 통하는 게 있을 거다. 내 눈엔 보이지 않지만 내 귀에는 안 들리지만 고양이들 눈에는 보이고 고양이 귀에는 들리는 게 있을 거다. 누가 우주의 어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둘 다 우주에게 젖을 먹였으니 본능적으로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찾아 나설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비와 여름이에게 희망을 걸었다. 사실 머릿속으로는 어디선가 두려움에 떨고 있을 우주를 떠올리면서...


나비와 여름이가 내 말을 알아들었을 리는 없겠지만, 결국 둘이 우주를 찾아냈다.

우리 집 옆에는 큰 밭이 하나 있는데, 돌보지 않는 땅이라 풀들이 무성해 사람 발길은 없는 곳이었다. 그 풀밭 사이로 우주와 나비가 사라지는 듯하더니 조금 있다 우주를 데리고 오는 것이 아닌가. 우주는 호위병을 거느린 왕자처럼 두 어미의 보호를 받으며 유유히 걸어오고 있었다. 풀냄새를 맡으며.


우주는 길을 잃은 거였을까, 아니면 혼자만의 이른 산책길에 나섰던 걸까.

나비와 여름이는 우주가 거기 있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걸까.

조바심으로 걱정했던 건 그냥 나뿐이었던 걸까.

알 수는 없지만 어찌 됐든 나에겐 잃어버릴 뻔한 우주를 되찾은 날이었다.


마당에서 쉬고 있는 나비, 우주, 은하수, 달이



난 기적이고 부르고 싶다_12일 간의 실종 미스터리


그러니까 그날은 갑자기 왔다. 아침에 안 보이면 어디 마실 갔나 보다 생각할 정도로 마당에 잘 적응하며 지내던 우주가 그날 아침에 보이지 않았다. 의심하지 않았다. 낮에도 보이지 않고 저녁에도 보이지 않자 은근 걱정이 되었다. 아무리 열심히 놀아도 밥때가 되면 찾아오던 아이고, 무엇보다 우주는 부르면 언제나 달려오던 아이였다. 늘 마당 근처에서 놀던 아이였고, 낯선 사람이나 소리에 놀라 도망가는 일이 없었다. 강아지 복순이가 짖고 달려들어도 피하지 않고 그 자리에 얼음이 되는 아이였다. 경계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순하디 순한 아이였다.


그 아이가 하루 종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우주는 오지 않았다. 보이지 않은 지 3일 되자 그때부터 내 삶의 균형이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이젠 기쁜 일이 생겨도, 다른 고양이들이 수없이 예쁜 행동을 해대도 전적으로 웃을 수가 없었다.  왜 하느님이 99마리의 양이 있는데도 1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 헤매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어떤 기쁨과 행복도 전처럼 가볍게 맞이할 수 없는 것처럼.


누군가 데려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이 없으니 누구나 드나드는 마당에 혹시나 들렀던 아저씨나 아주머니 아니면 택배 기사님이 귀여운 모습을 보고 얼떨결에 데려가신 건 아닐까, 아니면 우주가 졸졸 따라간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만약 그래서 누군가 예쁘게 키워준다면 그래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혼자 외롭게 떠도는 우주를 상상하거나 그보다 더 나쁜 상황을 예상하는 건 너무 괴로웠기에 최대한 좋은 생각들을 해보기로 했다.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고 열흘이 지났다.

언제나 그랬지만 울고 싶어도 울 수 없을 때가 있다. 힘들다고 인정해버리면 무너져 내릴까 봐 심리적 무장을 한다. 최대한 모든 힘을 아껴서 기도하는 데 쓴다. 그러다 이성이 작동한다. 희망은 그저 바람일 뿐이라고 알려준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신께 모든 걸 맡기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 내 욕망과 기대가 강할수록 신의 뜻대로.. 란 말은 쉽게 하기 힘들다. 차라리 포기해 버리면 되는데 그렇게 되려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그때는 8월이라 마당의 풀과 잔디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있었다. 제초제를 뿌리지 않기 때문에 더욱 심하다. 게다가 한동안 신경 쓰지 않았더니 걸어 다니기에도 불편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퇴근 후 잔디 깎는 가위를 집어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반복된 동작을 하는 건 잡념과 근심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시기에 풀을 깎으면 사이사이 숨어 있던 모기들이 떼를 지어 달려든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앞엔 풀과 잔디가 있고 그걸 지금 깎아야만 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가위질을 해대고 있을 때 복순이가 갑자기 짖어대고 시작했다.


뭘 보고 짖는 거야 그러면서 복순이 시선에 맞춰 앞을 쳐다보았는데, 그러니까 저 앞쪽, 10미터 앞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오는 입구 풀 사이로 걸어오는 우주가 거기에 있었다. 정말 우주였다. 우주가 걸어오고 있었다. 고 조그마한 네 발로 속도감도 없이 오고 있었다. 믿어지지 않았고 잘못 봤을 것도 같았지만 내 발은 이미 뛰고 있었다. 


우주야!!!


우주를 얼른 안았다. 품에 콕 안기는 게 우주였다. 힘은 하나도 없어 보였지만 몸은 상한 곳이 없어 보였다. 우주에게 밥을 주니 며칠 굶은 것처럼 먹어댔다. 그렇게 와작와작 먹어대더니 한동안 못 봤던 가족들과 몸을 비비고 뒹굴고 언제 그랬냐는 듯 장난치며 놀기 시작했다. 내가 보는 이 장면이, 내가 머문 이 시간이 정말 내게 주어진 게 맞는 건가 생각했다. 이 기쁜 소식을 내가 아는 모든 이에게 전하고 싶었다.


먹는 것만 봐도 행복한 게 이런 건가 보다.




가끔 그때를 떠올리면서 대체 우주는 어디에 있었던 걸까 상상해보곤 한다.


정말 믿기지 않았는데, 신이 데려가셨다가 마음을 바꾸어 다시 마당에 살포시 내려놓고 간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긴 시간을 어디서 무얼 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입구 쪽에서 걸어올 수 있단 말인가.


한편으론 택배 기사님이나 우체부 아저씨가 들렸다가 예쁜 우주를 키워볼 생각으로 데려가신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쁜 의도는 아니었겠지만(마당에 아기 고양이가 많았으니까) 한 마리쯤 하고 데려간 거다. 그런데 어찌 됐든 우리 집을 자꾸 들려야 하는 상황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다시 몰래 데려다 놓은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이런 생각을 한 건 직감이긴 한데... 일요일에 들른 우체국 아저씨가 왠지 모를 어색함을 남기고 떠났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난 우주를 다시 만난 걸 기적이라 부른다. 



소통을 위한 책 소개


괜찮을 거야[시드니 스미스 글, 그림/김지은 옮김]


고양이를 잃어버린 아이의 마음 얼마나 불안하고 힘들까. 어제와 같은 일상으로 발을 옮기지만 보이는 것과 느끼는 것 생각하는 모든 것은 온통 사랑하는 고양이뿐. 고양이의 입장에서 이 도시는 너무 무섭고 위험하며 낯설고 외로울 거라 생각하며, 어디선가 안녕하기를 바라고 안전하고 편안한 집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며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아이의 모습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고양이를 찾는 전단지를 붙이고 돌아온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와 서로를 꼭 껴안고 위로하는 모습이 참 따뜻하다.


아마도 고양이 이름은 실라 배리였던 거 같다.

그 고양이는 어떻게 됐을까? 그림책 마지막 장면에서 작가의 마음을 읽어본다.


하지만 집은 안전하고 조용해.

접시에는 먹을 것이 가득하고
따스한 담요도 있어

그러니까
지금 바로 돌아와도 괜찮아

에필로그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가 있다. 한동안 그랬다. 우주의 사진을 찾다가 그때 그 시간이 고스란히 떠오르자 지금은 없는 많은 아이들 때문에 더 이상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졌다. 이미 사라진 그 시간을 아무리 아름답게 기억하려 해도 아직은 때가 아닌가 보다. 눈물을 너무 많이 참았나 보다. 한동안 가슴이 아파서 글을 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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