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는 두려움을 극복한 이야기가 아니다. 여전히 삶은 어렵고 두렵다. 살아내야 하는 게 삶이고 무엇이 좀 더 나은 선택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할 뿐이다.
나 하나 살아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일자리를 잃을 때도 사람과의 이별을 선택해야 할 때도 마음은 무너지고 외롭긴 했어도 두려운 건 아니었다. 그런데 내 잘못된 선택으로 누군가를 고통에 빠뜨리거나 죽게 만들면 어떡하지란 상황에 놓이는 순간 내 이성은 길을 잃는다. 어떤 지식도 지혜도 그 순간의 나를 구원할 수는 없었다.
4년 전 엄마가 돌아가셨다. 휴직을 하고 10개 월을 병간호를 하며 엄마와 시간을 보냈다. 췌장암 3기였던 엄마는 수술이 어려운 부위라 병원에서는 수술과 항암치료 모두를 권하지 않았다. 3개월 선고를 받은 상태였기에, 한 병원에서 한번 치료해보자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 엄마와 우리 가족은 희망이라는 끈을 잡고 치료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10년 전에 기적적으로 난소암을 이겨낸 경험이 있었기에 엄마도 우리도 다시 한번 병을 이겨내 보자고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서로를 다독였다. 방사선 치료와 두 번의 항암치료를 마치고, 난 엄마를 내 집으로 모셔와 함께 지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위험 요소가 많았다. 병원에서는 집에 가는 걸 추천하지 않았지만 엄마가 꼭 퇴원하고 싶다고 하셨고, 우리 집에서 보내길 바라셨기에 집으로 모셔왔다. 병원에서는 체온이 7.5가 넘으면 무조건 병원으로 모셔와야 한다고 했기에 나로서는 엄마의 몸상태에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런데 엄마는 병원에 가는 걸 결코 원하지 않으셔서 내가 병원에 가자는 말만 해도 극성을 떤다며 언성을 높이셨다, 병원까지의 거리도 자가용으로 한 시간 반은 족히 걸리는 데다 엄마가 원치 않으셨기에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체온이 높아도, 엄마의 감정 기복이 커져도, 잘 못 드시고 힘들어하셔도 나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때 난 내 잘못된 판단과 선택으로 엄마를 위험에 빠뜨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너무 컸다. 언니와 조카가 하루가 멀다 하고 집에 들르긴 했지만 온전히 엄마와 둘이 있는 시간에 어떤 일이 생길까 항상 불안했다. 무엇이 엄마를 위한 것인지 나로선 선택하기 힘들었다. 엄마를 잃기 두려워하는 딸과 그런 딸을 보며 더 불안했을 엄마, 우리 둘은 그렇게 10개월을 함께했다.
엄마는 그 뒤로도 숱한 치료를 받으셨고, 그만큼 많은 고통을 받으셨다. 엄마를 보내기까지 내게 놓인 선택의 순간을 돌이켜보면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미련과 아쉬움, 슬픔과 분노까지 용서할 수는 없었다. 그해, 스트레스 때문인지 공황장애가 왔는데 그 뒤부터 내가 겪어야 했던 일들은 죽음의 불안에서 건져내기는커녕 더 깊게 파고들게 했다.
시골에 내려오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지친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자연 속에서 느리게 살다 보면 엄마와 함께 겪었던, 긴박한 순간에 맞닥뜨려야 했던 불안과 초조를 조금은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같은 거 말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자연은 내게 잔인했다.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집 마당에 찾아왔다. 낯가림도 없이 다리를 비비더니 이내 새끼를 낳으면 우리 집 마당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그 아이들은 보는 건 큰 즐거움이었다 사랑에 고팠던 걸까. 나는 그 아이들을 돌보는 데서 위로를 받았다 일이 끝나면 무조건 집으로 달려와 마당에 있는 강아지와 고양이들을 돌봤다. 비와 더위, 추위를 피할 곳을 마련해주고 좋은 사료도 아낌없이 사다 주었고 이름도 하나하나 다 지어주었다.
어느 날 어미 고양이가 지친 몸으로, 보기에도 위태로워 보이는 새끼 한 마리를 물고 마당으로 왔다. 얼떨결에 방을 내주고 새끼를 돌볼 수 있게 해 주었는데 그게 시작이 되어 그 방은 길냥이들의 보호소가 돼 버렸다. 그리고 그 방에서 많은 고양이들이 치료되고 많은 고양이를 잃었다.
한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어미가 버리고 갔는데, 다른 어미의 젖을 먹으며 눈도 뜨고 앉아있을 만큼 자랐었다. 그 눈이 얼마나 초롱초롱하고 반달 같던지 태양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러다 어미가 나머지 새끼들을 데리고 마당으로 오길래, 어미품에 넣어주니 핥아주는 게 아닌가. 이제 어미가 그 아이를 돌보는가 싶어 너무 기뻤고, 이제 어미를 만나 행복하게 사랑받으며 살 일만 남았다며 태양이를 축복했다. 그러나 3일 뒤에 태양이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홀로 남겨진 채 세상을 떠났다. 그냥 방에서 더 보살폈더라면 하는 후회와 무섭고 쓸쓸했을 그 아이를 안고 한없이 울었다. 그 뒤로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이 순식간에 태양이 어미와 나머지 아이들을 일주일 간격으로 모두 세상을 떠나보내야 했다. 동물병원이 멀어서 가는 것만도 일이라, 하루 이틀 지켜보려고 했던 게 속수무책으로 떠나보내야 했다.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약을 먹이는 건 고역이었다. 그 아이가 떠나고 나서야 몹쓸 짓을 한 게 아닌가 하며 자책하기도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게 고양이들 사이에서만 걸리는 전염병이라고 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만약 살았다면 모든 건은 다 잘한 일이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살리려고 한 내 행동이 오히려 더 고통을 준 거 같아 오랫동안 혼자 아파야 했다. 내게 곁은 준 아이들이 떠날 때의 슬픔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예쁘고 작은 생명들이 고통을 겪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겪을 때마다 내 삶의 에너지도 하나씩 잃어가는 느낌이었다.
얼마나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 모른다. 자꾸 죽음을 보여주는 이 상황이 두렵고 무섭고 화가 났다. 전원생활하는 책들을 보면 길냥이들과 오래오래 재미있게 잘 지낸다고 하던데, 왜 나에게는 긴장되고 슬프고 이별하는 일들만 생기는 건지 모르겠다며 펑펑 울었다. 왜 자꾸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난 도망갈 수 없었다. 아직 돌봐야 할 동물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내 곁에는 10여 마리의 동물들이 함께 있다. 뜻하지 않게 동물과 함께하는 생활을 하게 된 것이, 엄마와의 이별로 생긴 사랑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했던 건지 알 순 없지만,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는 해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오늘을 사랑하며 사는 일뿐이었다. 나는 엄마를 잃을까 두려운 마음에 함께한 시간을 기뻐하지 못했다. 사랑하는 동물들이 아플 때 죽을까 무서워만 했지 짧게라도 내게 와 기쁨이 되었던 걸 감사해하지 못했다.
지금도 여전히 난 죽음이, 이별이 두렵다. 어떤 선택의 순간에 내 잘못으로 생명을 다치게 할까 봐 늘 자신이 없다. 그래도 난 오늘도 사랑하며 산다. 이 많은 고양이 가족을 내게 선물하고 간 최초의 고양이 나비는, 숱하게 새끼를 낳고 잃어도 떠나간 새끼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다. 젖을 찾아 발버둥 치는 살아있는 새끼들에게 온 정성을 쏟는다. 어찌 보면 인간의 눈으로 인정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이상하게도 나비의 태도가 나에게 힘을 주었다. 잃은 새끼에 연연하여 밥을 먹지 않고 우울해했다면 그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을까. 슬픔에 너무 많은 자리를 내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양이를 보내며 다짐한 게 있다. 내가 사랑한 자리 하나하나마다 눈물꽃이 피어도 난 다시 사랑을 선택할 거라고. 그게 살아가는 일이고 살아있는 이유라고 아직은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