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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Jul 17. 2020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그냥 사랑하는 거지

네 번째 이야기 : 우주 이야기 3

스승이 제자에게 묻는다.

"만약 누군가의 화살에 맞으면 아프겠는가?"

제자가 대답한다.

"아픕니다."

스승이 다시 묻는다.

"만약 똑같은 자리에 두 번째 화살을 맞으면 더 아프겠는가?"

제자가 말한다.

"몹시 아픕니다."

그러자 스승이 말한다.

"살아 있는 한 누구나 화살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한 감정적 고통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첫 번째 화살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고, 두 번째 화살은 그 사건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다.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중에서


보통의 경우, 처음 맞닥뜨린 시련은 어찌어찌해서 극복해나갈 수 있지만 똑같은 시련이 다시 찾아오면 몇 배는 더 힘들게 느껴지고 헤쳐갈 용기도 나지 않는다. 처음이 아니니, 극복한 경험이 있으니 두 번째는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실은 그렇지 않다. 겪어봐서 그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이다.

우리 집 마당에서 살던 14마리의 고양이 가족 중 5마리를 두 달 사이에 전염병으로 잃고, 우주의 어미로 추정되던 여름이도 자취를 감추고, 1년도 안 돼 하루아침에 별이가 떠나고 10일 뒤 바로 우주를 떠나보내면서 심리적으로 겪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픈 아이들을 보는 건 보낸 뒤보다 더 고통스럽다. 내가 이곳에 계속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 끊임없이 들었고 솔직히 탈출하고 싶었다.

우린 모두 언젠가 이별을 하고, 단지 그 이별이 빨리 왔을 뿐이라고 이해해보려 하지만 잠깐의 위로는 될 뿐 앞으로 겪을 일들을 생각하면 아무 답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견디는 것이 최선일까.. 그런 의문에서 길을 찾지 못하던 중, 우주를 보낼 때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잘 헤어지는 법을 배운 것이다.


너를 기억해


우주를 기억하는 건 그 시간의 나를 기억하는 일이다. 우주뿐 아니라 내 곁에 머물다 간 모든 아이들은 나와 시간을 공유하고 삶을 살아냈다. 어떤 아이는 농도 짙게, 어떤 아이는 투명하게, 어떤 아이는 잔잔하게, 어떤 아이는 파도처럼 머물다 갔고 그 자국을 남겼다.


그중에서 우주는 평화를 생각나게 한다. 봄바람에 꽃잎 하나가 툭 떨어져 살랑살랑 흔들리다 내 손바닥에 사뿐히 내려앉는 느낌처럼, 반항이나 길들여지지 않음, 동물적 본능, 거칠고 울퉁불퉁한 느낌을 찾아볼 수 없는 투명 그릇 속의 맑은 물 같은 아이였다.


비 오는 날, 어미인 나비 입에 물려 내 앞에 나타난 우주는 내 손바닥만 한 크기였는데, 몸을 웅크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아, 숨 쉬는지 확인하기 위해 우주의 몸에 손바닥을 살짝살짝 대보아야 했다. 또 집에 온 지 열흘이 넘도록 눈을 뜨지 않았다. 언제나 몸을 웅크리고 자다가 나비가 오면 가녀린 몸을 꼼지락거리며 본능적인 몸짓으로 젖을 찾아다녔다. 은하수, 별이, 달이는 하루가 다르게 건강해져 가는 게 보였고, 서로를 쫓고 쫓으며 장난을 쳤지만 우주는 그 자리 그대로 잠만 자고 있었다. 깔고 뭉개고 밀쳐도 눈을 뜨지 않았다.


우주는 결막염이 심했던 거였고, 안약으로 치료를 하긴 했지만 꽤 오래 앓았다.

귀도 덜 자라 조그맣고 눈과 코는 누런 딱지들이 자꾸만 들러붙었다. 눈 딱지 때문에 눈을 못 뜨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어 오염되지 않게 조심스레 떼주었지만 하루 이틀 뒤면 또 딱지가 내려앉았다. 혹시 눈을 못 뜨게 태어난 건 아닐까, 이렇게 계속 놔둬도 되는 걸까, 살 수는 있는 걸까. 시간이 지나도 젖 먹는 거 외에 달리 달라진 게 없자, 우주가 이대로 잠들어버릴까 봐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이상하게도 병원에 데려가는 건 내키지 않은데, 이대로 지켜만 보는 것도 아닌 거 같은데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 놓여있었던 거 같다.

그날도 우주를 안고 눈과 코에 붙은 따지를 떼어주었는데 우주가 코를 킁킁거리고 고개를 내저으며 몸부림을 쳐댔다. 그러더니 아주 천천히 우주의 눈이 열렸다. 와 눈떴다. 눈 떴어! 우주가 날 본다. 우주랑 나랑 눈이 마주쳤다. 세상을 다 가진 거 같았다.


그 뒤로도 우주는 몇 번 외눈박이가 되었다가 장님이 되었다가 만화 속 주인공 눈처럼 둥근 반달이 되어 나를 놀라게 했다. 고양이는 귀가 깨끗하고 코가 촉촉해야 건강한 거라던 의사 선생님 말처럼 우주는 항상 콧등이 촉촉했는데, 그건 건강해서가 아니라 매번 감기에 걸려 콧물이 흘렀기 때문이었다. 걷다가도 훌쩍, 밥 먹다가도 훌쩍, 화장실에서 오줌 누다가도 훌쩍, 장난치다가도 에이치 하며 재채기를 하지만 하루게 다르게 커갔다. 우주는 형누나가 100미터 달리기 할 때 경보하듯이 뒤뚱뒤뚱 그러다 깡총 뛰기도 하고 좌우로 흔들흔들거리면서 쫓아다녔는데 용케 넘어지진 않았다. 그렇게 천천히 자기 걸음으로, 자기 속도로 형제들을 따라 자라고 있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잠자는 데 썼는데, 그러다 형제들의 레슬링에 붙잡혀 몸이 뒤집히기 일쑤였고, 뛰노는 발길질에 여러 번 두들겨 맞기도 했고, 온몸이 깔리기도 했지만 우주는 꿋꿋하게 다시 잠이 들곤 했다.


혼자서도 잘해요~


걱정없이 놀 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비가 휘몰아치던 어느 여름날, 마당에 있을 아이들이 걱정돼 일찍 조퇴를 한 날이었다. 비 피할 곳은 있었지만 비 오는 날에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왠지 비가 한 아이를 데려간 것만 같아서 태풍 같은 빗줄기가 몰아치면 일하면서도 맘이 편치 않았다. 그런데 그날 돌아와 나비, 우주, 은하수, 달이, 별이의 이름을 불렀을 때 우주가 나타나지 않았다. 온 마당을 다니며 우주를 불러댔다. 비옷은 끈적거렸고, 냥이들 밥그릇 주변에는 똥파리들이 득실거렸다. 나비와 가을이는 이미 다 자란 아이들이고 가끔은 마실 나갔다 하루 이틀 안 나타날 때도 있어 걱정이 되지 않았지만 우주, 은하수, 달이, 별이는 여전히 작은 바람에도 쓰러질 거 같은 여린 나무였다.

어쩌면 나비랑 같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속으로 위안을 가져보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창밖을 살피며 작은 소리에도 혹시나 하고 밖을 쳐다보았을 때 복순이 밥그릇 옆에 앉아 있는 우주를 보았다.

한달음에 달려가 우주를 안고 밥을 주었지만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빗속에 어디 다친 거 아닌지 뭘 잘못 먹은 건 아닌지 살펴보려는데, 우주가 조용히 작은 몸짓으로 그루밍을 하고 있었다. 복순이 밥그릇이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웃음이 났다. 우주가 복순이 밥을 다 먹은 거였다. 우주는 자기 몸짓의 15배는 될 법한 복순이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다른 애들은 얼씬도 않고 복순이 움직임만 느껴도 후다닥 달아나거나 하악 거리며 경계하는데, 우주는 복순이 앞에서 그냥 얼음이 되었다. 처음엔 무서워서였을 거 같은데 나중에는 꼬리털도 안 세우고 그냥 복순이가 하는 대로 그대로 있었다. 복순이도 나중에는 핥아주고 쫓지도 않는다. 그러니 자기 밥을 열심히 먹는 우주를 그대로 놔두었겠지. 우주도 코앞에 있는 복순이를 보고도 여유 있게 식사를 마쳤겠지.

우주는 나무 위를 다람쥐처럼 잽싸게 오르내렸다. 그때 느꼈다. 우주는 약한 게 아니라 어쩌면 내공이 대단한 아이인지도 모르겠다고 호기심도 많고 겁도 많고 내 옆에서는 금방이라도 잠에 취해 쓰러질 것처럼 연약해 보이는데, 알고 보니 혼자서 세상을 탐험하고 있었다는 걸. 참으로 다행이다. 우주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자신을 잘 컨트럴 할 줄 아는 아이였던 것이다.


복순이와 나비의 모습. 마당에 있는 복순이에게 다가와주는 친구는 언제나 나비와 우주였다.


햇살 좋은 날엔 아이들과 함께                    


비 오는 날 빗소리 들으며 차 한 잔 마시면 딱 좋겠다 싶어 마당에 정자를 만들어놨는데 고양이들과 복순이의 놀이터가 되고 말았다. 왜냐면 의자를 갖다 놓아도 금세 고양이들의 발톱에 찢겨 뜯어지고, 밖에 있다 보니 순식간에 털과 먼지로 뒤덮이고, 어찌어찌 게으름을 피우면 정자 위에는 아이들의 간식과 사료 장난감이나 관련 물품들로 채워지곤 했다.

그래서 나가 앉을 생각을 못하고 있다가 2월 어느 햇살 좋은 날 며칠 간의 휴가를 얻어 집에서 쉴 기회가 있었다. 쌀쌀하긴 해도 마당에 해가 하루 종일 들어오는 곳이라 날씨만 좋으면 봄날이 온 듯 따스해 낮잠 자기 딱 좋은 분위기가 되곤 했다. 이 곳에 이사 온 지 햇수로 3년 되었지만 그런데도 마당에 나가 쉬기보다는 늘 서성거리거나 풀을 뽑거나 마당 청소를 하곤 했다. 

그날은 겨울이기도 했고, 며칠 휴가 중이라 아무것도 안 해도 부담되지 않는 어느 오후였다. 산을 보며 정자에 기대 쉬려는데 우주, 달, 별, 은하수가 조르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집 안에서 키우는 고양이들도 안 하는 행동을 이 녀석들은 한다. 별이와 우주는 무릎 위에 올라오길 좋아한다. 별이는 이상하게  발가락 무는 걸 너무 좋아해서 가끔 세게 물어 혼나기도 했지만, 언제나 옆에서 발아래서 떠나지 않고 장난을 쳤다. 우주는 그냥 가만히 내 품에 안긴다. 놀자는 것도 아니고 자기 입맛에 맞게 나에게 뭘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냥 내 옆에 가만히 있거나 무릎에 올라와 잠을 잔다.  

여러 고양이와 살다 보니 고양이마다 성격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어떤 사람은 혈액형처럼 고양이들도 털 색깔에 따라 성격이 다르다고 하는데 얼추 맞는 것도 같다. 이곳에서 처음 만난 검은 고양이와 회색털을 가진 고양이들은 매우 순하다. 갈색 고양이보다 대체적으로 더 약하고 순하다. 검은 고양이를 매우 무섭다고 생각하거나 불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마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란 소설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도 처음엔 온통 까맣기만 한 고양이가 조금 낯설고 무섭기도 했지만 여러 검은 고양이를 만나 본 결과 겁 많고 순하고 정이 많은 것이 특징이었다. 

별이는 온통 까매서 사진을 아무리 찍어도 어디가 눈이고 코인지 구별이 잘 안 된다. 털도 다리와 다르게 비단결같이 윤기가 흐르고 빛에 따라 조금 다르게 보이는, 묘해서 신비롭다고 느끼게 만드는 검은색을 띠었다.


별이는 너무 까매서 밤하늘 별처럼 반짝이고 붙여주었는데, 너무 일찍 별이 되어 가버렸다. 이름 때문인가 싶어 다음번에 태어난 고양이들은 모두 곡식 이름으로 지어주었다.


은하수와 달이는 옆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금세 어디론가 달려가 숨고 뛰고 장난을 쳤지만 우주와 별이는 그냥 내 곁에 머물렀다. 그날 처음으로 이 시골에 온 이유를 알 거 같았다. 겨울바람에 메마른 나뭇가지들이 사사 사사 스스스스스 거리며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마치 '이제 널 받아줄게'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눈물이 핑 돌았다. 사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이곳이 내 집이고 내 땅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달리 보면 여긴 나보다 훨씬 먼저  뿌리는 내리고 있는 산과 나무와 꽃과 풀과 벌레와 동물이 있었던 거다. 그들에게는 내가 낯선 이방인이 아니었을까. 내가 가진 기운이 그것들과 어우러지기 위해서 나뿐만 아니라 자연도 시름을 앓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집도, 사람도, 동물도, 직장도 인연이 있어야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는 거 같다. 그 많은 집 중에 이곳을 선택한 것도 인연이고, 나비를 만나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한 예쁜 동물들을 만나 웃고 운다. 사랑하고 사랑받는다. 안정이 되기까지 오래 시간이 걸렸구나 생각이 들었다. 3년이 되면서 이제 나도 이 집도, 이 자연도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느낌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그냥 사랑하는 거지


2월 말 아이들과 마당 정자에서 함께 햇살을 쬐며, 나도 이젠 여기서 살아도 되겠구나, 이곳이 나를 받아주었다는 위로를 받으며 눈물을 흘렸는데, 두 달 뒤 별이가 떠났고, 10일 뒤 우주가 떠났다. 별이는 아침에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걸 발견한 거라 원인도 모른 채 보냈고, 우주는 병원을 두 군데나 데리고 다니며 검사한 결과 고양이들 사이의 전염병이며,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말만 들었다.  


우주와 두 번째 병원에 갔던 날, 그러니까 우주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전날, 우리는 오랜 시간 드라이브를 했다. 처음 병원 가는 길엔 캐리어에 넣었는데, 돌아올 때는 우주가 맘 편히 있게 밖으로 내어놓았다. 고단했는지 요 며칠 잠도 못 자고 낑낑대던 우주는 보조석 아래 바닥에서 다리를 쭉 뻗고 세상모르고 잠들었고 난 우주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네가 얼마나 예쁜 아이인지,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병원에서 치료 불가라는 말을 들은 뒤, 치료실 앞 의자에서 우주를 무릎에 앉히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앞에 간호사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니까 나도 모르게 우주가 얼마나 예쁜지 얘기해주다 하소연과 설움이 복받쳤다. 우주는 알고 있었을 거다. 내가 왜 우는지. 자신이 어떻게 될 것인지.... 우주는 되려 초연해 보였다. 가끔 알 수 없는 울음을 토해낼 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나 집으로 데려와 저녁이 되고 밤이 될수록 우주가 조금씩 울어대기 시작했다. 한 자세로 오래 있지 못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이, 전염병이니 다른 고양이들과 격리시키라고 했기에 문 앞에 따로 집을 마련해주었다. 우주가 보고 싶어 달려온 달이를 떼어놓느라 애를 먹었다. 우주를 혼자 놔두어야 한다는 사실도 가슴 아팠다. 우주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병원에서는 혹시 모르니 영양제를 맞히라고 약을 주었는데, 주삿바늘이 우주를 더 아프게 하는 거 같아 중단했다. 만약 내가 우주라면 내가 바라는 건 뭘까 생각해보았다.


기적이란 게 있으니까 뭐든 해볼까 생각했던 지난 시간이 떠올랐다. 내게 최선이었지만 상대방에게도 그게 원하는 최선이었을까란 의문을 던지곤 했었다. 내가 우주라면 그냥 외롭지 않게, 무섭지 않게 옆에 있어주면 좋을 거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우주는 가만히 엎드려 앞을 보고, 난 옆에서 묵주기도를 바쳤다. 우주가 덜 아프게 떠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우주의 머리맡에 묵주를 놓고 나갔는데, 돌아와 보니 그 자리 그대로 잠들 듯이 떠났다. 눈도 감고 편안해 보였다. 눈을 감고 떠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우주의 잠긴 눈이 위로를 주었다. 우주는 끝까지 나에게 사랑을 주고 갔다. 우주는 떠난 아이들 중 유일하게 나에게 후회를 남기지 않았다. 내가 어찌어찌하면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란 미련과 후회를 남기지 않았다. 나랑 우주랑 정말 서로를 사랑했던 거 같다.


우주가 떠난 후 달이는 한 동안 우주를 찾으러 다니는 듯했다. 거칠 게 없는 야성미 가득한 은하수와 달리 소심한 달이에게 우주는 단짝 친구였기에, 마당에 있는 달이를 보면 마음이 짠했다. 그래도 요즘 은하수랑 달이랑 둘이서 꼭 껴안고 잔다. 달이가 다시 건강하게 뛰노는 걸 보는 것도 감사하고 은하수가 씩씩한 것도 감사하다.

 



내게 행복을 준 아이들.  좌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별이, 우주와 태양이, 은하수, 달이





소통을 위한 책 읽기


휴게소[정미진 글, 구자선 그림/atnoonbooks]


이 책은 만화 형식을 띠고 있고, 글은 적고 대부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죽은 동물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 휴게소. 강아지, 고양이, 앵무새, 햄스터가 각자의 사연을 안고 휴게소에 들른다.

사람과 사는 게 어떻게 좋은 일만 있을까. 동물들이 가졌던 나름의 불만과 섭섭한 마음을 휴게소에 들러 털어놓는다.  

이제 아주 먼 길을 떠나야 하는 동물들에게 휴게소 주인은 편지 한 장씩을 쓰게 하는데....


동물들이 각각의 주인에게 보낸 편지 내용은 무엇일까요?



반려동물과 이별을 경험한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반려동물이 제일 먼저 와서 반겨준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언어가 아니어도  눈빛으로도 사랑한다는 걸 알 수 있다는 건 참 놀라운 교감능력인 거 같아요. 저도 떠난 동물들이 이렇게 편지를 보내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저 또한 전하지 못한 말 한마디 더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무엇보다 떠나간 동물이 이런 휴게소를 거쳐 안전하게 저세상으로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동물을 사랑하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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