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선택인가.
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것은 네가 너의 장미꽃에 소비한 시간이야.
[어린왕자](생떽쥐베리 지음) 중에서-
내가 일하는 곳은 초등학교다. 이곳에 두 달 전부터 개 한 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다리가 늘씬한 엷은 갈색의 개는 몸무게가 10kg은 족히 넘어 보여, 처음 보는 사람은 선뜻 다가서지 못하게 만들 정도의 크기였다. 길냥이 밥을 놓아주던 곳에 그 개가 나타나 고양이 사료를 어그적 어그적 먹고는 그 옆에 누워 쉴 때도 있고, 느린 걸음으로 정문으로 나가 골목에 엎드려 있기도 하고, 학교 뒤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서 늘어지게 잠을 자기도 했다.
이 동네 사람들 말로 두 가지 이야기가 떠돌고 있는데, 하나는 근처에 주인이 있는데 학교 후문에 있는 공부방 집 개를 사랑해서 항상 요 앞에 있는 것이라는 설과, 또 다른 하나는 갑자기 나타난 개로 "요맘때(여름휴가철) 면 이상하게 첨 보는 개들이 나타나요. 그게 다 유기견이에요."라며, 분명 저 누렁이도 누가 키우다 여기에 버리고 간 게 틀림없다는 설이었다.
이찌되었건 누렁이는 내가 놓아둔 고양이 사료를 먹는 아이가 되었다. 어쩐지 아침에 가보면 두 개의 밥그릇이 깨끗하게 비어져 있었는데, 난 영문도 모른 채 요즘 고양이 녀석들이 왜 이렇게 밥을 많이 먹지? 의아해하며 잘 먹어주는 게 그저 밥 주는 사람의 기쁨이라 좋아라 했는데, 알고 보니 깨끗한 밥그릇의 주인은 누렁이였다.
그 바람에 우리 집 복순이 밥을 하루에 하나씩 들고 나올 수밖에 없게 되었다.
누렁이의 존재는 시간이 갈수록 학교 선생님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개에게 별 관심이 없거나 아는 게 별로 없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텃밭에 갔는데 큰 누렁이가 고양이 밥 먹고 옆에서 자고 있던데요? 사람이 가도 놀래지도 않아? 나만 깜짝 놀랐잖아요. 글쎄."
"저렇게 개가 학교 안에 돌아다녀도 되나?"
"너무 커서 좀 무섭던데요. 사람 쫓아오거나 그러진 않는데 애들한테 혹시라도 덤빌까 봐..."
개를 좋아하거나 키워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 누렁이 사람이 다가가면 오히려 피하던데..."
"제가 봤는데 애가 하루 종일 여기서 잠만 자던데요.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닐까요?"
"눈 좀 봐. 너무 순하게 생겼어. 누구 해칠 것 같진 않은데..."
"우리 집에 마당이 있으면 데려가 키우고 싶은데, 에구 아파트라 엄두가 안 난다."
"다른 것보다 요즘 한여름이라 혹 잡혀갈까 봐... 어떡해요. 그러면 ㅠㅠ."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사건이 일어났다.
"교감선생님이 신고하셨대요!"
그 무렵 누렁이는 후문을 통해 쭉 들어오면 안쪽 깊숙한 곳에 있는 느티나무 아래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곳은 주차장이 있는 곳이라 학교 거의 모든 교직원이 출근할 때마다 지나가면 누렁이를 보지 않으려 해도 볼 수밖에 없는 딱 그런 위치였다.
누구 해치지도 않고 저기서 잠만 자는데 꼭 신고까지 했어야 했는가에 대한 반발과 의구심을 가진 선생님들이 누렁이의 안위를 걱정하며 모여들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포획하는 사람들이 오기 전에 누렁이를 학교 밖으로 내보내는 것. 그러나 누렁이는 쫓아낼 방법을 못 찾은 우리는 걱정만을 남기고 퇴근해야 했다. 나는 누렁이가 너무 안쓰러워 캔 세 개를 사다 주었는데, 어찌나 잘 먹던지 마음이 놓였다.
다음날, 매번 있던 장소에 누렁이가 보이지 않아, 정말 누렁이가 어디 끌려간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오후가 돼서 다시 나타났다. 그때부터 우린 누렁이가 그 자리에 잘 있는지 시시때때로 확인했다. 누렁이는 느티나무 아래 그늘진 곳에 쓰러진 듯 누워있다가도 인기척을 느끼면 번쩍 머리를 든다. 그렇게 바라보다가 다시 눕는다. 캔이나 사료를 갖다 주면 1-2미터 떨어져 있다가 사람이 조금 물러가야 다가가 조용히 먹는다. 크게 도망가지도 않지만 가까이 오지도 않는다. 먹을 때 항상 주위를 살피며 경계하고, 사람과 일정 거리를 유지한다. 사람들이 삶은 달걀도 갖다 주고 식빵도 갖다 주고, 우유도 갖다 주었지만 오직 사료와 캔만 먹는다. 그걸로 이 아이는 사람이 키우던 개라는 결론을 내렸다.
"분명 상처 받은 아이라서 사람을 경계하는 거 같아요."
우리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고, 우리는 누렁이와 딱 1미터 거리를 유지하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교감선생님이 신고했다는 곳에 전화를 걸어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그곳에 간 아이들이 어떻게 되는지를 물어보았다.
"수의사들이 있는 임시보호소에 보내죠. 거기서 주인이나 분양자를 찾는 공고를 올리는데 10일-15일 사이에 나타나지 않으면... 그렇게 큰 개는 대체로 분양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봐야죠."
난 이 사실을 곧바로 여러 선생님들에게 알렸고, 신고하면 동물보호소에 가서 편하게 지낼 줄 알고 있던 관리자들은 조금 놀라는 눈치였고, 누렁이를 걱정하던 선생님들은 깜짝 놀라며 어떻게 하냐며 발을 동동 굴렀다.
"교장선생님한테 말씀드려서 못 데려가게 하면 어떨까요? 교장선생님은 개가 순하기만 하네 뭐 그러셨거든요. 교감선생님이 자꾸 얘기하니까 마지못해 허락하신 눈치셨어요."
그러나 기대했던 것과 달리, 대답은 어쩔 수 없다는 거였다.
"얼마 전에 여기 사시는 00분 강아지를 물어서 피가 철철 흘렀다고 그러던데? 사람은 안 물지 몰라도 여기 개를 물기도 하고 얼마 전에 죽은 아기 고양이도 저 개가 물었다고 그러고... 개들은 갑자기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여기 애들도 왔다 갔다 하는데 마냥 둘 수는 없어."
그래서 나는 전략을 바꿔야 했다.
누렁이를 받아줄 곳을 찾아야 했는데, 근처에 후원을 받아 운영하는 동물보호단체에 알아보니,
저희는 이제 더 이상 동물 받을 공간이 없고요.... 그럼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해요?..... 글쎄 저희들은 사료지원이나 의료지원 정도 해드리는 곳이라서요....라는 대답만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시골에서 닭 키우며 사시는 학교 여사님께 여쭤보았더니. 그런 개가 어디 있냐고 함께 가보자고 했다. 누렁이를 보신 여사님은 집으로 곧장 데려가시겠다며 좋아하셨다. 나는 모녀상봉시키듯 누렁이가 의지할 곳이 생긴 거 같아 기뻐하며 오래간만에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여사님이 가쁜 숨을 쉬시며 오셔서는 내게 만 봉지를 하나 내미셨다.
"지금 시장 가서 목줄 사 왔는데 이 정도면 되지요? 오늘 아저씨 계실 때 당장 데려갔으면 좋겠는데..."
아, 그게... 누렁이가 아직 사람에게 곁을 주지 않으며, 성급히 데려갈 수도 없으니 우선 밥을 주시면서 친해지는 시간을 가지셔야 한다고 말씀을 드리고 내가 갖고 있던 사료 한 봉지를 드렸다.
누렁이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곳을 본 교감선생님의 심기는 편할 리 없었다.
"왜 아직도 저기 있는 거지?"
그래서 학교 여사님이 저 아이를 데려가실 예정이며, 지금 친해지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그렇게 막 데려가면 안 되고 신고해서 데려간 다음에 입양 절차 밟아서 데려가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왜냐면 시골 사람들이 데려가서 어떻게 할지도 모르니까 책임소재를 확실히 해두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 거지."
방송에서 돌아다니는 개를 데려가 학대하거나 잡아먹는다는 내용이 나와서인지 교감선생님도 교장선생님도 시골 여사님이 데려가는 걸 꺼림칙해하셨다. 그래서 시청에 연락해 그쪽에서 누렁이를 데려간 다음 키우겠다는 분 집으로 이동하는 걸로 이야기를 해놓았다. 그리고 관리자분들께는 여사님은 지금도 개를 2마리나 키우고 계시며 작년엔 우리 집 닭 3마리도 드린 적 있다, 여사님은 동물을 예뻐하시고 그냥 키우는 걸 좋아하신다 등등 설명을 드리니 그제야 그럼 됐고.. 하며 더 이상 말씀을 안 하셨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원래 난 누렁이가 안쓰러워 밥이라도 굶지 않게 해주려고 했던 것뿐인데 어느 순간 누렁이의 거처를 책임져야 하는 주체가 돼 버린 것이다. 여사님은 언제 저 아이를 데려갈 수 있느냐고 나를 보면 물으시고, 관리자들은 여사님이 데려가신다는 걸 아신 이후로 관심을 끊으셨다. 앞집 개를 물었네, 아기 고양이를 물어 죽였네 하며 갖던 경계심도 오뉴월 개팔자란 속담처럼 나무 그늘 아래 잠만 자는 누렁이를 보자 언제 그랬냐는 듯 서서히 잊히고 있었다. 이 틈을 노려 나는 그냥 누렁이가 저렇게 조용히 살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여사님과 친해져 따라가길 바랬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그 누렁이가 새끼 가졌다던데 알고 있었어요? 00 선생님이 누렁이 사진 찍어서 아빠한테 보여드렸더니 대번 새끼 뱄나 그러셨대요."
"난 누렁이가 잘 때 하도 숨을 가쁘게 쉬길래 아픈가 보다 했는데 그게 혹 새끼 가져서 그런가? 어떻게 보면 배가 좀 나온 것도 같고."
그 바람에 관심 있는 여러 선생님들이 각자 자기만의 시간과 방식으로 자고 있는 누렁이를 관찰해 결론을 내기 시작했는데, 나도 혹시나 하고 가만히 살펴보니 확실히 배가 나와 있었다.
개는 임신 기간은 대략 2개월. 임신을 하면 젖꼭지가 커지고 숨을 가쁘게 쉼. 이때는 건사료를 많이 먹이지 않는 것이 좋음 등등.. 몇 가지 정보를 찾아본 결과 누렁이는 임신한 게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저렇게 누워 잠만 자고 헐떡거렸던 게 더워서가 아니라 몸이 무거워서였던 거였다.
이젠 누렁이는 존재 그 자체로 애들에게 위협적이냐 아니냐의 차원이 아니었다. 누렁이가 새끼를 안전하게 낳고 키울 수 있는 곳이 어디냐로 관심이 옮겨졌다. 아무 데나 새끼를 낳으면 다 죽을 거라며 얼른 안전한 거처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의견이 누렁이를 아끼는 사람들의 의견이었다. 문제는 그게 어디야? 였다.
누렁이를 키우고 싶어 하는 여사님은 임신 소식에 화들짝 놀라며 맘이 급해지셨다.
"저거 새끼 놓으면 사나워져서 데려가기 더 힘들어요. 아무 데나 새끼 낳으며 어떡해 다 죽지. 저거 얼른 묶어 데려가면 안 돼요? 시청에서는 언제 사람이 온대요?"
때가 장마인지라 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오니, 비 오는 날이면 여사님도 나도 하루에도 수십 번도 더 누렁이 안위에 마음이 쓰였다. 나무 아래는 비를 쫄딱 맞으니 그나마 지붕 있는 곳 아래 몸을 숨겼지만 그마저도 센 비바람에 금세 젖어 누렁이는 이리로 저리로 옮겨 다녀야 했다. 문제는 혼자가 아니라 새끼를 가졌다는 데 있었다. 날쌔지도 못한 걸음으로 정말 엉기적엉기적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눕고 걷는 모양이 힘들어 보였다. 저 아이를 따르지도 않는 여사님 집으로 억지로 데려가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더 친해질 동안 기다려야 하는 건지, 누렁이를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놔두는 게 좋은 건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가장 좋은 방법의 기준은 무엇일까? 누구를 위한 선택일까? 그게 정말 최선일까?
정말 현명한 누군가가 나에게 그 해답을 알려줬으면 좋겠다. 누렁이를 위한 가장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를 아무리 생각해봐도 뭐하나 흡족한 결론이 떠오르지 않았다. 만족스러운 선택은 없었다. 누렁이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없는 나로선 인간의 입장에서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적어도 새끼는 안전한 곳에 낳아 기르자는 것. 어차피 이렇게 의견이 분분한 학교에서 누렁이가 오래 있을 수 없다는 건 분명했고, 자유인가 안전인가를 선택해야 할 때 인간의 입장에선 안전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밖에서 낳으면 어미는 그렇다 치고 새끼들도 그냥 떠돌이 개가 되는 거니까요."
유기견을 데려가시는 분의 얘기다.
"새끼 낳으면 예민해져서 혹시라도 애들 해칠 수도 있으니..."
걱정 많은 어른들의 얘기다.
난 의문이 들었다. 왜 학교는 개를 키우면 안 되는가? 개집 하나 갖다 놓고 돌아가면서 밥 갖다 주고, 차츰차츰 사람과 친숙해지고 사랑해주면 학교를 지켜주는 멋진 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하는 그 수많은 어린이들도 자연스럽게 개와 친해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내가 교장이라면 그렇게 할 텐데... 그런 생각도 했다가 너무 이상적이군 생각했다가 무력한 나를 발견했다가 하면서 마음만 무거워졌다.
결국 데려가려는 분이 계실 때 새끼 낳기 전에 보내자는 결론을 내리고 시청에 전화를 걸었다. 연락받고 나온 사람은 누렁이의 상태를 살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포획틀을 설치한다 해도 성공률은 반반이에요."
"임신했는데 스트레스로 유산도 할까요?"
"그럴 수도 있죠."
"다른 방법은 없나요?"
"마취하면 2시간 정도는 의식이 없으니까 스트레스는 안 받겠죠."
"마취의 부작용은요? 새끼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을까요?"
"마취는 무조건 안 좋다고 보시면 돼요. 또 아셔야 될 게 마취총 쏠려면 적어도 4미터 정도의 거리까지는 갈 수 있어야 하는데, 자칫 개가 움직이기라도 하면 원하는 곳에 주삿바늘이 안 갈 수 있어요. 그러면 뭐... 잘못될 수도 있겠죠."
"아니,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이런 경우 많으셨을 테니 그나마 아이한테 제일 좋은 방법을 알려주세요."
"이거 두 개밖에 없어요. 마취할 건지 포획할 건지 선택하셔야 해요. 원하는 대로 해드릴게요."
어이가 없었다. 수술을 앞두고 의사가 최악의 경우를 환자나 가족에게 설명하고는 모든 책임은 당신에게 있으니 그렇게 알고 사인하라는 느낌이었다. 그분 입장이 이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요즘은 동물보호법이 강화돼 떠돌이 개를 포획하는 방법은 이 두 개밖에 없으며, 떠돌이 개를 포획하다가 잘못되는 경우 모두 자기들 책임으로 돌리는 것도 무리가 있으니 웬만하면 신고한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의도였다.
"포획하다가 애가 갑자기 차도로 뛰어들어 사고가 나면 다 우리들 책임이라고 하는데 그것까지 어떻게 다 책임집니까? 그리고 동물농장 같은 데서 하는 유기견 뭐 길냥이 구출하는 거 그런 거 생각하시면 안 돼요. 그런 건 방송이니까 그렇게 하는 거고 실제는 그렇게 못해요."
시설도 장비도 인력도 그만큼 없다는 얘기였다. 보아하니 그분도 동물을 꽤 아끼는 분이신 거 같은데 이런 유기견을 볼 때마다 기분 좋을 리 없었다. 그나마 우린 데려갈 곳이 있으니 덜 속상해하는 거였고, 만약 유기견센터 같은 곳으로 데려가는 것이었다면 얼굴 인상이 확 달랐을 거 같은 분위기였다.
문제는 동물구조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접하고 보니 마음이 더 착잡해졌다는 거다. 포획하는 틀은 뭐 그리 작고 철문 닫히는 소리는 어찌나 무지막지하게 크던지, 내가 들어도 심장이 턱 하니 내려앉았다. 저 소리에 놀라 유산되는 건 아닌지 걱정될 만큼. 마취는 이동하는 동안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부작용을 생각해야 했는데, 마침 마취총을 쏠 소방관이 화재 진압으로 올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기에 방법은 포획틀 설치로 결정되었다.
난 여기서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포획틀 설치인가, 마취를 할 것인가를 여러분에게 선택하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실 건지... 두 가지 중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다면 새로운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말하고 싶다.
교감선생님께 말씀드리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그래서 누가 왔다고? 마취를 쏘는데 학교 어디서 한다는 거야? 거기 컴퓨터 쌓아둔 데? 거기가 공간이 되나? 대체 뭐가 어렵다는 거야? 포획틀에 넣은 뒤에 마취총 쏘면 안 되나? 나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교장선생님께 여쭤봐요. 난 모르겠네."이러신다.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생각하며 교장실에 가서 말씀드리니 "에고 참 이젠 이런 것도 내가 다 나서야 하는 거야?" 이러면서 밖으로 나오셨다. 이미 소문을 들은 몇몇 선생님들이 포획틀과 누렁이를 지켜보며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교장선생님은 이미 누렁이가 임신한 것을 알고 있었으며, 사람에겐 안 그러지만 예민할 수 있으니 어쨌든 학교에 계속 놔둘 수 없다는 입장을 말씀하시며 포획틀 여닫는 법을 배우고 계셨다.
잠시나마 이 모든 일을 나 혼자 어깨에 짊어지고 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누렁이가 놀라긴 하겠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쪽으로 여론이 형성되면서 무사히 여사님 댁으로 가기만을 바라는 거였다.
누렁이에게 해피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오늘 밥그릇이랑 캔 3개를 사들고 와 포획틀 안에 넣어주었다. 사실 맘 같아선 코앞에 놓아주고 싶었지만 내 입장만 생각할 수 없었다. 해피를 내가 키운다면 모를까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여사님이 데려가는 걸 지연시키는 건 좋은 방법 같진 않았다. 아직도 마음에 뭐가 얹힌 것처럼 답답하고 초조하다. 그래도 난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다. 게다가 어제 비 내린 걸 보고 아침에 비닐을 챙겨 오셔서는 포획틀 지붕을 엮고 계신 여사님을 보니, 해피가 얼른 여사님을 따라나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오니까 안에 들어가서도 쫄딱 맞을 거 아녀요. 이렇게 해주면 좀 낫겠지."
꼼꼼히 지붕을 엮는 여사님과 나를 번갈아 살피는 해피. 캔을 따자 얼른 일어나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본다.
"이젠 아주머니 따라 가. 거기서 새끼 낳고 행복하게 지내. 혹시 예전 주인 기다리는 거면... 이제 포기해. 안 와. 그 사람들. 그리고... 만약 정말 네가 버려진 거라면 그 사람들을 대신해서 내가 사과할게. 미안해. 미안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혹시 나도 누군가에게 버려진 경험이 있는 걸까? 왜 난 이런 감정에 쉬 동화되는지 알 수가 없지만 암튼 해피가 가장 행복해지는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
여사님께 캔을 담은 밥그릇을 드리며 틀 안에 넣어주시라 말은 했지만 차마 그 뒷일을 볼 자신은 없어 도망치듯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여사님이 오셔서 말씀하시길 해피가 배고픈 건 확실한 거 같은데, 밖에만 빙빙 돌면서 들어가지는 않는다고. 조금 더 지켜보다가 안 들어가면 꺼내서 줘야겠다고.
지금도 비가 내린다. 느티나무 아래 포획틀은 빈 채로 덩그러니 놓여 있고 해피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정문 앞 창고 앞에 놓아둔 고양이 밥을 먹으러 갔는지도. 아무리 생각해도 포획틀에 들어가지는 않을 거 같은데... 언제쯤 해피는 맘을 열어 여사님을 따라나서게 될까.
글 없이 데생만으로 버려진 개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 도로 한복판에 차에서 버려진 개는 차 뒤를 쫓지만 결국 놓치고 만다. 행여 주인이 다시 올까 지나가는 차들에 눈길을 두지만 결국 혼자임을 인정하게 된다. 버려진 개의 심정을 작가는 심플하지만 큰 울림으로 전달한다. 개는 그 뒤에 어떻게 될까?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될까?
마지막 페이지를 두고 그 의미에 대해 사람들마다 해석이 엇갈린다. 작가는 버려진 개에게 무엇을 주고 싶었던 걸까?꼭 한 번 읽고 알아보길 바란다.
버려진 개를 다루거나 사람과 개의 우정과 사랑을 다룬 책은 매우 많다. 좀 다른 것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사람을 구한 개이야기나 똑똑한 개의 실전담 같은 게 대부분이었다면 지금은 버려진 개에 대한 이야기가 훨씬 많아졌다는 거다. 동물보호법은 강화되고, 동물병원도 많아지고, 동물관련 상품시장도 커졌지만 정말 동물은 행복해졌을까?
책에서 보통 버려진 개를 다룰 때 작가는 말을 아낀다. 또 개의 시각에서 세상을 보여주고자 한다. 아픈 진실은 그렇게 침묵으로 항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