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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Mar 12. 2021

나와 함께하지 못한 인연들

미샤,어리와버리 그리고...


내 시간과 마음을 써가며 울고 웃고 사랑하며 함께했던 동물들의 이야기를 쓰다가 문득, 내가 놓아버린 동물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함께 가자고 말하지 못했던 그 순간들을 떠올릴 때마다 복잡한 감정들에 휩싸이곤 한다. 애써 잊으려 할 때도 있고, 어쩔 수 없었다, 우리의 인연이 거기까지였다고 위안해보기도 하지만 깔끔하게 정리되진 않는다. 

이렇게라고 한번 다시 기억하는 게 짧은 시간 함께했던 그 인연에 대한 예의일까.




어리와 버리


2004년 1월, 그 추운 겨울에 집주인도 없이 태어난 강아지 두 마리가 있었는데, 내가 그 새끼들을 본 건 태어난 지 보름 정도 지났을 때였다. 시아버님이 키우던 개가 하필, 아버님이 돌아가시던 때에 새끼를 낳는 바람에 개가 새끼 낳은 줄도 모르고 있다가 상을 치르고 집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주인도 없이 어미 혼자 힘들게 낳아서인지, 평소 꼬리 치며 안기던 남편을 보고도 으르렁거리며 경계하는 바람에 대체 새끼를 몇이나 낳았는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간신히 어미를 유인한 후 살펴보니 새끼 두 마리가 집 안에서 꼬물꼬물 거리고 있는데 눈도 채 뜨지 못한 어린 새끼들이었다.

얼어 죽을까 봐 간신히 집안에 들여놓았는데, 그날 밤 밤새 회충을 국수 뽑듯이 입으로 쏟아냈다. 다음날 병원에 데려가 진료를 하니, 어미가 약해서 새끼들의 몸속에 회충이 득실득실하단다.  


어미까지 집안에 들여놓을 수는 없어 새끼들만 데려와 보살폈는데, 난 그렇게 어린 강아지를 본 적이 처음이라 앞으로 겪을 일은 생각도 못하고 마냥 귀엽고 행복하다고만 생각했다. 강아지들은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같기도 하고 어찌나 어리숙하던지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어리와 버리라 불렀다. 그 아이들 때문에 생전 사본적 없는 젖병에 이유식을 타 주고, 똥과 오줌을 치워주고 씻겨주었는데, 평온한 내 일상을 전쟁터처럼 뒤바꾼 사건이었다. 자식 키우는 부모의 위대함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이기도 했다. 특히 쌍둥이 키우는 분들은 그저 존경스럽기만 했다.  

어리와 버리는 어리고 약해서 매일 해충약을 빻아서 이유식에 넣어 입을 벌려 한 모금씩 떠주었다. 다행히 잘 먹고 해충도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자 박스에서 훌쩍 뛰쳐나올 정도로 힘이 세졌다. 옛말에 '개잠자듯 한다'는 말이 있는데,  두 녀석이 잠을 잔다 싶으면 금방 또 깨서 낑낑거리고, 또 잠들었나 싶으면 또 낑낑대고 울어댔는데, 낮에는 그래도 견딜만했지만 밤에는 정말 고역이었다. 매일 밤 놀아달라고 하도 울어대는 바람에 밤이면 몇 번이고 일어나 걔네들과 한바탕 장난을 쳐주고, 밥 챙겨주고 물 챙겨주느라 매일매일이 피곤함의 연속이었다. 몸집이 커질수록 발톱도 여간 날카로운 게 아니어서 놀아주다 보면 손과 발에 할퀸 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지곤 했다. 하지만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는 건 얼마나 보람되고 흐뭇하던지. 점점 뛰기도 하고, 이놈! 하면 하던 장난도 멈출 줄 알고 이름을 부르면 달려올 줄도 알게 되었다. 그러다 졸리면 어김없이 내 무릎에 기어올라와 몇 번 입을 쩝쩝 다시곤 금세 잠이 들곤 했는데, 그 사랑스러운 모습이 주던 위로와 평화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도 감사하다.  


그런데, 그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난 계속 돌볼 수가 없었다. 아니 돌보지 못했다. 그렇게 뒷 생각 없이 행복해하다가 몸집이 커지자 집에서 키우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땐 고양이 또기를 데려오기도 전이라 우리는 동물을 집안에서 키운다는 생각 같은 건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키우는 게, 책임지는 게 부담스러웠던 거 같다. 우린 어미와 어리, 버리를 키울 곳을 찾았다. 다행히 시골에 사는 지인에게 맡길 수 있었는데, 어미와 어리만 내려보내야 했다. 두 달만에 어미와 상봉해서인지 어미에게 볼을 비비는 어리와 달리, 버리는 가까이 가려하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버리는 한두 주 더 우리와 있다가 다른 지인에게 입양되었다. 벼리마저 보내고 돌아온 집안은 얼마나 삭막했던지... 다시는 정 같은 거 주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살면서 정 주지 않는 건, 밥 먹고 똥 싸지 않겠다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하고 쓸데없는 다짐이다.


버리는 이름이 벼리가 되어 간간히 우리 집에 왔고, 우리도 간간히 벼리를 만나러 가거나 소식을 전해 들었다. 벼리는 몇 개월이 지난 후에 우릴 보고도 얼마나 반갑게 달려들던지... 그분은 벼리가 굉장히 영리하고 애교 많다고 말씀해주셨다.

벼리는 그곳에서 정말 아낌없는 사랑을 받으며 살다가 6년 전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얼마 못 살 거 같다고 하는데, 그 녀석을 위해 뭘 해줄 수 있을까 하다가 벼리의 버킷리스트를 만들어봤어요. 그중에 하나가 옛 주인을 만나게 해주는 건데 함 보러 오시겠어요?"

아파트에서 벼리를 키우시던 그분은 이후 가평을 터를 잡아, 그곳에서 벼리를 자연 속에서 살게 하셨다.

벼리를 마지막으로 보러 갔을 때 그 아이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남편은 알아보고 달려가는데, 나는 알아보지 못했다. 차라리 그게 나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외면하는 것보다 벼리가 나를 잊어버린 게 덜 미안해할 수 있었기에. 해준 것도 없지만 그렇게 훌쩍 가버린 10여 년의 세월이 야속하고 다시 보지 못할 벼리를 생각하며 하염없이 울었었다. 하지만 정말 좋은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았으니 벼리에겐 축복이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한두 달 안에 죽을 거라고 했지만 벼리는 사랑하는 사람들 덕분에 1년 더 살다 갔다.

그저 난 철없는 아이처럼 인연을 받아들였던 그 시절의 나를 돌아볼 뿐이다. 어미개와 어리는 다시 보지 못했고, 안부조차 묻지 않았으니... 참 무심한 시절이었다.


미샤 이야기


이름은 '미샤'. 성당에 미사 보러 가는 길에 만나서 붙인 이름이다. 저녁 미사를 보고 집 앞에 도착했을 때 고양이 울음소리가 나길래, "나비야, 나비야~." 하고 불렀는데 깜깜한 골목길에서 '에에에에에'거리면서 한 아기 고양이가 달려왔다.

얼마나 살이 통통하게 올라있던지 어미 잃은 고양이처럼 보이진 않아서 돌아서 가려는데 자꾸만 우리 뒤를 쫓아왔다. 몇 번을 돌려보내도 다시 오길래 이상한 생각에 집에 데리고 왔다. 아마 그땐 성당 갔다 오던 길이기도 했고, 하필 고양이가 있던 어둔 골목길에 버려진 듯한 성모상이 있었던 게 맘에 걸렸던 거 같다. 마치 여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었던 거 같다.  

미샤는 눈동자가 똘망똘망하게 생긴 데다 낯가림 심했던 또기와 달리 움직임이 활발하고 천방지축이었다. 작은 모래 화장실을 따로 만들어줬는데, 똥말 싸고 모래는 덮지 않은 채 냅다 튀어나오듯 도망쳤다. 그러면 또기가 가서 모래를 덮어주었다.

먹성이 얼마나 좋은지, 또기의 애장 간식 북어를 한입에 대여섯 개씩 물고 도망가곤 했다. 안돼! 하고 미샤를 안으면 이미 입안에 북어가 한가득 물려 있었다. 냉장고에 먹을 게 있다는 걸 안 후부터는 대부분 그 앞에서 꾸벅꾸벅 졸았고, 그 조그만 몸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곳이 없어, 매일이 우당탕탕이었다. 또기는 그 작은 아이 하는 짓을 가만히 지켜만 볼 뿐 하악 거리지도 않고, 먹을 걸 갖고 싸우지도 않았다. 어미처럼 미샤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기는 나중에 천천히 먹었다. 미샤는 또기 품에서 잠이 들었고, 또기는 미샤를 새끼처럼 핥아주었다.

그러나 또기와 미샤의 아름다운 동거 생활은 짧았다. 내가 미샤를 입양 보내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기와 함께 산 지 1년쯤 된 때였으니, 또기로도 족하다고 생각했고 미샤는 건강하고 예쁘니 더 좋은 사람 만나 귀염 받고 살면 된다고 쉽게 생각했던 듯하다. 

마침 지인이 사진을 찍어 카페에 올려보라 하길래 그때 찍은 사진이 있어 여기에 소개해본다.

        


미샤는 환경단체에서 일하는 젊은 아가씨가 입양했는데, 입양 후 한 달쯤 지나 원래 키우던 9개월 된 고양이를 제압할 정도로 에너지가 넘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더 이상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지금 살아 있다면 16살쯤 되었을까...


가끔, 그때 미샤를 키웠다면 또기는 더 오래 살았을까 하는 의미 없는 질문을 던져본다. 또한 지금이라면 미샤 같은 고양이를 만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거두었을 텐데 그때는 왜 그렇게 못 키운다고만 생각했을까 하는 질문도 던져본다. 그런게 인연이 걸까? 준비된 인연?


그럴 때마다 생각나는 고양이 두 마리가 있다.

동물병원에 들렀다가, 병원 원장님이 혹 한 마리 더 키우겠냐며 보여준 고양이와 추운 겨울 갑자기 집 앞 동네에 나타난 하얀 고양이 한 마리.

둘 다 버림받은 고양이들이었다. 동물병원의 고양이는 손님이 잠시 맡긴다고 하더니 안 데려간 경우이고, 동네에 나타난 고양이는 다 큰 페르시안 고양이였다. 동물병원 원장님은 자기도 한계에 이르러 더 이상 데려다 키울 수 없는 상황이라며 며칠 안에 키울 사람이 안 나타나면 안락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난 그 말을 듣고도 뒤돌아서서 왔다. 벌써 10년이 넘은 일인데도 잊지 못하는 건, 그 고양이가 너무나 친근하게 내게 볼을 비비던 모습 때문이었다. 두고두고 후회되는 행동이었기에 아마 그 미안함 때문에 지금 이렇게 다른 고양이들을 외면하지 못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페르시안 고양이는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도도하고 우아하게 앉아 사람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는데, 마침 길냥이 밥을 주시는 분이 계셔서 그 고양이가 야생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몸에 상처도 나고 스트레스로 털이 뭉치거나 빠져 곪은 곳을, 그 캣맘이셨던 분이 다 살펴서 치료해주셨다. 그분에게서 그 고양이가 야생에 잘 적응해서 살다가 다른 동네로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그분을 생각할 때마다 생명을 돌보고 살피는 일은 그저 따뜻한 마음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용기! 용기가 필요했다.  


사람의 인연처럼 동물과의 인연도 아주 오래전부터 연결된 끈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때론 외면하고 서툴러서 상처 주고 책임지지 못한 인연들도 결국 다른 인연을 만나게 해주는 다리가 되어주거나 미성숙하고 상처 받은 나를 돌봐주기도 하는 지렛대가 되는 거 같다고 말이다.

그래서 만남은 언제나 의미 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낼 수 있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방문객>(정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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