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 함께여서 다행이야
보리와 귀리가 햇살이 가득 비치는 창가 이불에 누워 잠을 잔다. 누가 봐도 형제다. 몸집도 털색깔도 유사해서 언뜻보면 쌍둥이같다. 둘은 서로를 의지하며 각각의 부족함을 채워가고 있었다.
보리는 그때 마당에서 복순이 앞발에 혹 머리를 다친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조금 어리숙하다. 우선 화장실을 못 가린다. 지금까지 어떤 고양이도 화장실을 못 찾아 다른 곳에 볼일을 본 경우는 없었는데, 보리는 애기 때부터 아무 데나 대소변을 보았다. 매번 그런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번은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는데 대부분은 이불 이곳저곳에서 볼일을 보았다. 패드를 깔아주고 그곳에 오줌을 누면 냄새를 맡을 수 있게 해, 한곳에서 볼일을 보게끔 해보거나, 볼일 볼 때 얼른 화장실에 데려가 그곳에서 일을 보도록 해보며 나름 훈련이란 걸 해보았지만 몇 달 간은 계속 엉뚱한 곳에 볼일을 보았다. 그리고 화장실을 분간할 정도가 되었을 때는, 모래를 긁거나 덮지 않고 엉뚱한 곳을 긁었다.
보리 눈을 보면 약간 맹한 느낌이 있다. 사람처럼 고양이도 그런 눈빛을 할 수 있다는 게 놀랍기만 했는데, 그런 보리가 한없이 안쓰럽고 그리고 예쁘다. 보리의 눈빛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화장실도 잘 보고, 모래도 잘 덮는다. 지금 보리는 덩치가 또또와 샛별이를 넘어서 제일 크지만 제일 순하다.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천진난만하고 무서움 많은 그 눈빛. 한없이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보리가 내겐 천사같다.
그리고 귀리는...아직 중성화수술을 시키지 못했다. 심장이 약해 마취제를 견뎌낼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만큼 아직 완전하게 건강해지지는 않았다. 다행히 약은 먹지 않고 있지만 보리에 비하면 발육상태가 반 정도밖에 안 된다. 다리가 애기처럼 가늘다. 목 주변에 상처가 자주 생겨 깔데기를 하고 있는 날도 많다.
그러나 또또, 샛별, 보리와 비교했을 때 제일 활발하다. 우리집 대장이다.
겁도 없어서 또또와 보리가 싸우는데도 그 가운데를 가로질러 걸어간다. 또는 또또 옆에서 울어대기도 한다. 애교를 떨기도 한다. 그래서 결국 둘의 싸움을 중단시킨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눈치가 백단이다. 원래 약한 동물들이 생존본능으로 위험을 제일 먼저 감지하고 대처한다는데, 귀리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예민한 또또도 귀리를 건드리지 못한다.
귀리가 보리를 그렇게 보호한다면, 보리는 식욕으로 귀리를 살렸다고 볼 수 있다. 귀리는 약해서 먹는 양도 적고 입맛에 조금만 안 맞아도 먹지 않았다. 그러니 약을 먹이려고 사료에 섞어 주면 코를 킁킁거리다 입맛 한 번 다시고는 다시 먹지 않는다. 그런데 보리는 식욕이 정말 왕성한 아이라, 약이 들었든 아니든 너무너무 잘 먹는다. 그래서 둘에게 따로따로 접시에 담아 밥을 주면 귀리는 안 먹다가도 보리 먹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먹고, 또 보리 보면서 또 한 번 먹고를 반복해 결국 다 먹는다. 귀리약을 그렇게 보리 덕분에 다 먹일 수 있었다. 입 짧고 약한 귀리는 마치 어미 행동을 따라하는 새끼처럼 보리를 보면서 안심하고 먹었다.
그리고 귀리가 중성화수술을 하지 않아 발정이 나는데, 그걸 보리에게 해소한다. 자꾸 자기보다 두 배는 더 큰 보리 등에 올라탄다. 보리는 그걸 순순히 받아준다. 둘 다 너무 안쓰러운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하지만 나도 할일이 많다. 귀리가 여기저기 싸놓은 오줌 때문에 냄새는 이미 달관했고 한겨울에도 하루 건너 빨래하느라 우아한 내 생활은 포기한지 오래다.
둘이 얼마나 살뜰히 서로를 챙겨주는지 옆에서 지켜보고 있자면 웃음이 절로 난다. 연인처럼 서로를 부등켜안고 자고, 물고기처럼 나란히나란히 걷는다. 서로 쫓고 쫓으며 큰 누나들인 또또와 샛별이 틈에서 잘 지내고 있다.
귀리가 심장이 안 좋아 약을 한창 먹고 있을 때, 나도 몇 년 전부터 앓고 있던 공황장애와 갱년기로 숨쉬는 게 편치 않았었다. 피곤해서 잠을 자려고 해도 5분도 안 돼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곧 죽을 것처럼 불안한 마음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몸을 똑바로 하고 누워 잠자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뒤척이길 여러번 하다 어쩌다 잠이 들었다. 그런 불안이 실제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 순간이 되면 미칠 것처럼 몸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 일어나 앉아서 크게 숨을 쉬거나 책에서 배운 호흡법을 해가며 이겨내야 했다.
그런데 귀리가 내 배 위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그 아이의 심장 소리가 내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살이 없어서 귀리의 뼈가 내 살갗을 누를 때도 있었다. 나는 귀리가 숨을 편안히 쉬는지 집중하느라 내 숨을 제대로 크게 쉬지도 못했다. 내 숨에 귀리 심장을 누를까봐 조용조용 최대한 몸 움직임을 자제하며 귀리를 잠재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귀리가 내 배 위에서 자면 뭔가 안정감이 느껴졌다. 아늑함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귀리의 심장 소리에 맞춰 박자를 세다보면 내 숨이 가쁘다거나 답답하다는 것을 느낄 새가 없게 되었다. 그런 순간이 오더라도 귀리 때문에 참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매일 귀리와 잠을 자면서 나도 치유가 되어갔다. 똑바로 누워서 자도 된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별일 아니라고, 괜찮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거창한 말로 그런게 사랑인가보다. 사랑하니까 참을 수 있었고, 사랑하는 마음이 나를 치유했다보다.
지금은 귀리가 배 위로 올라오지 않는다. 대신 샛별이가 올라와 잔다. 엄마바라기 샛별이는 눈치를 너무 보느라 나를 차지하고 못했는데, 지금은 귀리보다 먼저 와서 배 위에 눕는다
사람도 동물도 모두 사랑이 고픈 존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