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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Jul 11. 2021

아이들에게 책이란

책을 찾는 이유

책에서 답을 찾는 아이들 

책을 추천해달라는 질문은 사서로서 매우 반가운 일이다. 추천해준 책을 읽고 정말 좋았다, 또 다른 책 추천해달라며 책에 흥미를 갖게 되는 경우만큼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일도 없다. 또 내가 좋아하는 책을 누군가 읽어주는 게 좋아서, 묻지도 않았는데 다가가 판매원처럼 열심히 책 설명을 해줄 때도 있다. 좋은 책을 널리 알리고 싶은 욕심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이런 열정에도 불구하고 도망가고 싶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주야장천 한 가지 소재의 책만 찾는 경우다. 대표적인 경우가 자동차와 공룡, 그리고 강아지와 고양이다. 이와 관련된 책은 정말 많지만, 내가 일하는 도서관이 소장한 책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건만, 매일매일 찾아와 자동차 책을 찾는다.

처음에는 책을 찾아줄 때마다 "와!" 소리를 지르며 눈이 반짝반짝 빛났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이상 새로운 책을 찾아주지 못하자 아이는 말한다.

"다른 거, 이건 봤어. 다른 거."

네다섯 살 아이의 실망스러운 눈빛과 마주하는 건 슬픈 일이다. 그래서 속으로 제발 그 아이가 안 오길 바란 적도 있다.




내 능력과 주변 환경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건 아이들은 책에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이다.

오늘 5학년 여자 아이가 와서 묻는다

"오늘 저 할 수 있죠?"

대체 뭘 할 수 있는 건지 몰라 "뭘?" 하고 물으니 "그거요, 책" 이런다.

잠시 아이의 말속에 숨겨진 의미를 생각하다가, 다른 아이들이 우르르 도서관으로 몰려오는 바람에 정신이 없는 틈에 대꾸를 안 하고 있으니, 그 아이가 또 묻는다.

"선생님이 오늘 책 빌릴 수 있다고 하셨는데..."

아, 그러고 보니 지난주 5학년 여자 아이들 몇 명이 한꺼번에 반납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연체 풀렸냐는 거지?"

"네!"

이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 그때 왔던 학생들 대부분 반납일이 늦어 이번 주부터 대출할 수 있다고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대출증으로 확인해보니 오늘부터 책을 빌릴 수 있었다. 

"그래, 오늘 빌릴 수 있어."

평소 도서관 이용을 거의 안 하던 학생이다. 1년에 한 번이나 올까 말까 한 아이가 연체 풀리길 기다렸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의문은 쉽게 풀렸다.

"선생님, 위로받는 책 좀 추천해주세요."

"위로받는 책?"

생각지도 못한 추천 의뢰에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책 추천을 부탁하는 경우는 많다. 독서시간인데 책을 안 갖고 왔을 때, 짧은 시간에 재미있는 책을 골라야 할 때, 지난번 읽은 책이 정말 재미있어서 그와 비슷한 책이 읽고 싶을 때, 책 잘 읽는 친구 따라 도서관에 왔다가 책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아이들은 주로 이렇게 말한다. 

"재미있는 책 없어요?"

뭘 먹겠냐는 질문에 '아무거나'라는 대답을 듣는 느낌만큼이나, '재미있는 책'은 망망대해에 떠있는 배처럼 어디서부터 어디로 출발해야 할지 막막한 아주 막연한 주제다. 그럼 나는 망망대해에서 나침반을 돌리는 심정으로 질문을 던져 범위를 좁힌다.

최근에 네가 재미있게 읽은 책은 뭐냐, 소설이냐 비소설이냐, 과학이면 동물인지 식물인지 아니면 컴퓨터 쪽인지, 만화 형식을 좋아하는지 그림 없는 책을 좋아하는지, 두꺼운 책인지 얇은 책인지, 주인공은 누구였으면 좋겠는지 등, 독자의 흥미와 독서 수준을 최대한 파악해보려고 애쓴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은 아이에게 적절한 아니 딱 흡족해할 만한 책을 추천해주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결국은 대다수의 학생들이 좋아하는 책, 읽어두면 후회 안 할 책들을 권해준다. 그래도 만족도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특정 주제를 들이미는 경우는 사서에게 고도의 집중과 직업 정신을 불러일으킨다. 정말 이 아이에게 딱 맞는 좋은 책을 찾아주고 싶은 열정이 샘솟는다고나 할까.


"위로받는 책이라... 어떤 위로가 필요한데?"

"친구 문제 있을 때 필요한 거요."

"그렇구나. 그럼 이야기로 돼 있는 게 좋을까 아니면 좋은 말로 쓴 책이 좋을까?"

그러자 아이는 망설이지 않고 "좋은 말로 된 책이요."라고 말한다.

나는 책장으로 다가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책들을 찾는다. 감정조절에 대한 책, 자존감에 관한 책, 인간관계에 대한 책 등을 꺼내보는데 아이는 탁 하고 들어오는 게 없나 보다. 그러다 발견했다. 그 아이에게 딱 맞는 책

'나는 왜 진짜 친구가 없을까?'

아이는 책을 대충 훑어보더니 "이거 할래요!"라고 말한다.

뭔가 마음에 와닿는 게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예전에 읽었던 책 중에 이 아아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었는데, 지금 여기 도서관에는 없다. 속으로 다음에 책 구입 때 그 책을 꼭 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소영아, 책 읽고 더 필요하면 얘기해. 다른 책 또 찾아줄게."

"네~"

어떤 사건으로 그 책을 찾는지는 알 수 없다. 겉으론 밝아보였고 책을 찾는 걸 보니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갈 충분히 힘이 있을 거라 믿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 지금 내게 무엇이 필요한 지 아는 사람은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하고 만다. 그리고 성장한다. 




책을 싫어하는 여자 아이가 도서관에 와서 묻는다. 

"선생님, 엄마랑 함께 활동할 수 있는 책 있어요?"

아이 손엔 오늘 받은 도서관 소식지가 들려 있다. 이달의 추천도서로 '가족과 함께, 가족을 돌아보게 하는 책'으로 테마를 정했는데 아마 그 제목을 보고 가족과 함께하고 싶은 것이 생각났나 보다. 그 아이는 무척이나 노는 걸 좋아하니까. 만들기도 서툴고 활자를 통해 뭔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건 영 재주가 없는 아이다. 놀기 위해 몇 시간이고 친구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친구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따위는 별로 관심 없지만 혼자 남겨지는 걸 무척이나 외로워하는 아이. 머리는 빗질을 한 것인지 의심이 나고 종이 접기에 재주가 꽝인 아이다. 하지만 언제나 엄마와 동생에게 뭘 해줄까 생각하는 따뜻한 아이다.

난 그 아이에게 OHP 필름을 줄 테니 집에서 해보겠니 하고 물었다. 그러나 결국 네임펜이 없어 그냥 A4용지에 할 수 것으로 했는데

"선생님, 그림 그리기 쉬운 책 있어요? 전 그림을 못 그린다 말이에요."

그래서 선택된 책이 이달의 추천도서이면서 그리기 쉬운 책... <그래도 엄마는 너를 사랑한단다>이다.

"선생님, 활동 두 가지 해도 돼요?

당연하지  

"선생님, 활동 네 가지 해도 돼요?

당연하지

"아, 그럼 책 더 빌려가야겠다!"

웃음이 나왔다.




또 한 아이가 도서관에 왔다.

"선생님, 잠이 잘 오는 책 있어요?"

시연이다. 왜?

"밤에 잠이 안 와서 늦게 자니까 늦잠을 자서 혼났어요. 그래서 "




* 이미지는 <도서관이 키운 아이>(칼라 모리스 글, 브래드 스니드 그림/그린북)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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