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개꽃 Jul 11. 2021

<터널> 이야기

화해 하는법

준혁이는 미소가 아주 근사한 꽃남이에요. 이름이 드라마 주인공 이름과 같아서 볼 때마다 이름 이야기를 하곤 했었는데, 너무 오랜만에 도서관에 왔습니다. 몇 달만에 보는 얼굴은 잃어버린 가족을 찾은 것처럼 어찌나 반가운지 저절로 미소가 번지곤 합니다.

그 아이가 대출을 해가겠다며 오더니 제가 묻습니다.

"혹시 <터널> 있어요?"

"당연히 있지. 대출됐나 함 볼까?... 음... 있네. 그런데 그 책은 왜 찾니?"


준혁이가 왜 그 책을 찾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워낙 유명한 그림책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오랜만에 와서 찾을 만큼 지금 유행하는 책은 아니었으니까요. 대부분 학교에서 읽으래요. 학원에서 공부할 거예요. 그냥 다른 데서 봤어요. 전에 읽어봤는데 재미있어서요 등의 대답을 듣곤 한답니다. 이번에도 별 기대 없이 물어보긴 했지만, 오랜만에 오기도 했고,  <터널>이 제 개인적으로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라 뭔가 막 설명을 해주고 싶은 욕심도 조금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준혁이가 이렇게 말하네요.

"아... 히히... 이 책을 읽으면 누나와 안 싸우게 된대요." 

순간 저처럼 <터널>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연결시키는 생뚱맞음이 아니라, 정말  <터널>을 제대로 이해한 한 어린이가 그 책이 꼭 필요한 또 다른 친구에게 권해 준 미덕과 지혜를 느꼈습니다. 준혁이가 누나와의 갈등을 풀고 싶어 하는 간절함이 느껴져서 속으로 응원했습니다. 준혁아, 파이팅!!! 

 

그리고 며칠 후, 준혁이가 책을 반납하러 왔습니다.

"<터널> 읽고 어땠어? 누나랑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을 알게 됐니?"

"아뇨. 잘 모르겠던데... 그냥 읽었어요."

준혁이 표정과 말투에 왠지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나름 기대했던 저로서도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그 책을 다시 들고 와 준혁이에게 읽어주었습니다. 왠지 책을 열심히 읽지 않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역시나 첫 장면을 읽을 때부터 책에 나오는 오빠와 동생을 보며 말하더군요.

"와, 나랑 똑같아."

책에는 오빠와 여동생이 나오는데, 준혁이는 누나와 남동생 사이입니다. 얌전한 성격은 여동생과 누나가 닮았고, 무서움을 잘 타는 건 여동생과 자신이 닮았다고 합니다. 엄마한테 매일 싸운다고 혼나는 것도 똑같고, 서로 같이 놀기 싫어하는 장면을 볼 때는 "나도 그런데. 누나랑 같이 놀기 싫은데... 친구가 더 좋아요." 그러더군요.


이야기는 오빠가 터널로 들어간 후 나오지 않자, 여동생이 오빠를 찾으러 용기를 내어 터널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오고, 그곳에서 돌이 된 오빠를 찾아 눈물을 흘립니다. 동생의 뜨거운 눈물로 돌이 된 오빠는 서서히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게 이 책의 줄거리입니다.

"여동생은 무서운데도 오빠를 찾으러 터널로 들어갔구나. 준혁이라면 누나 찾으러 이 무서운 터널로 들어갈 거니?"

지금까지의 모습으로는 절대 그럴 거 같지 않던 준혁이는 제 예상을 깨고 "네." 하며 망설임 없이 대답했습니다.

"이제 오빠랑 여동생은 어떻게 지냈을까?"

"사이좋게 지내요."

이렇게 말하며 준혁이가 웃습니다.

"그럼 준혁이는 누나랑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니?"

준혁이는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서로 잘해야 해요."

그리고 덧붙여 말합니다.

"누나가 없으면 심심해요."


이 일 이후로 전 남매나 형제간의 갈등을 고민하는 아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줍니다. 그러나 열에 아홉은 처음의 준혁이처럼 시큰둥해서 다시 옵니다. 앤서니 브라운의 책은 그림과 함께 보지 않으면 이야기의 절반은 못 읽어내는 책이거든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매번 저와 다시 읽습니다. 다시 보고 함께 보아야 재미있는 책, <터널>이었습니다.


* 이미지는 <터널>(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논장>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05화 요구르트의 정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