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문학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카페처럼, 예술가들이 모여 시대의 아픔을 나누던 살롱처럼, 마음 맞는 사람들과 삶과 인생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시간을 불사르던 주점처럼, 비교하기 민망하지만, 한때 나에게도 그런 장소들이 있었다. 하지만 내 추억의 장소들은 모두 시대를 이기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다. 대학생이던 시절 문턱 닳도록 드나들던 다락방 같은 주점도 사라졌고, 짝사랑했던 고등학교 선생님이 애인을 소개해주셨던 충격의 장소 오감도 찻집도 사라졌다. 남편과 처음으로 둘이서 한잔하던 술집도 사라졌고, 돈 많은 선배가 나타나야만 갈 수 있었던 고급 레스토랑 캠브리지도 사라졌다. 돈 없는 대학생들끼리 싼 맛에 마시던 새싹다방도 사라졌다. 장소가 사라지면서 내 추억도 길을 잃었다.
요즘 소셜미디어에 소개된 카페들을 보면 하나같이 개성이 넘치고 세련됐다. 책과 예술, 자연과 전통, 놀이와 휴식 등과 결합한 이들 카페는 단순히 차를 마시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건축예술 같은 느낌을 준다. 압도적인 규모는 말할 것도 없고, 카페가 들어선 장소와 인테리어를 생각하면 차를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장소를 가보고 싶어 저장 버튼을 누르곤 한다. 그러나 한 번도 찾아가 본 적은 없다. 대체로 내가 사는 곳에서 멀고, 부지런히 찾아갈 만큼 커피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여유도 없어서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카페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겐 ‘어쩌다 한 번쯤 가보고 싶은 멋진 카페’가 아니라 ‘언제나 들락거릴 수 있는 편안한 카페’가 필요하다.
내게 카페는 하나의 장소였으면 좋겠다. 길을 잃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거 같은 미로 같은 장소가 아니라, 시간을 담는 장소, 사람이 머무는 장소, 그때의 나를 기억해줄 수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는 장소였으면 좋겠다. 아쉽게도 그런 곳을 찾기 어렵다. 어쩌다 그런 곳을 찾으면 몇 년 후 여지없이 그 자리에 다른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그래서 내 나이를 따라 함께 늙어가고 낡아지고 덧댄 자국이 가득한 추억의 장소가 한없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