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도는 수많은 바람으로 가득하다. 가족의 건강, 동생의 시험합격, 이사 간 언니의 대출 문제 해결, 조카들의 건강한 아기 출산, 반려견과 반려묘와의 오랜 동거 등처럼 개인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바람도 있고, 전쟁, 기아, 재해, 학대받는 동물들을 위한 기도까지, 매일 매달 매년 바라는 것만 조금씩 바뀔 뿐, 바라는 것이 없었던 적은 없다. 그렇게 내 바람은 언제나, 누군가가 내게 주길 바라는 것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윤동주 시인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윤동주 시인을 알게 된 건 중학교 1학년 때다. 그의 얼굴은 너무 잘 생겼지만 슬퍼 보였다. 용돈으로 시집을 사서 그의 시를 읽고 또 읽었다. 무슨 의미인지 알려는 노력 따윈 하지 않았는데 그냥 외워지고 느껴졌다. 그리고 알았다. 그의 시에는 바람이 없다는 것을. 대표적인 시 ‘서시’에도 ‘별 헤는 밤’에도 ‘자화상’, ‘쉽게 쓰여진 시’, ‘길’ 등 셀 수 없는 수많은 시들 속에서 내가 찾은 건 ‘사랑’이었다. 그가 독립을 간절히 원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독립을 바라는 간절한 그 마음은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고 다짐하고 아픔을 품는 마음으로 드러났다. 그리움, 쓸쓸함,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는 마음, 연민, 안타까움, 후회, 분노, 저항, 반성, 부끄러움 속에 그 모든 게 녹아져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의 삶을 살았고 시를 써갔다. 사람들이 윤동주를 시인으로서만이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사랑하는 이유는 그와 시가 하나였기 때문이 아닐까.
‘바람’이란 글자에서 밖으로 향한 점을 거두어들이면 ‘버림’이 된다. 바라는 건 외부로 향하는 마음이 아니라 내 안으로 깊이 파고들어 사랑을 꽃피우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윤동주 시인처럼 누군가가 독립을 위해 싸워주길 바라는 게 아니라, 내가 그 독립을 위해 싸우는 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바람은 누군가가 들어주는 게 아니라, 내가 누군가의 바람이 될 수 있게 깊어져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진실한 바람은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