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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해 Apr 02. 2021

일곱해의 마지막

백석에게는 작고 가볍고 하얀 꿈 세가지가 있었다

 백석에게는 작고 가볍고 하얀 꿈 세 가지가 있었다.

 

 인생은 우리에게 왜 이다지도 혹독한 것인지, 우리의 삶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묻던 친구를 향해 백석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꿈이 있어 우리의 혹독한 인생은 간신히 버틸 만하지. 이따금 자작나무 사이를 거닐며 내 소박한 꿈들을 생각해. 입김을 불면 하늘로 날아갈 것처럼 작고 가볍고 하얀 꿈 들이지.”

 어떤 꿈들인지 친구가 물었다.


 “우선은 시집을 한 권 내고 싶었지. 제목은 사슴이면 좋겠고.”

 “시골학교 선생이 되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으면 싶었고.”

 “착한 아내와 함께 두메에서 농사지으며 책이나 읽고 살았으면 하지.”


 그게 다냐고 묻는 친구에게 백석은 그게 다라고 대답한다.

 김연수 소설가가 쓴 <<일곱 해의 마지막>>이라는 소설을 읽다가 만난 백석의 꿈 이야기다. 소설 속 이야기니까 백석이 실제로 친구와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지 아니면 그저 소설가의 상상 속 이야기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다가 내가 멈추어 선 곳은 바로 이곳, 백석의 꿈 이야기가 나오는 장면이다.      


 나는 백석의 그 세 가지 꿈 중에서 한 가지는 확실히 이루고 살고 있다. 바로 책이나 읽고 살았으면 한다는 꿈이다. 매일매일이 지극히 단조로운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그나마 한 번씩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며 깊은숨을 쉴 수 있는 순간들은 바로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책이나 읽는’ 시간들이다.

 책을 통해서 지금은 이미 다른 세상으로 가버린 불운한 시인 ‘백석’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으니 소설 속에서 ‘백석’이라는 한 인간을 다시 살려낸 작가 김연수에게 고마운 마음마저 드는 것이다. 작가가 ‘백석’이라는 시인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이런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고 끝내 소설 속에서 이미 고인이 된 그를 다시 살려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라는 ‘백석’ 이야기가 내 마음을 끄는 것은 그가 비단 시인이기 때문은 아니다. 시인도 아닌, 시를 잘 알지도 못하는, 그저 좋아하는 시 몇 편 외우고 다닐 뿐인 내가 ‘백석’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은 것은 그가 그저 작고 가볍고 하얀 꿈을 가지고 있었던 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시인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는 일이다. 그가 장사를 하던 사람이라도, 그가 농사를 짓던 농사꾼이라도, 얼굴에 시커먼 탄가루를 묻히고 탄광에서 일하던 광부라도 상관없이 나는 그를 좋아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누구라도 우리는 백석처럼 작고 소박한 꿈 세 가지 정도는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 꿈들이 아주 소중하기 때문이며, 그런 꿈이 있기에 우리는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만난 그는 매우 불운한 사람으로 비치고 있지만 그는 그가 말한 꿈 중에서 상당히 많은 부분을 이룬 것은 아닌가 한다.

 첫 번째로 들었던 시집을 내고 싶다던 꿈은 이루어진 것이다. 고급 종이를 사용하는 바람에 일백 부 밖에 찍지 못했고 가격도 이원이나 하는 점을 걱정하는 대목이 소설에 나오지만 그는 원했던 대로 <사슴>이라는 시집을 펴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는 동경 유학을 마치고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 노릇을 한 적도 있으니 두 번째 꿈도 이룬 셈이다. 마지막으로 착한 아내와 함께 두메에서 농사지으며 책이나 읽고 살았으면 하던 꿈이 문제다. 그가 평양 작가동맹 소속으로 글을 쓰다가 추방되어 삼수 협동농장에서 일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시절 착한 아내와 함께했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언젠가 그의 평전에 실린 그의 말년의 모습이 담긴 사진 속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는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미루어 짐작하면 그는 아내와 함께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문제는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책이나 읽으며’라는 꿈이다. 책이나 읽는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책을 마음대로 선택해서 읽는다는 뜻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내가 알고 싶은 이야기를 읽는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그는 작고 가볍고 하얀 꿈 세 가지 중에서 가장 마지막 꿈을 이루지 못해서 불행했던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나의 행복을 확인하는 일이 마음에 걸리지만 감염병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지극히 단조로운 생활에 대한 지루함으로 짜증이 나고 얼마간은 우울했던 마음이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슬며시 누그러진다.

 “책이나 읽으며‘ 지내는 지금의 내 생활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간절한 꿈이었을지 생각해본다.     

 백석의 꿈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의 꿈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지금의 꿈은 무엇인지 나 자신에게 다시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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