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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해 Apr 09. 2021

식탁의 기쁨

누군가가 '식탁으로 오세요. 저녁 다 됐어요!'라고 불러 준다면

                    

 이 책은 인류가 가장 오래도록 지속해온 행위인 먹는다는 것에 담긴 깊은 의미를 생각하는 인문학적 에세이다. 작가 애덤 고프닉은 파리의 레스토랑을 사랑한 뉴욕의 에세이스트다.

 맛있게 먹은 저녁을 떠올려 보라. 하루를 행복으로 채워주는 것은 맛있는 저녁의 존재가 아닐까. 작가는 먹는 걸 좋아한다고 말한다. 음식에서 핵심 주제는 무엇일까? 이 책은 미식의 철학과 둘러앉음의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의 원제는 Table Comes First다. 누군가가 ‘식탁으로 오세요. 저녁 다 됐어요!’라고 부른다고 상상해보라. 기쁘지 아니한가.

 

  식탁에 앉으며

 *레스토랑 - 레스토랑은 식사를 하는 곳이다. 매춘 굴 같은 곳은 아니지만 함께 섹스를 하고 싶은 사람을 데려가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레스토랑을 사랑한다.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는 술과 커피가 함께 한다. 그 두 가지를 함께 내지 않는 현대 프랑스의 식사는 상상하기 어렵다. 현대적인 식사는 열어주는 술과 닫는 커피 사이에 벌어지는 드라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이 둘 사이의 공간에 자리 잡는다. 알코올은 시야를 좁혀주는 약물이다. 와인 한 잔이면 세상천지가 데이트 상대와 식탁으로만 존재한다. 반면 카페인은 시야를 넓혀주는 약물이다. 블랙커피 몇 모금만 마시면 흥분해 카페 구석이 빛나 보이니, 공간 전체를 둘러보며 세상을 다시 손아귀에 넣을 준비를 한다.

 따라서 책을 읽을 때는 커피, 연애를 한 때는 와인이다.

 *레시피 - ‘레시피’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정확히 방법이 무엇인데? 라는 의미이다. 요즘은 어떤 레시피라도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다. 머스터드-샬롯 소스든 뵈프 아 라 모드(쇠고기조림)든 단어 몇 개만 쳐 넣으면 나온다. 이러한 존재의 위기는 요리책을 회고록, 참회록, 자리 표출 수단으로서의 레시피로 변화시켰다. 즉 요리책도 이야기를 강조하는 경향으로 흐르며 개성을 중시하는 문화이다.

 요리의 주요 요소는 최대한 많이 쓴 소금, 설탕, 지방이다. 몇 백 권의 요리책을 읽고 나면 모든 레시피와 요리책이 이처럼 이상적인 설탕-소금-포화지방의 조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려는 시도가 깔려있다고 느끼게 된다.


 음식을 고르며

 *취향 - 어떤 것을 더 좋아하느냐의 문제인 취향은 논쟁거리가 아니며 모든 취향은 경험을 통해서 얻는 것이다. 유행을 타지 않는 취향은 없다. 또한 맛은 음식의 배경이나 정보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다. 혀로 느끼는 맛이 머리로 품는 믿음에 밀린다는 말이다.

 *육식과 채식 - 셰프, 퍼거스 핸더슨은 고기를 사랑하는 남자로 동물의 내장을 먹자는 책 <<코부터 꼬리까지>>를 썼다. 셰프, 알랭 파사르는 채소와 사랑에 빠진다. 그에게는 광우병의 공포가 있었고 무엇보다 죽은 동물을 만지고 싶지 않았으며 동물 요리에 중압감과 비애를 느꼈다고 말한다. 죽은 동물을 먹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최고의 논거는 무엇일까? 우선 먹기 위해 동물을 죽이는데는 고통이 따른다는 것이다. 생명이라면 어떻게든 살고 싶어 함으로 쾌락을 위해 말 못하는 동물을 죽이는 것은 잔인하다는 것이고. 대규모 산업화 된 농장에서는 동물 사육 자체가 잔인하며 육류산업은 항생제와 다른 약품에 기대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윤리적인 육식의 방법은 없는 것일까. 하지만 동물과 그 새끼는 식탁에 오르기 위해 존재하고, 육식을 멈춘다고 해서 그것들이 더 나은 삶을 누리는 것도 아니다. 육식은 생태계 전체에 그렇듯 인간에게도 자연스럽다. 큰 물고기는 작은 물고기를 먹고, 사자는 가젤을 먹으며, 인간은 돼지를 먹는다.

 *지역주의 - 지역주의(Local Food)와 그 동반자인 제철주의(Seasonal Food)는 양심적인 애식가가 갖추어야할 덕목이다. 지역주의는 그 지역에서 가꾸고 기르는 것만 먹음으로써 친환경적인 농법을 장려하자는 것이다. 식탁에 올리기 위해 연료를 질질 흘려대며 지구 반대편에서 실어올 필요가 없으니 그만큼 환경 친화적이라는 주장이다.


 대화를 나누며

 *와인 - 프랑스의 인기 와인 샤토 마고, 부르고뉴, 로마네 콩티! 와인 애호가라면 한 번쯤 접해보고 싶은 이름들이다. 와인이 있기에 식탁 위의 대화가 더 풍성해지는 것은 아닐지.

  프랑스 와인의 명성을 사람들은 당연한 듯 받아들였다. 그러던 가운데 1976년, 파리에서 열린 블라인드 테스트(Blind Test)에서 미국산 카베르네 소비뇽이 프랑스산 보르도를 눌렀다. 와인이 말을 빚어내기 전에 말이 와인을 빚어낸다는 말이 있다. 와인에 관한 저술도 와인에 바치는 일련의 그럴싸한 찬사인 것이다. 와인에 바치는 입씨름거리인 찬사가 와인 문화를 예술의 아래 가장자리에 걸치도록 만들었다.

 진정한 와인 애호가는 취하지 않는다. 와인 저술 어디에도 마시는 첫 번째 이유가 취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병 딱지, 그럴싸한 이야기와 함께 과일 향 좋은 산타바바라 피노누아 한 잔은 식탁에 마주 앉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음식에 대해 쓸 때 무엇을 쓰는가 - 음식은 그저 이야기의 긴 줄기에 군데군데 두는 휴식지점으로 쓸 수 있다. 다음은 등장인물의 개성을 보여주기 위해 아주 특별한 음식을 만드는 장면을 쓰기도 한다. 또 등장인물이 먹거나 먹으려 하는 음식에 대해 길게 늘어놓기도 한다. 어떤 작가들은 결과뿐 아니라 과정 전체를 지면에 담기도 한다. 음식뿐 아니라 요리과정을 , 그것도 마늘의 양이며 다지는 방법, 팬에 올리는 때와 방법처럼 세부 사항까지 정확히 담아낸다. 요리는 오늘날 문학에서 1960-1970년대의 섹스 역할을 맡고 있다.


 식탁을 떠나며

 *다시 파리로 - 푸아그라(foie gras, 영어로 fat liver)와 브레스 닭(Bresse/지역이름, 프랑스의 명품 닭)을 누가 싫어하겠는가. 하지만 저자는 세계요리의 새로운 시대에 프랑스 요리를 걱정한다. 미슐랭 가이드에 반기를 들고 나온 '르 푸딩(Le Fooding)'이라는 집단의 음식가이드가 있는데 푸딩은 일종의 아방가르드 운동이다. 프랑스 음식은 이미 충분히 느리지만 느림(Slow)은 푸딩이 프랑스 요리에 바라는 최후의 요소다.

 그런데 근래에 이탈리아가 프랑스의 자리를 차지한 이유는 무엇일까? 올리브 나무와 싼 레드 와인, 파스타와 마늘, 토마토를 졸이고 치즈를 갈아 뿌리는 그 모든 것이 범접할 만한 느낌인 반면, 프랑스 요리는 비록 오래되었다고 해도 난이도가 뚜렷할 정도로 존재한다. 달걀의 흰자와 노른자를 가르고, 크림 앙글레즈를 만들고, 달걀흰자를 거품기로 올리고, 소스를 졸이고 밀가루와 버터처럼 평범한 재료로 진득하게 만드는 프랑스 시골 방식의 단순한 조리 행위의 난이도는 보통이거나 그보다 더 어렵다. 이탈리아 요리는 만드는 것이고, 프랑스 요리는 연마하는 것이다.

 저자는 프랑스 요리와 그 문명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빈 접시에도 취하고 싶다고 말한다.

 *식사의 끝 - 수플레, 티라미수, 레몬 타르트, 초콜릿 케이크, 사과 파이! 얼마나 유혹적인 이름들인가. 무언가 달콤한 것(Something Sweet)을 먹어야 식사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디저트에는 욕망이 배어있다. 가장 탐욕스러운 부분이다. 식사에서 꼭 먹을 필요가 없지만 가장 순수하고 예술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디저트는 조작된 음식이다. 생일 케이크는 지구에서 가장 반자연적인 음식이다.

 저자는 무언가 죄책감을 느낄 때 현미밥을 곁들인 연어와 브로콜리요리를 먹는데, 그러면 왠지 정화되는 느낌이든다고 말한다. 그는 1년 전 단 음식을 끊었다고 한다.


식탁의 기쁨이라는 이 두꺼운 책을 며칠에 걸쳐서 읽었다. 그 중 ‘와인’ 파트를 읽고 있던 날, 일간지에 ‘2013 빈티지 디아블로(Diablo) 까베르네 소비뇽’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1초에 한 병씩 팔리는 레전드 와인, ‘EXCELLENT’나 ‘OUTSTANDING’이라는 표현을 제치고 ‘EXCEPTIONAL’이라는 와인에 대한 최고의 찬사를 획득한 최상의 와인이라는 말에  와인을 사 마트에 갔다.

 

 더 여러 장의 책장을 넘길수록 맛있고 새로운 음식과 와인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런 음식과 문명을 접해볼 수 있는 여행 욕구도 동반 상승 중이다. 언젠가 미국에서 생활 할 때 푸드 채널을 자주 시청했었다. 비교적 사용하는 영어문장의 길이가 짧아서 영어를 익히는데도 도움이 되고, 현지 음식을 만드는 법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푸드 채널을 시청하다가 이상한 점 한 가지를 발견했다. 정말 맛있고 달콤하고 부드러운 음식을 맛볼 때의 출연자가 내는 소리가 인간이 성교 시에 내는 신음 소리와 너무나 닮았다는 점이다. 그럴 수 있지. 식욕과 성욕은 인간이 느끼는 가장 기본 욕구라는 점에서 같은 것이니까.

 

 먹는다는 것! 잘 먹는 다는 것은 우리의 건강을 위해 좋은 음식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음식을 먹으면서 느끼는 기쁨이 크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 생각해 본다. 물론 그 두 가지를 다 충족시킬 수 있는 음식이라면 더 바랄게 없겠지만........

 지방과 소금과 설탕은 우리에게 좋은 맛을 느끼게 해주지만 지나칠 경우 몸에는 좋지 않음을 생각하면 언젠가는 프랑스 요리를 제치고 우리의 한식이 세계 문명 속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게 되기를 꿈꾸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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