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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해 Oct 16. 2021

자전거, 인간의 삶을 바꾸다

자전거가 선사한 여성해방 이야기


 여성들은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다.


 ‘독일인의 성격을 바꿔놓은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독일 여성들일 것이다. 그녀들 자체가 급속도로 달라지고 있다. 말 그대로 진보 중이다. 10년 전만 해도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고 남편감을 찾고 싶은 독일 여성이라면, 절대로 자전거에 올라탈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요즘은 떼를 지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그 모습을 보고 노인들은 기가 차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만, 젊은 남성들은 오히려 그녀들과 나란히 달리기 위해 서둘러 따라잡는다.’

 1900년 이전에 나온 영국 소설 <<자전거를 탄 세 남자>>에 나오는 묘사다.

 몸에 꽉 끼는 코르셋, 무거운 치마, 잔뜩 부풀어 오른 속치마를 입고 있으면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을 텐데, 자전거를 탈 엄두를 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난생처음 자전거를 타고 새 지평을 향해 달리는 순간, 여성들이 느꼈을 해방감이 얼마나 대단했을지는 짐작이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두 바퀴 자전거가 여성들에게 허용된 것은 아니었다. 엘사처럼 바지를 입고 하이 휠 자전거를 타는 짓은 도덕적으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고 또 너무 위험했다. 그런데 로우 휠이 등장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자전거는 여성과 여성의 능력을 바라보는 시각을 급격히 바꾸어놓았다. 자전거 타는 여성은 독립된 존재이며 원하는 곳을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다. 자전거가 등장하기 전에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

 1894년 <<미니애폴리스 트리뷴>>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교육에 의해 비독립적인 존재로 키워졌던 프랑스 상류층 여성들은 결혼할 나이가 될 때까지 수도원에 들어갔다가, 집안에서 남편감이 정해지면 곧바로 결혼을 하고, 결혼과 동시에 온갖 사회적 책무에 시달렸다. 그런데 1896년에 파리에는 약 5000명의 여성 라이더들이 있었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1897년부터 여성 라이더들이 ‘바지 회의’를 열어서 반바지를 입고 모여 함께 식사하기도 했다.

 ‘신여성은 사는 것이 너무나 신나기 때문에 종아리가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 따위에는 신경 쓸 여력이 없다. 게다가 정말로 종아리가 예쁘다. 당연히 그녀는 자기 종아리가 예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당시 신여성들의 자의식이 충분히 넘쳐나는 <<여성 라이더>>라는 잡지에 실린 기사 내용이다.     


 자전거를 타는 일이 여성의 의복을 개혁하고, 나아가 남성의 종속적인 존재로 살아가던 여성들의 의식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반드시 헛간에 던져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첫째가 코르셋이다. 자전거를 타려면 숨을 자주 깊게 쉬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흉곽이 확장되어야 한다. 갑옷에 들어간 불행한 흉곽이 어떻게 확장되겠는가? 이 문제라면 더 이상의 말이 필요치 않다. 이 지옥 같은 고문 도구를 비판하는 마음은 자전거를 타든 안타든 이성적인 여성이라면 모두가 같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상체를 전혀 옥죄지 않아야만 가능하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헐렁하다고 해도 브래지어를 아예 하지 않을 때와 했을 때 실력 차이가 확연하다.’


 심지어 미국의 한 신문은 자전거가 젊은 여성의 결혼 가능성을 더 높인다고 칭찬했다. 자전거가 엄마보다 더 중매를 잘한다고 말이다. 2인용 자전거가 중매쟁이 역할을 톡톡히 했다. 사랑의 도피를 떠난 커플에게도 자전거는 요긴하게 쓰였는데 뉴저지에서는 두 남녀가 자전거를 타고 도망쳤기 때문에 잡히기 전에 무사히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2017년 자전거 탄생 200주년을 맞아 자전거의 역사를 한 권으로 정리한 책으로 자전거 전문가인 한스 에르하르트 레싱이 썼다.

 인류 역사상 가장 운이 좋은 발명품 중 하나인 달리는 기계를 세상에 선보인 사람은 독일의 산림관이었던 카를 폰 드라이스 남작이었다. 산림을 감독하는 책임자로 있던 그는 광활한 지역을 터벅거리며 걸어 다니는 것에 불편을 느끼고 ‘운전할 수 있는 달리는 기계’에 도전했다. 자전거의 선조, 두 바퀴로 달리는 기계(드라이지네)가 바로 그것이다. 핸들이 장착된 최초의 자전거였고, 페달은 없었고 발로 바닥을 차면서 움직였다. 그 후 바이시클과 트라이시클 등으로 바퀴를 추가해 균형을 잡고, 페달을 달고, 공기 타이어를 발명해 차체가 낮아도 승차감을 유지할 수 있게 되고, 꾸준히 발전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인생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균형을 잡으려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인생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는 그의 말에 공감하면서,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잘 잡기 위해서 열심히 페달을 밟을 것이다. 그래야 남성과 여성, 그 어느 쪽도 손해를 보거나 억울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균형 잡힌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자전거의 등장이 여러 가지로 인간의 삶을 변화시켰고, 특히 여성에게 해방을 선사했다는 대목은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다.

 건강과 환경을 생각해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양재천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데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나도 내 인생 자전거의 페달을 힘차게 밟아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자전거가 닿지 못할 곳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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