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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해 Nov 05. 2021

스승이 필요한 시간

삶을 바꾸는 두 가지 만남, 사사와 사숙


 맨토나 코치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는 요즘에 ‘스승’이라는 말을 들으면 조금은 낡은 표현으로 들리기도 한다.  우리 시대에는  진정한 스승이 사라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20대에 첫 스승을 만나서 새로운 삶에 눈을 떴다는 저자 홍승완은 이 책에서 사사(師事)와 사숙(私淑)이라는 두 가지 형태로 가르침을 받는 ‘스승’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사사는 직접 만나서 가르침을 받는 것을 말하고, 사숙은 직접 만나지는 못하고 책이나 작품 등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만나 가르침을 받는 것을 말한다. 이 책에는 많은 사사와 사숙의 관계가 소개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 나의 관심을 단 번에 사로잡은 사람들이 있다.     


 소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 헤르만 헤세 그리고 법정 스님이다.

 이 세 사람은 각자 몸담은 분야에서 독자적인 세계를 개척했던 사람들이다. 카잔차키스와 헤세는 20세기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이고, 법정 스님은 국내에서 가장 존경받는 수행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이 사랑한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자 프란치스코다.

 가톨릭 역사에서 가장 사랑스런 성인으로 불리는 프란치스코는 부유한 포목상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며 쾌락을 추구하는 삶을 살다가, 어느날 회심하여 과거와 정반대의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부잣집 아들’에서 ‘가난한 자’가 되어 “나는 청빈 부인과 결혼했다.”고 선언하고 청빈의 삶을 실천했다. 13세기 당시의 엄격한 계율과 복종을 강조하는 신앙이 아닌 그리스도가 전하는 가르침의 본질은 사랑이라고 확신하고 설교했다.

 그는 권위와 특권을 버리고 자발적 가난과 희생을 강조하고 가장 낮은 곳에서 병들고 빈곤한 이들과 함께 했다. 그러면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희망을 전하고 사랑을 실천했다고 한다.      

  카잔차키스와 헤세 그리고 법정은 프란치스코 성인을 영감의 샘이자 삶의 본보기로 흠모하고 사숙했던 것이다.


 법정은 종교가 달랐음에도 프란치스코 성인에게서 청빈과 간소한 삶의 모범을 배웠다고 공언했다. 뛰어난 소설가로 손꼽히는 카잔차키스와 헤세도 성 프란치스코를 이 세상 만물과 교감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가진 ‘위대한 시인’으로 존경하며, 그의 삶 자체가 아름답고 고귀한 한 편의 시라고 찬탄했다.

 물론 세 사람은 프란치스코를 실제로 만날 수 없었기에 그가 남긴 기록을 읽고 그가 머문 장소를 여행하고, 또 때로는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고 글을 쓰며 교감했다. 이렇게 사숙했기에 성인의 정신을 보다 자유롭게 받아들이고 창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또 직접 대면할 수 없었기에 더 큰 그리움으로 프란치스코에게 다가가고 주도적인 태도로 탐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숙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깊이 사숙한 스승들이 있다.

 영국의 의사이자 소설가인 A. J. 크로닌과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톨스토이와 국내 생존 작가인 길희성이 그들이다.

 30년 전 쯤 크로닌의 소설 <<천국의 열쇠>>를 읽었을 때, 나는 무척 감동을 받았다.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큰 행복감을 느껴본 적은 처음이었다. 책을 읽고도 렇게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햇살이 쏟아지는 남향 아파트 거실에 앉아서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뭔가 가슴이 충만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작품은 성경보다도 더 성경적이어서 나에게 오랫동안 마음의 양식이 되어주고 있다.

 길희성의 <<길은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른다>>라는 책도 오래도록 ‘존재의 본질’을 찾아서 탐구하는 나의 여정에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크로닌, 톨스토이 그리고 길희성 같은 분들을 만나 본적은 없지만, 그 스승들을 사숙했던 것이다.


 나는 그  스승들에게서  종교란 교리가 아니라 삶이라는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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