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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해 Sep 03. 2021

데카브리스트 부인들의 사랑

이정식의 시베리아 문학기행을 읽고


 낭만이 깃든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한반도의 북단에 인접한 러시아의 동쪽 관문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총길이 9288Km의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인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세계 모든 여행자들의 꿈이라고 한다.

 지인들과 함께 바이칼 호수도 보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러시아 대륙을 달리는 여행을 계획하고 있던 중 이정식 작가의 시베리아 문학기행이라는 책을 만났다.

 책을 읽다가 내가 멈추어서 서성거렸던 곳은 러시아의 데카브리스트의 아내들 이야기였다. 남편을 향한 그녀들의 사랑 이야기는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어떤 한 사람을 향한 사랑에 자기의 일생을 걸 수 있는 그녀들의 용기가 나를 멈추어 서게 한다.

 어쩌면 인생에서 바로 그런 지점에 ‘행복’이라는 놈이 살고 있지는 않을지 생각에 잠긴다. 이제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시베리아와 문학의 최초 연결 고리는 데카브리스트다.

 데카브리스트란 ‘12월에 혁명을 한 사람들’이란 의미로 러시아어로 12월인 ‘데카브리’에서 나온 말이다. 역사책에서는 흔히 ‘12월 당원’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1825년 12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원로원 광장에서 있었던 새 황제 (차르) 니콜라이 1세의 대관식에서 차르 체제의 전복과 농노 제도의 철폐 등을 통한 새로운 러시아의 건설을 기치로 혁명을 일으켰으나 당일 진압되어 사형 또는 시베리아 유배형에 처해진 러시아 귀족과 청년 장교들을 지칭한다.


 당시 600여 명이 체포되었는데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진 데카브리스트 116명 가운데 기혼자는 21명이었다. 이 가운데 11명의 부인이 남편과 운명을 같이하기로 결심하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그 험한 길을 떠났다.     

 남편들이 유배형에 처해진 후 그 부인들은 당국으로부터 이혼하고 재가할 것을 종용받았다. 당시로는 유배형에 처해진 국사범인 남편과 다시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따라가겠다고 나서는 부인들이 생기자 황제의 지시에 따라 당국은 이들에게 가혹한 조건을 내걸었다.

 그 조건들은 시베리아로 남편을 따라가는 여인은 귀족 신분으로 누렸던 모든 권리를 포기해야 하며, 시베리아에서 정치범 남편과의 결혼 생활 중에 낳은 아이는 농노로 등재하고 황제의 소유가 되며, 귀중품이나 돈을 지니는 것은 허용되지 않으며, 시베리아에서는 데려간 하녀나 농노를 부릴 권리를 박탈하고, 이후 유럽 러시아로 되돌아오는 것은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등의 엄청난 것이었다.

 이처럼 가혹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11명의 부인은 각기 출발 시점은 달랐지만, 마차로도 수십 일이 걸리는 험한 여정 끝에 시베리아에서 중노동형에 처해진 남편들을 찾아갔다고 한다.      


 당국의 이혼 종용에도 불구하고 동토의 땅 시베리아에 절망에 빠진 종신 유형수 남편을 찾아온 그 여인들은 그야말로 ‘천사’였다. 부인들이 온 후 남편들은 삶의 희망을 되찾았다.

 척박하고 추운 시베리아 땅에서 부인들은 다른 정치범들도 가족처럼 돌보았고, 모범적이고 헌신적인 삶을 살아 현지 주민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귀족으로서 호화로운 생활을 해 온 부인들이지만 이곳에서는 음식이며 빨래며, 페치카에 불을 지피는 일 등 모든 것을 직접 했다. 이들은 자신의 남편뿐만 아니라 함께 있는 다른 데카브리스트 유형수들도 헌신적으로 도왔는데 음식을 만들어 주고 옷을 수선해 주며 가족들과 연락을 취해주었다. 주민들에게도 귀족 티를 내지 않고 겸손하고 친절한 태도로 대해서 존경을 받았다.


  데카브리스트의 부인들이 귀족으로서의 모든 특권을 버리고 이곳에 와 남편들을 보살피며 평생을 시베리아에서 보낸 일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는 시베리아의 전설이 되었다고 한다.     

 데카브리스트와 그 아내들의 사랑 이야기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오늘 그 사랑이야기를 듣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준다.

 정치범으로 종신 유배형을 받고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시베리아 땅으로 떠난 남편을 따라나선 여인들, 귀족으로써 누리던 모든 특권을 포기하고 오로지 남편을 돌보기 위해서 먼 길을 떠났던 여인들의 이야기가 참 귀하게 느껴진다.

 그 부인들은 남편들이 일하던 은광 근처의 허름한 나무집을 사들여 남편들을 뒷바라지했는데 그 집이라는 것이 얼마나 작고 형편없는 집이었는지 한쪽 벽에 머리를 두고 누우면 발이 문에 닿았고 겨울 아침에 눈을 뜨면 통나무 틈새에 머리카락이 얼어붙어 있었다고 한다.     


 남녀 간의 사랑이나 결혼이 시대를 막론하고 충분히 계산적이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요즘 시대는 그 정도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와중에도 어느 시대에나 진정한 사랑, 올곧은 사랑, 뜨거운 사랑, 희생적인 사랑 같은 것은 있는 법이다.


 나는 데카브리스트 부인들의 그런 따뜻한 사랑이 어디로부터 나온 것일까 생각해본다.

 인류가 오랜 세월 유지해 오고 있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갖는 힘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남편’이라는 한 남자에 대한 애정일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그들의 마음속 깊이 뿌리내린 종교적 신앙심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어느 쪽이든 간에 참으로 가치 있고 소중한 마음인 것만은 분명하다.     


 일생을 살면서 철저히 계산해서 손해 보지 않고 사는 것도 잘 사는 일이 되겠지만 누군가를 위해 소박한 사랑과 따뜻한 정을 쏟아주며 손해 보는 듯 살아가는 것도 아주 잘 사는 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200년 전쯤에 러시아에서 일어났던 데카브리스트들과 그 아내들의 사랑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은 우리들의 내면에 그런 진실한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도 거뜬히 이겨낸 데카브리스트 아내들의 사랑이야기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을 뜨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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