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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해 Dec 18. 2021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이야기 좀 하실까요?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박준 시인의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에 실려 있는 <고아>라는 제목의 글 마지막 부분이다.

 독자가 책을 고를 때, 그 책의 제목이 가지는 힘은 매우 크다. 이 책도 이미 그 제목이 사람들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함께 울어보지 않으시겠어요?’라며 독자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것이다.  지금 막 울고 싶었거나, 언젠가 소리 없이 홀로 울어본 적이 있는 사람들 또는 시간나면 한 번 실컷 울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한 사람들에게 작가가 ‘이야기 좀 하실까요?’하고 손을 내미는 느낌은 나만의 것일까.


 이 책은 시인이 쓴 산문집이다.

 읽어보니 정말 시인이 쓴 산문집이 맞다. 시의 향기가 폴폴 풍기는 산문들이다. 아주 작고 세밀한 마음의 일렁거림을 어찌 그리 잘 표현하고 있는지 책을 읽어나가는 중간 중간 혼잣말을 하게 된다.

 ‘아, 그러네. 시인이 쓴 산문집이네.’     


 <알맞은 시절>이라는 작품에서 작가는 ‘여자는 뇌졸중 후유증을 앓고 있는 듯 보였다. 몸의 절반은 봄 같았고 남은 절반은 겨울 같았다. 더듬거리는 말로 남자에게 이것저것을 말했고 남자는 그녀의 말을 곧잘 따랐다.’고 쓴다.     


 <그해 인천>이라는 작품에서는

‘그해 너의 앞에 서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내 입속에 내가 넘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라고 썼다.


 이 책에 실린 작품 중에서 내 마음을 가장 사로잡은 <아침밥> 전문을 소개한다.     


 ‘나는 죽은 사람들이 좋다. 죽은 사람들이 괜히 좋아지는 것도 병이라면 병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사람의 수보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수가 더 많으니 이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찌되었든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나보다 먼저 죽은 사람들과 모두 함께 다시 태어나고 싶다. 대신 이번에는 내가 먼저 죽고 싶다. 내가 먼저 죽어서 그들 때문에 슬퍼했던 마음들을 되갚아주고 싶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면서부터 눈물을 참다가 더운 육개장에 소주를 마시고 진미채에 맥주를 마시고 허정허정 집으로 들어가는 기분, 그리고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서야 터져 나오던 눈물을 그들에게도 되돌려주고 싶다.

 그렇게 울다가 잠들었다가 다시 깨어난 아침, 부은 눈과 여전히 아픈 마음과 입맛은 없지만 그래도 무엇을 좀 먹어야지 하면서 입안으로 욱여넣는 밥, 그 따듯한 밥 한 숟가락을 그들에게 먹여보고 싶다.’     


 사랑하는 이를, 가족을, 또는 혈육을 죽음이라는 사건을 겪으며 떠나보낸 이들의 마음을 시인은 이렇게 표현한다.      

  

  '죽음과 밥’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오랫동안 고민해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이 <아침밥>이라는 글이 참 소중하게 느껴진다.

 대신 이번에는 내가 먼저 죽고 싶다라거나, 내가 먼저 죽어서 그들 때문에 슬퍼했던 마음들을 되갚아주고 싶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먼저 떠난 사람들은 참 나쁜 사람들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부은 눈과 여전히 아픈 마음과 입맛은 없지만 그래도 무엇을 좀 먹어야지 하면서 입안으로 욱여넣는 밥, 그 따듯한 밥 한 숟가락을 그들에게 먹여보고 싶다라는 대목에서 나는 잠시 멈추어 선다.

 미리 떠나버린 사람에게 느끼는 양가의 감정을 너무 잘 드러내는 참 좋은 시 같은 산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오랜 만에 좋은 문장들을 만나서 기뻤다.

 박준 시인의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라는 책이 요즘 글 쓰는 일도 얼마간은 시들해져 있었던 내 마음에 한줄기 빗줄기처럼 다가와 주었다. 좋은 문장과 글을 쓰고 싶다는 열정을 다시 살려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16만부가 팔렸다는 산문집이 가지고 있는 힘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어느 인터뷰에서 박준 시인은 말했다. 본인에게 시를 쓰는 일이란 ‘울지 않으려고 부르는 노래’같은 것이라고 했다.


 시든 산문이든, 글을 쓴다는 것은 우리의 내면을 치유하고 새 힘을 얻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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