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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해 Dec 31. 2021

키친

당신의 상처를 기워드립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을 읽고-

    

 내 곁에 존재하였던 가족이란 것이, 세월을 두고 한 명 두 명 줄어들어 혼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이 소설의 주인공 미카게는 부모가 젊은 나이에 나란히 죽었고, 할머니와 단 둘이 살다가 할머니마저 떠나고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그녀는 매일 부엌에서 잠들었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부엌이다.

 그것이 어디에 있든, 어떤 모양이든, 부엌이기만 하면,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장소이기만 하면 나는 고통스럽지 않다. 기능을 잘 살려 오랜 세월 손때가 묻도록 사용한 부엌이라면 더욱 좋다. '

 

 그녀는 그렇게 혼자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부엌에 있음으로써 위로를 받고 언젠가 죽을 때가 오면 부엌에서 숨을 거두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기력도 없고, 밤낮 부엌에서 잠을 잤더니 온몸 마디마디가 아프고, 그런 구름진 봄날의 오후였다. 끝도 없이 떠오르는 성가신 일들을 생각하며 절망하여 뒹굴뒹굴 자고 있는데, 기적이 찹쌀 경단처럼 찾아온 것이다.

 할머니의 장례식을 열심히 도와주던 한 살 아래의 청년, 다나베 유이치는 할머니가 단골로 다니던 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이었다. 그 날 오후 느닷없이 현관 벨이 울렸고, 다나베 유이치가 찾아왔다.

 “전할 말이 있어서, 어머니랑 의논했는데, 당분간 우리 집에 와 있지 않겠어요?”

그녀는 그렇게 다나베 유이치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그의 집 부엌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마룻바닥에 깔린 깔끔한 매트, 필요한 최소한의 부엌 용품들이 반듯하게 걸려 있다. 오랜 세월 길들여진 도구들, 실버스톤 프라이팬과 독일제 껍질 벗기기 칼도 있었다. 조그만 형광등 불빛을 받으며 얌전하게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식기류, 빛나는 유리 잔, 언뜻 보면 하나도 일관성이 없는데, 묘하게도 품위 있는 것들뿐이었다. 특별한 요리를 만들기 위한.... 얘를 들어 사발, 그라탕 접시, 큰 접시, 뚜껑 달린 맥주 조끼, 그런 것들도 보기 좋았다. 조그만 냉장고도, 유이치가 괜찮다고 하여, 열어보니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넣어놓은 채 방치된 식품은 없었다. 음음, 고개를 끄덕거리며 둘러보았다. 멋진 부엌이었다.

 

그녀는, 그 부엌을 한눈에 사랑하게 되었다.’     

 

어느 한 아침에 그녀는 바로 그 부엌에서 계란죽과 오이 샐러드를 만들었고, 유이치의 어머니가 신나게 먹어주었다.

 유이치와 부엌에서 함께하는 그 시간이 굉장한 일인 것 같기도 하고, 별 일 아닌 것 같기도 하였다. 아무튼 그녀는 말로 표현하자면 사라져버리는 담담한 감동을 가슴에 간직한다.     

 키친(부엌)을 그렇게도 사랑하는 여인이라니 왠지 사랑스러운 느낌이 든다.

 

유이치의 어머니가 사고를 당해 갑자기 죽었다. 유이치는 좍좍 쏟아지는 빗속에 서 있는 버드나무처럼 풀이 죽어 있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도 그녀는 유이치를 위해서 음식을 만들어 준다. 그녀는 두 시간이나 공을 들여 저녁 식사를 준비하였다. 유이치는 그 동안 텔레비전도 보고 감자 껍질을 벗기기도 하였다.

 이 세상에 피붙이라곤 아무도 없이 달랑 혼자인 유이치와 미카게, 그 두 사람에게 부엌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샐러드, 파이, 스튜, 고로케, 튀김 두부, 나물, 당면으로 속을 넣은 만두, 닭살 무침, 탕수육, 찐만두.....등등

 

그 부엌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따뜻한 저녁식사란 그런 두 사람에게 음식 이상의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어디 유이치와 미카게, 그 두 사람에게 뿐이겠는가?

 부엌에서 누군가가 나를 위해 만들어주는 따뜻한 밥이며 국 한 그릇이 가지는 의미는 말이나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주는 일일 것이다.

 가족을 잃어버린 상처를 싸매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말이나 글로 하는 위로가 아니라 따뜻한 음식 한 그릇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음식은 사랑이니까.     

 

 유명한 요리선생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던 미카게는 어느 날 다른 도시로 출장을 가게 되는데 그 곳에서 아주 맛있는 돈까스 덮밥을 먹게 된다. 고기의 질하며, 소스의 맛하며, 계란과 양파를 익힌 정도하며, 고실고실하게 지은 밥하며, 어디 흠잡을 데가 없이 맛있는 돈까스를 먹다가 아아, 유이치가 같이 있다면, 하고 생각한 순간 충동적으로 말을 뱉고 만다. “아저씨, 포장도 되나요? 일인분 더 만들어 주시겠어요?”

 그녀는 깊은 밤, 아직 따끈한 돈까스 덮밥 팩을 들고 택시를 잡아타고 유이치가 있는 도지 달려간다. 택시는 그 도시를 향해 한밤을 달렸다.

 그녀와 돈까스 덮밥을 태우고.


 소설 <<키친>>은 1988년에 출간되어 지금까지 200만 부가 넘게 판매되었으며, 작가인 요시모토 바나나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 주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상처를 안게 된다. 번역자인 김난주의 해설에 따르면 오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키친>>을 비롯한 그녀의 초기 작품들은 행복한 ‘상처깁기’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깁다’라는 단어는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그 뜻은 떨어지거나 해어진 곳에 다른 조각을 대거나 또는 그대로 꿰매는 행위를 말한다. ‘깁다’라고 하니 제일 먼저 옛날에 양말에 구멍이 나면 기워서 신었던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그렇게 양말을 꿰매서 기워놓으면 새 것 같지는 않지만, 꿰맨 흔적은 좀 남지만 그런대로 양말의 기능을 할 수 있다.

 

상처받아 해어진 가슴을 깁는 일은 무엇으로 할 수 있을 것인지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단 하나의 혈친인 할머니를 잃은 여자 주인공 미카게에게 살며시 다가가는 유이치. 유이치가 자기 엄마를 잃자 반대로 이번에는 미카게가 유이치에게 다가간다. 작가는 비슷한 상처를 껴안고 있는 자들의 교감에서 태어난 새로운 사랑이야기를 ‘키친’이라는 장소 안에 슬며시 풀어놓는다.     

  

 유이치는 출장 중이었던 미카게가 한 밤 중에 택시를 타고 달려가져다준 돈까스 덮밥을 맛있게 먹었고, 그는 다시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던 도시에서 삶의 현장인 도쿄로 돌아온다.

 미카게와 유이치의 상처가 구멍 난 양말을 꿰매는 것처럼 예쁘게 기워지고 있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스해지는 부엌에 관한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아궁이에 불을 때가며 가마솥에 밤을 넣은 찰밥을 지어 먹던 할머니의 부엌도 생각나고, 야밤에도 입이 궁금한 식구들을 위해 노릇노릇하게 구운 인절미와 감주를 내오던 엄마의 부엌도 생각난다. 어릴 때 나는 엄마의 부엌에서는 으레 그런 맛있는 음식들이 저절로 나오는 것인 줄 알았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생각만 해도 내 맘 속에 따뜻한 화로 하나 들여놓은 둣 행복하다.

 

 지금 부엌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다. 나도 우리 할머니나 엄마처럼 내 가족들에게 따뜻한 기억이 되어줄 그런 음식이 나오는 부엌을 가지고 싶다.

 부엌에는 아궁이가 있고 아궁이는 따뜻하다. 아궁이의 그 따뜻함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마음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치유되는 것은 아닐까.     

 

 매식이 늘어나고 부엌의 기능이 점점 축소되어가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부엌’이 가지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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