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란 놈, 그놈 쥐한테는 염라대왕이거든."
원수가 맥을 못추는데 왜 신이 나지 않겠느냐.
by
은해
Mar 17. 2023
“읍내에 내가 아는 늙은 내외가 살고 있었지. 그 늙은 내외는 고양이 한 마리를 자식같이 기르고 있었단 말일세. 그래 설 명절이 되어서 주책없는 늙은이들이 인절미를 먹였는데 그놈이 그만 체했던 모양이라, 이놈이 죽는다구 야단이 났단 말이야.
이때 쥐 한 마리가 보르르 기어나왔거든. 고양이 옆을 겁도 없이 맴도는데 하 참 나 우스워서, 할망구는 작대기로 휘두르면서, 이놈 숭악한 놈아 아직 명이 붙어 있는데!하고 소리치면서 쥐를 쫓더구먼.
아 지당한 일 아닌가? 원수가 맥을 못 추는데 왜 신이 나지 않겠느냐.”
최치수의 부탁으로 참판댁 종인 삼수를 거느리고 강포수를 찾아 나선 몰락한 양반 김평산의 말이다. 그는 연달아 이렇게 말한다.
“짐승만 그렇겠느냐, 사람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지. 지금 세도 부리는 양반 놈들 꼴이 바로 그 고양이 꼴이며, 쥐새낀들 고양이를 겁내고만 살라는 법도 없지.”
-토지1부1권 392쪽에서 인용/마로니에북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얼마 전에 본 영화 속 인물, 문동은이 생각났다.
<더 글로리>!
김은숙 작가가 쓴 넷플릭스
드라마로 학교폭력을 소재로 하고 있다. 드라마 초반에 나오는 폭력의 수위가 너무 높아서 보면서도 너무 불편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불편하지만, 우리의 현실 속에 엄연히 존재한다는 학교폭력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라고 우리 앞에 내밀어준 작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작가라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어느 한 귀퉁이가 병들어 곪아터지고 있는데 못 본 척 지나치지 않고, ‘여기 좀 보세요. 큰일 났어요.’하고 외쳐주는 것이다. 그런 것이 바로 ‘작가 정신’ 아닐까?
문학이란 비유와 상징을 통해서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보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책을 읽으면서 많은 좋은 문장들을 만나보았지만, 김평산의 대사에 나오는 위의 문장들은 정말 훌륭하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어찌 이보다 더 잘 나타낼 수 있을까?
그 비유가 아주 절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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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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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Brunch Book
소설 토지에서 만난 삶의 화두
01
"명을 인력으로 하는가?"
02
"서희의 마음이 자란 것이다"
03
"고양이란 놈, 그놈 쥐한테는 염라대왕이거든."
04
"다 음양의 이치 아니겄소?"
05
"상놈이 우찌 양반을 때릴 것고."
소설 토지에서 만난 삶의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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