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야속하지-
‘야속한 사람, 옛날에는 어무니가 있어서 그랬고, 법으루 만낸 사램이 있어서 그랬고 지, 지금은 자식 낳아준 사램이 있어서 그렇고, 끝까지 남남이고나, 원망하는 거는 아니지마는 그이는 나를 남으로 치부하는 거만은 틀림이 없이니께. 야속하고 그, 그렇지마는 내 이녁 맘 알기사 알거마는, 그래도 야속하지.’
토지 1부3권 320쪽에서 인용/ 마로니에북스
월선은 가끔 찾아오는 용이에게 야속한 마음이 든다.
처녀 총각 적에는 용이 어머니가 식음을 전폐하고 반대하니 결혼 할 수 없었다. 그 다음에는 법으로 만난 강청댁이 있었으니 또 만나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던 ‘월선과 용이의 러브라인’은 소설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안타까운 사랑이다.
하지만 아무리 애절한 사랑이라 할지라도 법으로 맺어진, 예로 맺어진 혼인 앞에서는 힘을 잃는다.
우리 사회가 인정해주고, 응원해주고, 또 보호해주는 법으로 만난 사랑 앞에서는 한 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
용의 처 강청댁도 언제나 용의 마음을 온통 차지하고 있던 월선이에게 엄청난 질투를 느끼면서도, 자기는 법으로 만난 사람이고 월선은 뜬계집이라며 위안을 삼았었다.
이 대목에서 ‘법으로 만난 사람’이라는 말에 ‘힘’이 느껴진다.
우리나라는 법률혼주의를 택하고 있다. 법률상의 절차에 따라 혼인의 의사를 표시함으로써 성립되는 혼인주의를 말한다. 혼인신고에 의하여 혼인이 성립된다는 점이 사실혼주의(事實婚主義)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그래서 우리의 법도 법률혼을 우선적으로 보호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용이 중요하지 형식이 뭐가 중요하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결혼’이라는 그 제도가 가지고 있는 힘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크고 강하다.
법으로 만난 사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