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기야 버기야 할 것도 없일긴데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

by 은해


‘천지만물 어느 것 하나 멩(命)이 없는 거는 없는 법인데 멩이 있고보믄 죽을 날도 있기 매련 아니가, 태산이라꼬 무너질 날이 없이까. 그거를 생각하믄 어기야버기야 할 것도 없일긴데.....’

토지 1부4권 315쪽에서 인용/ 마로니에북스


소설에서 다른 지방까지 소문이 난 대목수 윤보아재의 대사다. 계집도 자식도 없이 혈혈단신으로 어디에도 속한 곳 없이 방랑하며 자유롭게 일하는 인물이다. 성격이 곧고 직설적이며, 의협심이 강해서 최참판댁 재산을 차지하고 있던 조준구를 습격하는 의거에 앞장서기도 하고 끝내는 의병으로 싸우다가 죽는다.


세상을 살다보면 확실하지 않은 것들 투성이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죽음’을 생각하거나 입 밖으로 꺼내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죽음’만큼 우리 인간을 절망에 빠뜨리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것이 살아가는 것인지 죽어가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죽음’은 모든 사람의 스케줄표 위에 놓여있다.


하지만 인생의 마지막 지점에 그 ‘죽음’이 있기에 삶은 아름답고, 소중하고, 찬란하게 빛이 나는 것이다.

삶과 죽음은 그렇게 손등과 손바닥처럼 딱 붙어있다.


살면서 관계에서 오는 갈등으로 너무 괴롭다고 느낄 때, ‘죽음’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좀 더 너그러워질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내 앞에 놓인 하루를 보다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 앞에 놓인 시간을 더 잘 쓸 수 있을 것이다.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윤보 아재의 말처럼 ‘죽음’을 생각하면 아등바등 할 것도 없다.


그저 뜨겁게 사랑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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