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이름은 여자가 지켜내야

by 은해

그녀의 이름은 ‘조상댁’이었다.

일제 치하를 살던 시절에 조 씨 성을 가진 우리 할아버지에게 시집을 왔던 그녀는 ‘조상댁’이라고 불리었다. 동네 사람들이 그녀에게 볼 일이 있을 때면 우리 집 대문을 들어서면서 ‘조상댁이요.’하고 부르는 것을 자주 들었다. 이미 해방이 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도 많은 세월이 흘렀던 때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녀를 조상댁이라고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평생 이름 없이 살아온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들을 생각한다. 그녀들은 자기의 이름을 잊고 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농사꾼의 아내로 살면서 당신 이름을 쓸 일이 거의 없었다. 할아버지는 상당한 부농이었지만 그녀는 당신 이름으로 된 밭뙈기 하나 없이 살았으니 문서에 이름을 올릴 일도 없었고 아무도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그녀는 동네 사람들에게는 ‘조상 댁’이었고 집에서는 어머니, 할머니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의 이름을 가슴속에 늘 간직하고 있었다. 여름밤 저녁상을 치우고 난 한가한 시간에 손녀인 나와 함께 모깃불을 피워 놓고 평상에 누워서 밤하늘에 있는 별을 쳐다보는 시간에 할머니는 당신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보았던 것일까. 이따금 어린 손녀에게 할머니 이름은 ‘김 절시’라고 꼭 기억하라고 말했다. 한 번 씩은 나에게 따라 해 보라고 시키기도 했다. ‘김 절시!’라고. 그녀는 자기의 이름을 잊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본명은 Magdalena Carmen Frieda Kahlo였다.

소마 미술관에서 만나게 된 그녀의 작품과 함께 그녀의 삶을 더듬어 보다가 그녀가 이름의 철자를 바꾸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프리다는 디에고를 만나 사랑했고, 결혼했고, 이혼했고, 다시 재결합했다. 또 그녀가 화가의 길을 가는데 디에고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남편인 디에고와 함께 열렬한 공산당원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그녀는 그녀의 이름 ‘Frieda’를 남편 ‘Diego’와 글자 수를 맞추기 위해 ‘Frida’로 바꾸었다. 자기 이름의 글자 수를 남편과 같게 맞추면서 살던 그 시절 그녀는 정말 행복했을까.

그녀의 작품과 그녀의 아픔을 함께 들여다보다가 ‘목걸이를 한 자화상’이라는 작품 앞에 걸음을 멈춘다. 결혼 생활 중 디에고와 함께 디트로이트에 머물면서 완성한 이 작품은 중후하면서도 아름다운 화풍으로 그려진 것이지만 가느다란 목에 무겁게 걸려있는 골동품 보석 목걸이는 쉽사리 떠나보내지 못하는 지난 일들을 말해 주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그림에 들어 있는 서명이 ‘Frida'가 아니라 ’Frieda'로 되어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디에고의 이름 글자 수와 맞추었다가 부부 사이에 거리를 두고 독립을 하고 싶다는 속마음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여자가 사랑에 빠졌을 때는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내어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지만 역시 ‘나’는 ‘나’인 것이다. 그 ‘나’의 이름을 다시 찾아 썼던 프리다의 마음이 전해져 온다.

여자의 이름은 여자가 지켜내야 하는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소중하다.

서양에서는 여자들이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따르고 그 남편의 성에 따라 불린다. 한국에서는 여자가 결혼을 해도 문서에는 자기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지만 ‘김실이, 이실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결혼 후에 친정에 가면 몇몇 나이 드신 친척 어른들은 나를 ‘김실아’하고 불렀다. 이때 실이라는 말은 성(姓)을 뜻한다. 결혼 후 자기 이름을 유지하기는 하지만 그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남편의 성을 붙인다. 오호 애재라. 내가 낳은 내 아들인데··· 바로 그것, 아들을 낳아야 집안의 대를 이을 수 있다는 그것 때문에 대한민국 땅에서 여자들이 겪어야 했던 뼈아픈 역사를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먹는 것, 입는 것, 교육받는 것에서 차별을 받았고 심지어 어떤 경우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태어나보지도 못하고 사라져 버리는 일도 많았다. 그래서 일부 여성 운동가들은 아버지의 성과 어머니의 성을 모두 이름에 넣어서 ‘김, 조’ 또는 ‘오, 한’등의 성을 쓰기도 한다. 서양에서도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따른다는 관습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기의 이름을 유지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여자의 이름을 지킨다는 것은 자기를 지키는 일이다.

아무리 결혼을 하고 누구의 아내가 되고 누구의 어머니가 되더라도 자기의 이름은 지켜야 하는 것이다. 자기의 이름으로 사회적인 인정을 얻는다는 것은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요즈음엔 자기의 이름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녀들이 많아졌다. 그녀들의 깨어있는 의식과 힘겨운 투쟁에 응원을 보낸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을 하고 이름을 잃어버린 여자가 아직도 있다면 그 이름을 찾으라고 외치고 싶다. 그녀들의 이름은 그녀들이 지켜야 하는 것이다.


여자의 이름은 아직도 지켜내야만 지켜지는 것이라서.

이전 06화분홍감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