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꼴’ 또는 ‘얼골’은 얼굴의 방언이다. 여기서 ‘얼’은 정신(精神)을 뜻하는 우리말로 넋이라고도 한다. '골’은 꼴(모양)의 옛말로 사물의 생김새나 됨됨이를 나타내는 말이다. 즉 보이지 않는 우리 내면의 정신과 마음을 밖으로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 바로 얼굴인 것이다.
흔히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한다. 40세 이전은 아직 미성숙한 시기로 환경이나 주변의 영향으로부터 마음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내면이 견고하지 않다. 그러나 불혹(不惑)이 넘으면 세상도 알고 사람의 악함도 알므로, 그 영향에 좌지우지되지 않을 정도로 자기 처신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40이 넘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말은 이런 가정 하에 나온 말일 것이다.
얼굴의 미모로 매력을 발산하는 것은 젊었을 때는 당연할 것 같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며 탄력성이 떨어지고 주름이 늘어가면 젊었을 때의 미모는 시들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미의 기준이 얼굴이 아니라 내적으로 풍기는 분위기나 그만의 독특한 개성 같은 것으로 바뀌게 된다. 그런데 요즘은 나이가 들어도 얼굴을 포기할 수 없는 분들이 많아 성형외과가 문정성시라나 뭐라나. 젊게 살며 자신을 가꾸는 것이 미덕이 된 세상이라 뭐라 할 말은 아니지만 말이다, 또, ‘내 돈 내산’¹을 주장하며 내면과 외모를 함께 가꾸는 게 뭐가 잘못이냐고 화를 내는 분들이 많을 것 같긴 하다. 그래도 내면을 다듬어가야 할 나이에 외모를 우선 가꾸는 걸 보면 천년만년 젊을 건가? 싶은 생각과 내가 이상한가? 하는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하게 된다.
내가 아는 한 지인은 결혼생활이 순탄하지 않았다. 시작부터 꼬인 데다 결혼생활 내내 무능한 남편 대신 가계를 이끌어가야 했다. 그는 젊은 시절 늘 웃는 얼굴로 누구보다 따뜻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표정도 온화했다. 나도 오래전 그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데, 어려운 이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치 못하고 기꺼이 손을 내밀어 도움을 주곤 했다. 그런데 그는 결혼 후 남편 대신 가정경졔를 책임지며 허덕였는데, 모임 때마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비하했다. 자기는 차가 없으니 모임 장소는 무조건 자기 동네로 해야 한다고 우기는가 하면, 회원들이 남편이나 아이들 이야기를 하면 표정관리를 못한 채 얼굴이 굳어지기 일쑤였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던 회원들은 점차 그를 부담스러워했다. 자신을 비하하는 그의 말은 상대적으로 비굴해 보이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말로 들리기도 했다. 어느 순간 그의 얼굴은 화가 나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언젠가 모임에서 한 회원이 ‘화난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잔뜩 골이 난 목소리로 ‘그 인간 때문’이라고 했다. 그 지인을 보며, 그의 얼굴을 변하게 한 이유가 남편이 전부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지인 역시 젊었을 때부터 인생에 평지풍파(平地風波)가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까칠하고 한 번씩 말을 할 때 보면 드세보였다. 그 역시 모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잘하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친한 분과 얘기하며 생활비가 없어 쩔쩔 맨 적도 많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어떻게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으면 어떻게 조용히 죽을까 생각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가 평탄하지 않은 것은 알았지만 그렇게 힘든 상황인 것은 눈치 채지 못했었다. 그는 지금도 자신의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남 얘기를 하지도 않는다. 가끔 가족에 대해 얘기할 때는 좋은 부분을 부각해서 이야기했고, 맘에 들지 않은 부분은 객관화시켜 말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사람이 지나치게 긍정적인 거 아냐?‘라는 생각도 했었다. 지금도 그의 형편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래도 그의 얼굴은 평안해 보이고, 뭔지 모르게 여유로워 보인다. 그런 그를 보며, ’저 사람처럼 늙고 싶다 ‘는 남모르는 바람을 가지게 되었다. 남다른 산전수전을 다 겪고 지금도 그것은 진행 중이지만, 여전히 긍정적이고 맑은 그 사람의 얼굴처럼 늙어가고 싶은 것이다.
우리 앞에 펼쳐진 삶은 우리의 선택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행복일 수도 있고, 불행일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을 했든 미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누구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지나치게 원망하거나 거부하지 않는다. 그저 숙명으로 받아들여 묵묵히 살아내거나, 전화위복으로 바꾸겠다는 희망으로 상황을 극복하고자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간다. 그 안에서 세월이 가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고 황혼을 맞이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그리고 ’ 인생‘을 논할 나이쯤이 되면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의 ’ 누님‘처럼 돌아와 거울 앞에 앉아 자신을 마주하고 자신과의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가수 노사연의 노래처럼 ’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결론은 우리의 나이 듦은 얼굴에서 나타나게 되어있다. 즉 보이지 않는 내면의 정신과 마음이 얼굴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얼굴이 바로 자기 자신인 것이다. (Written by 기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