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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흔적

-불청객

by Sapiens



<am.5:50>



불청객 ‘삶의 흔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 무료하다고 느끼는 그 시간들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건 중년의 나이가 훨씬 지나서이다. 매일 펼쳐지는 삶의 노곤함은 어쩌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전주곡인지도 모른다.



지난 주말 수업이 없는 여유로운 시간 속에 머물렀다. 눈을 뜨고 침대 위에서 뒤척이며 늦은 시간에야 눈을 뜨고 일어났다. 자연스럽게 주방으로 가서 정수기 물을 내린다. 밤사이 끈적거리는 혈액을 희석하듯 한 컵 가득 담긴 물을 들이켠다. 갈증을 해소하고 뒤돌아 화장실을 향한다. 양치를 하고 얼굴을 씻는다. 시원하다. 물이 콸콸 나오는 소리까지 더위를 씻어주는 듯 상쾌함이 찾아든다.



얼굴을 닦고 화장대 앞에 앉았다. 시원함은 씻기고 금세 따뜻한 온기가 온몸을 감싼다. 선풍기를 켜고 거울을 바라본다. 거울을 통해 나를 바라본다. 햇살이 뜨거운 요즘 밖에 나가 걸어 다니는 일이 힘든 시기이다. 그럼에도 며칠 전 걸어 동네 카페에서 수업을 진행하였다.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더위에 헐떡거리며 오고 갔던 일이 스친다. 거울 속 얼굴에 그을린 자국이 역력했다. 순간 찡그리는 모습이 함께 보인다. 나이가 드니 잡티들이 금세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나이에 따라 찾아오는 그를 바라본다. 로션을 바르는 손길로 어루만져본다. 내가 방심했음을, 그를 탓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는 젊은 날 수많은 시간을 견뎌내 온 나의 일부였음을, 찬찬히 바라보며 느껴본다. 그렇다. 그는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덧칠해지며 그도 서서히 표피로 올라온 나의 일부였다. 그렇게 내 삶의 무늬를 그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거울 속 나를 바라보던 눈길에 작은 연민의 미소가 드리운다. 거추장스러운 모습이 어느덧 소중한 흔적이 되어 나의 손길이 닿는다. 그는 불청객이 아니라 내 삶의 흔적이었다.



누구나 살아온, 살아낸 흔적 위에서 존재한다. 때론 원망과 후회 속에 존재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 모든 것은 자신이 걸어온 결과물임을, 탓하기보다 함께 걸어온 동지로 아련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다. 우리의 명이 다할 때 얼룩진 무늬 속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 늙은 꽃이 될 수 있도록 잘 가꾸어 대접하길 바라본다. 그를 성가신 불청객으로 바라보며 사멸하지 않기를, 함께 공존하며 서로 바라보며 옅은 미소로 위안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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