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그만둔 지 삼 년이 넘어간다.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간 이후 주방에서의 서성거림은 점점 사라졌다. 그 시간들은 다른 공간에서의 다양한 활동으로 채워지고 있다. 그러는 동안 음식을 하는 일이 익숙함에서 생소한 일로 변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의 순환을 위해 삼시 세끼를 챙겨야 하는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하지만 나는 유난히 먹고 싶은 욕구가 강하지 않은 편이라 오히려 간단히 해치우곤 한다.
가끔 생각한다. 허기를 알약 한 알로 해결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편리성과 효율성에서 기다려지는 일이기도 하다. 인생을 먹는 맛으로 산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들으면 그렇게는 못 산다고 하는 아우성이 귀에서 아른거린다.
사실 우리가 건강한 먹거리를 찾아 먹고, 꼭꼭 씹어먹는 저작운동이 얼마나 건강에 중요한 일인지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요리를 하는 일이 점점 서먹해지고 있다. 양육을 졸업하기 전에는 숙제처럼 요리를 하고 음식을 준비했던 것 같다. 음식 장인들을 보면 영혼을 불어넣는 듯한 열정과 정성으로 음식을 차려낸다. 기다림과 손끝에서 나오는 그 무언가가 맛을 결정하고 음미하며 감사히 마주하는 모습은 내가 음식을 대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 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음식 재료 앞에서는 게을러지는 자신을 만난다. 사실 무더운 여름 시원한 음료 하나에도 삶의 노동과 철학이 담겨있는 옛사람들의 손길을 만날 수 있다. 어쩌다 내가 음식과 소원해졌을까?
요즘 나는 간단한 아침으로 속을 채운다. 우선 일어나면 입안을 헹구고 미지근한 물 한 컵을 마신다. 그리곤 냉동 바나나 3조각, 블루베리 두 스푼, 요거트 한 스푼, 우유 반 컵를 넣어 믹서기로 갈아낸다. 언 바나나로 덜덜거리며 믹서기가 돌아간다. 그러다 점점 부드러운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귀를 차분하게 한다. 그러면 시원한 블루베리 주스 한 잔이 금세 만들어진다. 나만의 컵을 꺼내어 가득 채운다. 컵을 들고 충만함을 느껴본다. 옅은 보라색의 거품을 입가로 가져간다. 한 모금을 들이켠다. 천천히 씹으며 마시다 보면 어느새 배가 꽉 채워진다. 든든한 아침이 되어주는 블루베리 주스가 요즘 챙겨 먹는 식사 중 가장 호사스러운 한 끼 식사이다.
음식에도 궁합이 있다고 하듯 내 육체가 잘 받아들인다는 느낌이 든다. 마시는 순간 맛과 양, 농도 등이 기분 좋게 목을 넘기며 사라진다. 마시면 행복해지는 나에겐 최고의 음식이 되어주고 있다. 누군가에겐 음료이지만 나에게는 정성스러운 한 끼의 식사로 충분한 스로우 푸드이다. 그 덕에 아침을 활기차게 열고 있다. 오늘도 블루베리 주스 한잔으로 에너지를 충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