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어느 날이었다. 몸을 움츠리고 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지나치는 차들의 빠른 걸음 때문에 도로 위로 비가 더욱 세차게 내리치고 있었다. 자그마한 차 한 대가 잠시 멈추며 창문을 내린다. 운전을 하고 있던 한 남자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노란 우산입니다."
아는 사이처럼 다가와 손을 내민다.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을 할 시간 초차 세찬 빗줄기는 허락하지 않았다. 이미 약속이나 한 듯 차문을 열고 차 안으로 몸을 쑤셔 넣고 있었다. 창문을 내리치며 비는 더욱 거세게 쏟아지고 있었다. 운전석에 타고 있던 한 남자의 너그러움이 차분한 차 안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윽고 차는 목적지에 세워지고 발길을 잠시 멈춘다.
"노랑 우산은 사랑입니다."
마치 잘 짜인 대본처럼 운전자의 배려가 다시 한번 상기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현대해상 보험 광고가 떠오른다. 아뿔싸! 보험회사 직원이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좋았다.
그 이후로 비가 오는 날이면 떠오르는 장면이다. 누군가에게 다가간다는 것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게 되는 세상을 살고 있는 지금, 사뭇 낯선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서로 연결되어 존재하고 있는 우리는 다가감에 익숙함보다 두려운 감정이 먼저 일어나는 순간 속에 서 있다.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정직함에도 누군가는 의심의 눈초리에서 자유롭지만은 않다.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은 구역에서 서로 얽히고설키며 촘촘하게 경계를 짓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일까? 잠시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꺼내본다. 그리고 빗속으로 흘러 보내본다. 감정의 경계에서 한 참을 서성거리다 뒤돌아 사라진다. 사랑은 주는 입장보다 받는 사람의 여유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비 오는 날 노랑 우산이 다가와 속삭인다. 사랑입니다.